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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건릉

| 조회수 : 3,274 | 추천수 : 0
작성일 : 2011-09-28 23:22:19
 <용주사에 이어서> 

융,건릉 입구,,, 용주사서 걸어서 20분 거리.
 
조선 왕릉은 모두 42기,,,,이중 40기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40기가 남한에, 2대왕 정종과 태조 첫왕비 한씨 능은 개경 인근에 있고.
영월에 있는 단종을 제외하면 모두 100리(40키로) 안에.
왕이 하루내에 참배할 수 있도록.
지존이 하루라도 왕성을 벗어나면 권력 찬탈 위험성 때문이겠죠.
한양서 이곳 화성시 화산(花山)까지는 80리입니다.

 

화산은 수원 비행장 남서쪽의 야트막한 야산.

왕릉인지라 소나무,참나무등이 잘 가꿔졌네요.

 

유독 참나무 밑만 이리,,,비바람에 떨어진걸까요??

아뇨!

 

톱으로 썬듯 정밀.

참나무에 사는 톱니**벌레가 갉아끊어낸 거라네요.

    

사도세자가 묻혀있는 융릉(隆陵) 입구~~~.

'대륙의 융기' 할때 융(隆)입니다,,,높은 '융'.

아들 정조의 효심을 읽을수있는 능호네요.

왕궁이나 능의 초입은 이리 성속을 구분하는 천(川)이 흐르죠.

금천교라 하는데 경복궁에도 창덕궁에도 있는.

 

원대황교~~~

이 다리가 좀 특별해요.

수원의 남쪽 경계인 화성군 태안면 황계리(黃鷄里)에 있던 '大皇橋'라는 다리였죠.

호남,충청으로 이어지는 삼남대로 상에 있던 중요 다리.

그런데 '皇'자가 들어가 중국에서 못마땅하게 여겼다네요.

즈음해 중국 가는 조선 사신이 있었는데 어떤 일인지 상복 준비를 하고 길을 떠났답니다.

중국에 도착하니 공교롭게도 막 그쪽 대비의 상중이었고.

대궐을 상복을 차려 입고 들어서니 선견지명에 놀라 대황교 명칭에 대해서는 문제삼지 않았다나.

그리고 세월은 흘러,,,

수원비행장 활주로 공사로 다리가 철거될 운명에 처하자 이곳으로 옮긴 후 그 연역을 교각에 새겨놓았습니다.

 

황교를 지나니 '곤신지'라는 연못이,,,,坤申池~~~~

1790년 능 공사는 철저히 풍수 관점서 이뤄졌겠죠.

융릉은 세종의 여주 '영릉'과 더불어 최고 길지로 여겨지고 있는데 단 하나 허점이.

융릉은 반룡농주(누워있는 용이 영의주를 농하는)지세인데 용이 노니는 물이 없다는 거.

능 아래쪽이야 물이 모이는 곳이니 연못을 파 능 주변 습기 문제도 동시에 해결했다는.

왕릉 입구에는 오리나무를 많이 심었다죠,,, 오리나무는 습기에 강해서.

능 주위는 화재에 강한 참나무 등으로.

 

연꽃이 만발했을 때는 멋졌을듯.

 

융릉이 한눈에~~~

홍살문~참도~정자각~능침이 일직선상으로.

이리 일직선상으로 놓은 건  왕릉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죠.

어,그런데 저 멀로 '보여서는 안되는' 능침이 보이네요.

융릉만 예외로 이리 능이 보이게 한거죠. 왜???

뒤주에서 죽은 사도세자 영혼의 답답함을 덜어주려구요.

능에서 보면 정자각이 빗겨나있으니 멀리 남쪽이 훤히 보이겠죠.

 

홍살문 우측 바로 아래 사각형 판위(版位) 보이시나요??

혹은 배위라고 합니다.

먼저 임금이 이곳에 올라 옷깃을 여미고 의관을 정제 한 후 혼령에 '저, 왔습니다'하고 인사하는 곳이죠.

왼쪽은 수라간.

진설할 음식을 만드는데 실제로는 인근 용주사서 요리한 후 이곳에서는 탕국 등을 데우기만 했다네요.

우측에는 원래 수복방(守僕房,능역을 지키는 능지기가 머무는 곳)이 있는데 소실되었는데,

종9품인 참봉,즉 능참봉이 우두머리로 많게는 70여명의 묘역관리인이 있었다는.

이황 첫 벼슬도 능참봉,능지기였습니다.

우측에 보이는 것은 비각.

다음은 이황의 능참봉 예찬론.

/미관말직,구체적으로는 능참봉이 되면 처자식을 부양하고 부모를 봉양할 최소한의 의식주 걱정은 없게 되기에

그 자리가 주는 한가로움이 공부에 매우 도움이 된다./

일찌기 장자(長子)는 산지기를 하면서 위문후의 부름에 응하지않았죠.

퇴계 동시대 인물 남명 조식은 38 나이에 '헌릉 참봉'에 임명되었지만 고사했고.

 

홍살문에서 정자각 까지의 길을 참도(參道)라 하죠,,한마디로 참배가는 길이죠.

참도는 신도,어도로.

왼쪽 보다 높게 박석이 깔린게 신도로 혼령이 가는 길이구요,오른족은 어도로 임금이.

그리고 우측(동쪽) 어도의  하단 길은 문관이,좌측(서쪽) 신도의 하단길 은 무관과 종친이 걷는 길입니다.

 

정자각 (丁字閣)~~

말 그대로 건물이 丁자 모습이여서죠. 황제능은 '一'형태.

평시에는 어진,위패를 모시고 젯상을 차리는 곳이죠.일반 묘 앞에 있는 상석과 같은 역할.

처마 위의 잡상들 보이시나요?

서유기에 나오는 인물들로 맨앞이 삼장법사,손오공,저팔개,사오정입니다.

뒤의 새같이 생긴 것은 용머리.

 

정자각에 오르는 것도 법도가 있죠~~~

 

참도를 걸어온 온 후 정자각에 오를 때는 동쪽에서 오르죠.

세상사 동서고금 비슷,,,, 해뜨는 곳은 생명이 잉태하는 곳, 서쪽은 해가 지니 사멸하는 곳 .

그래서 중세 시대 지옥은 서쪽인 스코틀랜드 넘어 바다쪽에 있었다고 믿었죠.

그러니 먼저 동쪽을 향해 오른다는.

왼쪽 소맷돌이 있는 것은 귀신이 오르고,옆은 임금과 제관이 오르구요.

오를 때도 왼발을 먼저 띄고 이어 오른발을 모으고,다시 왼발을 띄고 오른발을,,,,이리요.

내려올 때는 반대.

 

 

임금과 제관은 반대편인 서쪽 저 계단을  통 해 내려오고~~~

그러면 혼령은 어디로???

정자각 뒤편 에 난 문을 나선 후,

저 돌다리를 건너 능침으로 되돌아가는 거죠.

 

정조가 아버지 장헌세자( 사도세자)에 바친 비문~~~

비문은 뒷편에 있습니다.

맨아래 세글자 보실레요. 현릉원이라 했네요.

'능(陵)' 아닌 '원(園)'인 이유가 뭘까?

능은 임금이나 왕비에,원은 왕세자와 왕세자비에,묘는 공주나 세자들의 무덤에 붙치는 이름이기 때문.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를 양주 배봉산에서 이곳으로 옮길 때

사도세자의 신분이 임금이 아닌 왕세자였기에 현릉원이 됩니다.

 

고종이 사도세자(정조에 의해 장헌세자로 추증)를 장조로 추증하고 쓴 비문.

우하단 隆陵(융릉) 글자 보이시죠?

고종에 이르러   사도세자는 장조로 추증되어서죠.

 

정자각 우측 위쪽으로 이리 산신석(山神石)이~~

동시에 산신에도 재를 올리는 거죠.

 

왼쪽에는 예감이 있네요~~~

망료위라고도.

정자각서 읽은 축문을 여기서 태우는 거죠.

소나무들 보이시죠~~~

정조와 소나무에 얽힌 전설은 많아요.

대표적인게 잡아도 잡아도 없어지지 않은 송충이 인지라 울불에 정조가 씹어먹었다는 데 이후엔 송충이가 사라졌다는.

실은 이에 놀란 능참봉 이하 관리인들은 군기가 재대로 들어 관리를 잘해서겠죠.

 

 

능침 구간은 출입금지라 멀리서~~

능은 병풍석을 두르고 조각 솜씨도 정조 자신의 능인 건릉 보다 훨씬 정교합니다.

정조의 효성을 읽을수 있다는.

정작 자신의 무덤은 간소하죠.병풍석 아닌 난간석으로 대신하는 등등.

 

250년 전 당시 김홍도 주관한 아랫 그림좀 보실레요.

한편의 서사!!!

정조는 아버지 묘를 이곳 화산(花山)으로 천장하고 현릉원이라 칭한 이후 24년 동안 12번 능행차를.

그림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겸한 을묘년 원행(園幸)의 한장면입니다,,,幸은 임금의 바깥 거둥을 의미.

정조의 화성 8일간 행차는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라는 기록화로 생생히 남아있습니다.

'의궤'란 국가적인 행사나 의식을 치를 때 그 과정을 기록해 둔 조선 만의 독특한 기록 형태.

준비 과정, 참가자 명단, 경비, 식사 메뉴와 들어간 재료까지 기록한 블랙박스죠.

한강을 넘는 배다리,홍씨 회갑연,노인잔치,환어행렬도등 8일간 행해진 대사를 여덟 장면으로 나눠그렸습니다.

김홍도 책임하 도화서 화원들에 의해.

 

'환어행렬도'는 화성서 한양으로 돌아오는 길 시흥행궁(현 금천구 시흥동)을 지나는 장면의 포착입니다.

그러니 사진 하단 기와 저택은 당연 시흥 행궁(行宮).

길가 백성들이 많이 나와 편히들 구경하고있네요.

현대와 넘 다르지 않나요??

우린 태극기 들고 목터저라 함성지르며 권력자 입맛을 마췄는데말이죠.

 

12번 능행차 중 전반기와 후반기의 노정이 달라요.

6번은 과천을,나머지 6번은 시흥길을 택했다는.

전반기 과천을 통한 노정은 충청,전라로 통하는 삼남대로와 일치하죠. (춘향전서 이몽룡의 남원행도 과천을 지났고)

창덕궁 돈화문 출발~종각~청계천 광통교~숭례문~청파~용산나루~한강 배다리~버들나루(노량진)

~검은돌(흑석동)~시뎅이(사당동)~여우고개(남태령)~과천(행궁인 온온사에서 쉬고)~

인덕원 (궁중 내시들이 살던 곳으로 지역민에 인덕을 배풀어서 인덕원)~현 안양교도소 뒷길~

사근행궁(현 의왕시 고천동사무소)~ 지지대(수원초입) 거쳐 화성 정문인 장안문으로 들어갔습니다.

후반기는 노량진~장승백이~시흥행궁~안양리(현 안양시)~군포를 거친 후 사근행궁 지나 화성 장안문 통과.

그런데 길을 바꾼 이유가 분분하네요.

과천에 아버지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고간 노론 김상로 가족묘가 있어 불쾌감으로,

또는 남태령길이 험해 가마가 흔들려서 등등으로요.

결국 현 안양천을 건널수 있는 만안교(현 안양시 만안구 유래) 완공후 평지길인 시흥길을 거쳤습니다.

그러니 저 환어행렬도에서 기와집은 시흥행궁.

청계천 담벽에 그려진 반차도는 바로 저 그림의 재현이고.

 

부분도~~

가마 속 혜경궁 홍씨는 휘장을 두른채로 이동중이네요. 남여유별 때문.   

 

기록에 의하면 혜경궁 홍씨는 을묘 능행 때 많이 울었다죠. 왜,왜,왜???  

숙종 46년간은  당파간 권력 투쟁이 정점으로 치닫는 시기입니다.

아들 영조까지 포함하면 부자가 거의 100년을 통치.

한세대 30년이면 국가의 성격을 뒤바꾸는데 충분하죠.

이 시기 청나라는 중국 역사상 최고 융성기를 보냈는데 말이죠.

61년 간의 강희제를 시작으로 옹정제,건륭제 까지 100년간.

숙종 년간 남인,서인들간 수차례 권력이 뒤바뀌죠(기사환국 등등)

남인으로 대표되는 인물이 바로 장옥정(장희빈)입니다.

변덕이 죽끓던 숙종은 총애하던 장희빈을 내쳐 사사시키고 무수리 출신 숙빈 최씨를.

숙빈 최씨의 아들이 바로 연잉군으로 후에 영조가.

숙종이 죽고 장희빈 아들이 왕에 오르니 경종입니다.

숙종은 연잉군을 많이 아꼈지만 결국 장희빈 아들이 왕위에.

근데 문제는 경종의 권력기반은 소론이였다는 것. (서인이 나뉘여 소론과 노론)

결국 경종도 30대에 사망하고 노론이 밀던 연잉군이 왕위에 오릅니다.

영조는 즉위 후 내내 경종 독살 연류설에 시달려야했죠.

연잉군 시절 경종에 게장과 감을 올린 게 사단이 되어  사망했으니.

연잉군 왕에 오르니 21대왕 영조입니다.

그는 재위 내내 두가지 열등감에 시달렸죠,,,, 어머니가 무수리 출신이라는 것과 경종 독살연류설.

경종독살설은 연잉군과 노론의 합작품이라는 것으로.

그래서 영조는 탕평책으로 약한 기반을 만회하려고 무던 애썼으나 본색은 노론.

때마침 소외된 소론 남인 중심의 이인좌난이 경상도를 거점으로 삼남지방을 휩쓸었죠.

(이를 계기로 수십년간 경상도 정계진출 원천봉쇄)

영조는 둘째 아들인 사도세자로 하여금 대리청정 시작합니다(큰아들 장헌세자는 요절)

그런데 문제는 기골이 장대하고 머리도 좋은 사도세자는  노론의 부패에 환멸감을 느끼고 소론편에.

위기의식을 느낀 노론들은 사도세자의 폐세자 작업에 들어가죠.

그 핵심 세력은 영조의 두번째 비인 정순왕후와 그 집안.

이어 사도세자 장인인 홍봉한,홍인한 형제들까지,,,아내인 혜경궁 홍씨도 결국 친정편에.

사도세자는 28살의 나이로 8일간 뒤주 속에 있다 죽고 폐세자됨.이때 세손(정조)나이 11살.

사위가 뒤주 속에서 죽어가던 즈음 처가댁 홍씨 형제들은 한강서 뱃놀이를 즐기고 있었다죠.

뒤주 아이디어도 장인 홍봉한 머리에서.

영조는 이후 후회하고 '생각하며 추모한다'는 뜻의 사도(思悼)세자라는 존호를.

 

그런데 실록에는 뒤주 속에 죽었다는 얘기는 전혀 없죠.

또한 당일의 왕주변의 생생기록인 승정원일기 당해년 1년치를 세초

(실록을 물로 씻어냄,비싼 한지 재사용 위해)했으니 공적인 기록이 없어졌다는.

그러니 우리가 알고있는 관련 사실은 혜경궁 홍씨가 쓴 한중록을 통한 것이 대부분.

 

한중록(閒中錄)이라,,,,한가한 날의 기록이네요.무려 50년이 지난 후의 기록이고.

홍씨가 을묘원행 회갑연 직후에 세손 순조에 보여주기 위한 기록이죠.

그런데 한중록은 두번 저술된 합본입니다.

60살 때 한중록과 6년 후의 66세에 쓴 읍혈록 이리.

泣血錄,,,,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쓴 기록이네요.

하나는 '한가한 날의 기록'인데 또하나는 '피를 토하는 기록'이라???

당시 상황은 홍씨 가문에 최악의 상황으로 돌아가고 있었죠.

 

조선조 2대 요망한 암탉은 문종의 모후 문정왕후와 영조의 두번째 비 정순왕후입니다.

뼈까지 노론 집안인 정순왕후 아버지 김한구는 딸의 후광으로 금위대장(경호실장)에 오르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정순은 배갯머리 송사로 소론편에 선 사도세자를 쉼없이 끌어내리기 시작하고.

세번째 숙의 문씨도.(사후 정조에 의해 사사)

이는 정순왕후의 며느리 혜경궁 홍씨 집안까지 미치는데 결국 장인 홍봉한도 한패거리가 되어 사도세자는 고립무원.

정순왕후, 며느리 혜경궁 홍씨 & 정조 3인의 나이좀 보실레요.

임금은 왕비 이후 첫번째 비를 얻을 때는 영계를 들이는게 관례.

영조 66세 때 15세 정순을 받아들였으니 자그만치 반세기 차이가.

며느리가 시어머니 보다 11살이나 많고,손자 정조보단 겨우 7살이 많은.

정순은 3대에 걸쳤는데 정조 사후에는 정조의 개혁정치를 모조리 원상복구하고 반동의 길로 들어갑니다. (*명박처럼) 

이후 조선 후기는 급전직하,,,3년 간 정순의 수렴청정의 폐해가 큰거죠.

여하튼 혜경궁 홍씨는 66세에 다시 읍혈록이라는 지극히 정치적 기록으로 홍씨 가문 살리기에 나섰던 거죠.

손자인 순조에 위장 기록물로 억울함을 호소하고 자신 집안을 건사하려는.

내용은 세자가 정신병을 알았다느니,포악하다느니,영조 여자를 겁탈했다는니,비구니를 궁중에 들여놀아났다느니 등.

심지여는 사도세자의 살부계획까지 들어있다는.

영조가 경희궁에 머무를 때 사도세자가 영조를 시해하려했다는 거죠. 

세자가 경희궁을 넘으려다 수구에 큰 덩치가 막혀 상쳐만 남기고 돌아오자 자신이 왕비(숙의 문씨)에 알렸다나.

 

 

자,그러면 정조가 묻혀있는 건릉으로 가보실까요.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의 건릉으로 향합니다.

아랫 길은 10여분이면 이르지만 능 뒤쪽 능선길로.

호젓한게 좋은 구불구불 2,5키로 오솔길.

1백여미터 높이 화산 이쪽 저쪽 반대편으로 융릉과 건릉이 있습니다.

 

 

어~~ 수원시가 한눈에 들어오네요.

우측 멀리가 수원의 진산인 광교산(582).

태조 왕건이 지나다 광채가 솟구치는 모습을 보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주는 산'이라 해서 붙혀진 이름.

(양평 용문산은 조선 태조가 지나다 명명한 것처럼)

太祖山인 속리산 문장대서 가지를 친 한남정맥의 중조산(中祖山)이죠.

광교산 너머로는 청계산이니 의왕시와 경계를,다시 동쪽으로 용인시(수지)와 경계를 이룹니다.

한양 광화문에서 청계산 정상 만경대를 바라보자면 바로 너머가 광교산.

한남정맥의 중심인 광교산은 안양 수리산,인천 계양산으로 흘러간 후 김포 문수산에서 서해로 빠지며 생을 마감합니다.

 

광교산 앞 희미한 언덕 보이시나요?

바로 수원시 중앙에 위치한 팔달산(八達山)으로 이곳에 정조의 신도시 수원 화성이 있습니다.

바로 앞으로 수원 비행장 보이시죠? 희미하게 격납고도.

정조는 저 화성 행궁을 출발, 벌판을  가로질러 이곳 융릉을 참배했습니다,,,결국 자신도 이곳에.

원래 수원은 이곳 화산 일대가 중심지였지만 융능이 조성되면서 읍치(邑治)를 팔달산 화성 안으로 옮겼죠.

예로부터 수원이 풍부해 하천,저수지가 많아서 水源.

호남과 충남의 장삼이사,유생들 과거길이면  이곳 수원을 거쳤죠.

차령을 넘어온 후 천안삼거리~성안~평택~수원(1번국도와 일치)~과천~숭례문 이리.

수원 초입(사진 우측 방향)이 병점(餠店), 즉 떡점거리입니다.

여기서 떡을 사먹야 급제한다해서 사먹다 보니 병점이 되어버린.

대중교통을 통한 용주사,융건릉 행은 전철 병점역이 가장 가깝습니다. 

 

자, 여기서 역사적 유희 하나??

정조는 왜 제2 수도를 만들었을까? 당연 왕권 강화 책!

하필이면 왜 수원에?? 위에 언급한 내용에 몇가지가 더.

수원은 삼남대로가 한양으로 집입하기 직전 인후지지(목구멍)같은 곳.

삼남대로(三南大路)는 경상으로 이어지는 영남대로와 더불어 충청 전라로 이어지는 조선 2대 기간도로죠.

물적 기반으로는 조선 최고 간선도로.

화성의 정문은 북쪽에 위치한 장안문(長安門)입니다.

한양의 정문은 남문인 숭례문인데 왜 화성은 북문이 정문일까?

한양서 출발한 정조는 북문인 장안문을 통해 들어와서죠.

그러면 장안문이 클가,숭례문이 더 클가? 답은 장안문!

한양 숭례문에 해당하는 남쪽 문은 팔달문(현 수원 중심지이죠).

당연 사통팔달에서 나왔는데 삼 남대로를 거쳐온 삼남의 백성들이 들어오는 곳이기에.

여기에 넓은 평야, 가까운 바다(바로 인근이 화성만),풍부한 수량을 기반으로 한 풍부한 물산이 더해지고.

정조는 화성을 계획도시,신도시 개념으로 세웠다는.

성안밖엔 저수지를 파고 농지를 넓히고, 둔전(군인들이 주둔하면서 농사)을 뒀죠.

저수지는 지금도 존재한 만석거 등 많았는데 해방 후 서울농대가 수원에 있게된 연유입니다.

정조는 정책적인 인센티브로 읍치의 수원을 유수부(광역시)로 승격시키고 매년 특별과거를 실시 인재를 모았습니다.

평양,의주,나주 등등 거상들에는 입주혜택이 주어졌고. 일반 이주 주민은 군 면제에 10년 면세 혜택도.

왕갈비로 통하는 수원갈비 유래로 여기서 유래하죠.

마포갈비,새우젓이 마포강에 들어오는 삼남의 풍부한 물산과 관계되듯 수원갈비도 이와 관련.

여기에 정조의 12차례에 걸친 화성행차가 더해졌고.

 

정조가 이리 수원 신도시에 심혈을 기울인 것은 세손 시절부터 위태했던 자신의 정치적 처지를 의식했기 때문이겠죠.

아버지가 뒤주서 죽은(당시 11살) 이후 25세로 왕위에 오를 때까지 14년을 외줄 위에 서있었으니.

세손을 제거하려는 노론의 음모는 끊이질 않았고.

영조는 세손 보호를 위해 사도세자가 아닌 맏이 효장세자(요절) 아들로 입양시키기도.

보위에 오른 이후에도 몇차례 모반 사건이.

영조는 죽을 때(83세)까지 왕위 선위를 최대한 늦췄는데 아끼는 세손이지만 자신의 과거가 있으니 두려웠겠죠.

드디여 죽기 이태전인 81살에 영조는 세손에 대리청정을 명합니다.

이때 노론 실세들이 늙어빠진 영조를 얼마나 우습게 보았는지 알수있는 일화가 있죠.

대리청정의 명을 승지에 적으라하자 좌의정 홍인한(홍봉한 동생)이 승지 앞에 앉아 윽박지르며 방해하죠.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세손은 소론이 뭐고 노론이 뭔지를 알 필요가 없으며, 이조판서,공조판서가 누가 적임인지 또한 알 필요도 없습니다.../

완전히 왕을 물로 보고있네요.

이때 나이 세손 24세로 결국 대리청정 몇달만에 할아버지  영조에 기가막힌 간청을 하죠.

읽을수 없고 들을수 없는 아버지 뒤주 관련 부분의 승정원 일기를 없에버리자는.

이런 연유로 그해의 승정원 일기는 없고 대신 세손이 당시 영조에 올린 문서만 있습니다.

'난 아버지 일로 당신들에 감정없으니 나를 이대로 나줘라!'는 노론을 향한 유화 손길인거죠.

드디여 다음해 영조는 83세 나이로 죽고, 세손 나이 25세에 왕위에 오릅니다.

보위 첫 일성은,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정조는 완벽은 아니지만  숙의문씨 등 몇명은 사사시킵니다.

그리고 24년을 통치하고 49세에 붕어.

 

 

가족단위 산책 길로 그만~~~~

 

이산 정조가 묻혀있는 건릉~~~~  

 

비각&비

우측부터 '대한제국 정조선황제건릉 효의선황후부좌'~~~

고종이 정조를 황제로 추존하고 세운 비.

 

능 주변엔 참나무가 많네요.

종묘에도 참나무가 많은데 진짜 나무인 참나무여서.

 

금지 구역이지만 살짝~

 

 

맨 앞이 장명등(長明燈). 불을 밝히는 곳이죠.

사찰 대웅전 앞 석탑 정면엔 석등(石燈)이 있듯이 조선 왕릉에선 장명등으로 변주되었네요.

바로 뒤 상석 같이 생긴 것이 혼유석(魂遊石)인데, 말 그대로 혼령이 나와서 야심에 노는 곳.

사가(私家)의 묘 앞에 있는 것은 제사 음식을 진설하는 상석(上席)으로 둘은 용도가 다릅니다.

좀 놀랍게도 저 혼유석 밑은 능 안까지 작은 구멍이 뚫어져있습니다.

혼령이 드나드는 길이죠.

참고로 조선 왕능은 세조 이전까지는 석관에다 봉분 안까지 수십톤 석재로 차곡차곡 쌓았기에 도굴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지하철 선릉역에 인근에 있는 선정릉(성종,중종)을 제외하면 도굴을 피했습니다.

선정능은 임란때 왜적들이 도굴 후 중종 시신을 가져간 것을 돌려받았죠.

태종 능사 때는 백성 1만명이 동원되었고 백여명이 공사중 사망하는 민폐가 크자

세조는 석관을 사용하지 말라는 유언을.

이후는 석회,자갈,모래 황토를 섞어 석관 위를 발라 굳혔다는.

 

장명등~~

 

 

 

능은 이리 병풍석 없이 난간석으로만~~

방향을 표시하는 12지 문자를 빙둘러 새겼네요.

당연 12각형 모양이겠죠. 12지상은 김유신 묘가 대표적.

 

 

순서대로 석마,문인석,석마,무인석.

옆에 있는 말은 저 문인,무인이 타는 거죠.

 

담장은 곡장(曲墻)입니다,,,굽은 담장이라는.

능을 비바람 산짐승,산사태로 부터 보호하는 거죠.

 

순서대로 양,호랑이,양입니다.

석양(石羊)은 잡귀를 물리치고 석호(石虎)는 들짐승으로 부터 능을 지키는 거죠.

 

문인석은 이리 '홀'을 들고있고~ 

 

무인석은 칼을 들고있고.

무인석 표정을 보세요.서역인 모습.

경주 괘릉의 무인석도 그러한데 당시 신라에 서역인들이 많이 들어왔다는 반증이겠죠.

고구려 벽화 무용총의 역사도 서역인 모습.

 

능 뒤에서~~~

앞 석주는 망주석(望柱石)입니다.

망주석은 묘 앞의 양옆에 하나씩 세우는 석주.

혼령 입장에서는 자기의 유택(묘)를 찾아오는 등대 역할을,

산자에겐 먼 곳에서 묘를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표지.

 

 

 

 

멀리 처연한 느낌이 확~~~~~~~~

능 앞에서 바라본 정자각.

실은 정자각의 정면은 능역 입구 홍살문쪽에서 바라다 보는 곳이 아니라 혼령이 바라다보는 능쪽이 정면입니다.

능 위쪽은 소나무 중심인데 입구는 저리 참나무 세상.

 

 

모짜르트  미완성 오페라 '자이데' 중 '편히 쉬어요 내사랑'
Lucia Popp(루치아 포프), soprano

8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변인주
    '11.9.29 12:16 AM

    wrtour님 ^ ^

    자세히 찬찬히 잘 읽었습니다.

    건성 건성 보던 것 들을
    맘을 열고
    감사히 조심스럽게 본다는것이
    나이 들어 좋은점 하나.

    나눔에 감사 ()

  • 2. 루루
    '11.9.29 9:09 AM

    아직 가보지못해 항상 염두에 두고있었는데...

    사진과 제가 직접 능에 와있는 착각을 할 정도로 사실적인 님의 부연설명에 감동입니다..모짜르트 선율까지..

    감사합니다

    복 받으실겁니다 짝.!!!짝!!!

  • 3. 얼리버드
    '11.9.29 1:52 PM

    수원에 살때 융건능 몇번 가본적 있습니다. 융건능 주변에도 아파트들이 많이 들어섰겠지요? 정말 상전벽해란 말이 딱 맞네요. 팔달산에는 주말이면 가곤 하던 곳이죠. 수원은 성곽이 있어서 멋진 도시랍니다.

  • 4. 하늘재
    '11.9.29 4:21 PM

    건성 건성 보던것을
    맘을 열고...222222222222 ㅎ

    군데 군데 더러 고개 끄덕이며,,,음~~ 그렇구나,,,하고 읽습니다...

    근데요...
    두리번,,두리번....
    아니,, 추천은 어디간겨???ㅎ

    하는수 없이 마음으로 /추천/ 따 따블로 놓고 갑니다. ㅋㅋ.
    늘~~~
    유익한 역사,지리,인문 이야기 감사합니다...

  • 5. 아로마
    '11.9.29 5:47 PM

    30 여 년전에 융건릉 홍살문 앞에서 찍은 사진이있는데 ,
    새롭네요 ...

    차분히 잘 봤습니다 .

  • 6. wrtour
    '11.9.30 12:01 AM

    변인주님~~
    저두요 ^^
    다시 가을이네요,다녀가신지도 벌서 1년이 지났네요.
    오셨을 때 조금이라도 설악산에 발담그셨으면 지금쯤 멋진 추억으로 자리잡았겠죠 ??ㅎㅎ아고,아까붜라!
    전 올 여름 허리 고장으로 설악엘 한번도 못갔어요.다행이 나아져 이번 토요일 가는데 벌써 설레입니다.

    루루님~
    반갑습니다 ^^
    님 말씀에 막 미소가요.ㅎ

    얼리버드님~~^^
    자게서 많이 뵌 닉 아닌가요??ㅎ
    맞아요, 융건릉 입구 앞,수원대 주변은 죄다 개발되었어요.
    용주사와 융건릉 사이 골짜기도 도로 공사가 한창이더군요,주택 공사도요.

    하늘재님~
    정말 오랜만에 뵙니다.
    잘 계셨지요??^^
    마음속 그 추천 감사!!

    아로마님~~^^
    어려서 찍은 사진이겠지요.학교서 원족갔다 찍으셨을까요??
    그 빛바랜 사진에 찍힌 융건능은 어떠할까 궁금합니다.


    모든님들 또 주말이네요,
    가을 많이 아껴쓰시길~~~~

  • 7. 수늬
    '11.9.30 4:26 PM

    최근 몇년간 본 드라마(이 산,성균관스캔들,최근 무사백동수까지...;;)
    에 정조가 자주 등장해서 관심있게 봤었는데요...올리신 글이 딱 정리가 되어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저 곳...제가 사는곳과 멀지 않은데 아직 못가보았네요...
    이제 우리아들과 역사탐방 데리고 다녀야겠는데, 한번 읽히고 다녀와야겠어요..
    멋진 아리아까지 감사...

  • wrtour
    '11.10.3 3:02 PM

    꼭 다녀오세요
    먼저 아버지 융릉 거처 세기적 효자 정조 건능꺼지요
    이동시는 꼭 융릉 홍살문 옆으로 난 산뒷길타시구요
    산마루가 보면 수원시도 보이고 ㅁ멀리 수원성있는 팔달산도 보이고
    앞 벌판을 가로질러 정조 능행차했으니 얘들에 일러도주고
    그 벌판 남북길이 삼남대로로 이몽룡 행차길도 알려주고 등등 ㅎ
    어제 대청봉 단풍보고 이제 일어나 이리
    이젠 설악 단풍사진 빼야지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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