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 민우회에서 주최하는 글쓰기 교실의 강사로 일산에 오고 있는 은유씨
그녀가 좋아하는 지휘자들이 연령대가 너무 높아서 그렇다면 젊은 오빠?를 소개해주겠노라고
우리 집에서 점심을 먹자고 약속을 잡은 날이 바로 오늘이었습니다.
늘 예정된 시간보다 수업이 늦게 끝나서 오늘도 그녀가 도착한 시간이 거의 2시가 다 되어가더라고요.
어린 딸을 수업에 데려다주고 데려와야 하는 지혜나무님을 기다리면서
우선 구스타브 두다멜 인터뷰 기사를 틀어놓고 이야기 꽃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은유씨를 처음 만난 것은 수유 너머 자본세미나 모임에서였습니다.
몇 개월을 함께 수업을 받았지만 같은 조도 아니고 , 정식으로 인사할 기회도 없었지요.
그러니 그 때는 만났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루니 세미나에서 둘이서만 월요일 목요일 두 번의 수업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한 번씩이라도 수업에 참석할 수 있다는 콜이 왔고 마침 둘이서 같은 월요일 수업에 참석하게 된 날
처음으로 제대로 인사를 하고, 말문을 트게 되었는데 그 때부터 이상하게 이런 저런 인연으로
지금은 상당히 가까운 사람이 되었습니다.제게 끼치는 영향면에서도 그렇고요.

루크레티우스가 말하는 클리나멘이란 바로 이런 현상을 말하는 것일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드는
날이었습니다. 원자가 직선 운동을 하다가 어느 하나가 궤도를 이탈해서 미끄러지면 거기에서 우연한
만남이 이루어진다는 가설에서 시작한 이론이 현대 철학에서 우연한 마주침으로 이어지면서 생각의
실마리를 던져주고 있는데 저는 철학대 철학에서 그 글을 처음 만난 이후로 묘하게 끌리고 있답니다.

지혜나무님이 오고 밥상을 차려서 점심을 먹으면서부터 시작된 이야기보따리가 자리를 떠날 때까지
계속 되었는데요 오늘 이런 자리를 마련하고 보니 우리가 사람을 너무 여럿이서 만나면 과연 실한
대화가 이어지기 쉬운 것일까, 되돌아보면서 생각할 만큼 서로 하고 싶은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지요.

저녁 나들이가 가능한 날, 홍대 앞 테라스가 있는 곳에 가보자는 말로 약속을 삼고 그녀들이 가고 난 다음
포레의 꿈을 꾼 후에를 들으면서 샤갈을 보고 있습니다.
갑자기 샤갈을 보는 이유는 아무래도 수요일 아침 공부에서 샤갈을 만난 덕분이겠지요?
자주 보던 그림인데도 그림에 관한 자세한 설명을 읽고 나서 바라보는 그 그림은 예전의 그 그림이 아니란 것
그래서 그림읽기는 그림보기 못지 않게 중요한 일로 제겐 자리잡고 있는 셈이랍니다.

점심 시간이 길어져 운동을 못 갔지만 가끔은 이런 낮시간의 맛난 점심에 이은 더 맛깔스런 수다도
좋겠다 싶은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