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이버상으로는 여러 차례 그림을 보았으나 실제로 그림을 볼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던 고트리브
게다가 화가의 얼굴을 보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네요. 반가운 마음에 사진을 찍었으나 정작 그림은 촬영불가라고요.
대형 캔버스에 그려진 마치 동양화같은 느낌의 그림들. 가끔은 파격을 느끼게 하는 그림들을 보면서
마음이 확 열리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피렌체에서는 아무래도 르네상스 그림들 위주로 보게 되었는데
베네치아에 와서 첫 그림을 현대 미술과 만나니 느낌이 확 달라서 더 즐거운 시간이 되었던 것일까요?
이것이냐 저것이냐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달라서 오히려 더 보완이 되는 그런 시간이라고 할까요?

사실 여행기의 마지막을 보람이가 내일 떠나고 나면 어수선한 마음도 추스리면서 매듭을 짓고 싶었는데
밤에 수업 마치고 들어오니 카루소님이 올려 놓으신 브람스, 그러니 앉아서 자꾸 듣게 되고
그렇다면 하고 마지막 사진을 추려서 글을 쓰게 되네요. 공명하는 힘이라니!!

잠에서 막 깨거나 졸리는 시간대를 골라서 사진 정리하는 것만 해도 상당한 시간이 걸리더군요.
물론 이 곳에서는 촬영이 가능하다 아니다 이런 것을 여행후 1달이나 지나서 기억할 리는 만무하고요
사진기에 다 드러나 있어서 기억을 되살리는 일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아니 이상한 것이라고 해야 할까요? 마지막 날 분명히 무라노, 부라노에서도 사진을 찍었다고
기억하는데 감쪽같이 사진기에서는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베네치아에서 그렇지 않아도 아파서 제대로 감상도 못한 마당에 마지막 날 사진도 사라졌으니
페기 구겐하임과 그 뒤에 이은 현대 미술관까지 그것으로 여행기를 마무리하고
미진했던 베네치아는 언젠가 새로운 인연이 닿으면 다시 가서 제대로 보고 싶다고 마음을 정했습니다.

왜 여행기를 쓰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보게 되네요. 기록을 통해서 지난 시간을 되살려 추억하는 것도
있지만 여행기를 쓰는 일 자체가 제게 새로운 계기가 되기도 하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읽어볼 기회가
생기면 이제는 기억에서 거의 사라진 이미지만 남은 시간에 실체를 다시 부여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한 사람들과 더불어 나눌 거리가 생긴다는 것, 이것은 제가
다른 사람의 여행기를 읽으면서 느끼는 즐거움이 반영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답니다.

그림을 마음껏 본 다음 밖으로 나오니 뮤지움 샵이네요.
보고 싶은 책, 구하고 싶은 책이 가득하지만 영어가 아니라서 포기하고 공연히 심술이 나서
주변을 두리번 거리다 재미있어서 찍어본 사진입니다.


밖으로 나오니 아직도 못 본 조각이 눈에 들어오네요.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그녀를 저도 살짝 찍어보기도 하고

여기서 나가 어디로 갈까 행선지를 정하느라 골몰하고 있는 그녀를 찍어보기도 하고


내일이면 하루 일찍 떠나는 ,outreach님 부부를 위해서 선물을 사러 들렀던 상점입니다.

두 사람덕분에 얼마나 즐겁고 짜임새 있는 여행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처음 함께 한 여행인데요
다음에도 가능하면 함께 가자고 선뜻 제안할 만큼 좋은 동행이 되었던 두 사람에게 지금도 마음으로
감사하고 있답니다.

오전 일찍부터 움직여서 적당히 배가 고픈 시간, 맛있는 점심을 먹고

아직 피자가 들어갈 배가 남았다는 사람들은 조각 피자를 시켜서 더 먹는 틈을 타서 피자는 사양한
사람들은 그 사이에 동네를 걸어다녔지요.

한 사설 갤러리 앞에서 본 그림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번 여행에서는 이렇게 거리에서 찍은 사진이 많아졌다는 것이 큰 변화로군요.
앞으로는 아무래도 이렇게 박물관, 미술관 이외의 장소에서 발견하는 즐겁고 새로운 것들에도 관심을
많이 갖게 될 것 같은 예감이...

아주 최근에 세워졌다는 두 곳 현대 미술관을 찾으러 가는 길에 만난 성당입니다.

그러고 보니 베네치아에서는 제대로 구경한 성당이 하나도 없군요. 심지어 베네치아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산 마르코 성당도 그 다음 날 찾아가니 예배중이라서 내부를 볼 수 없다고 해서 아니
이럴 수가 놀라고 말았습니다.결국 동영상을 구해 와서 집에서 세심하게 이 곳 저 곳 살펴보았지만
그 자리에서 제대로 보는 현장감을 느끼지 못한 것은 두고 두고 아쉬운 일이네요.



두 곳 현대미술관은 페기 구겐하임에서 본 그림을 넘는 (넘는다는 의미는 시대적으로 더 현대이고
그러다보니 문제의식이나 표현기법에서 더 나갔다는 의미로 ) 그림들, 설치미술, 다양한 기법을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마치 퐁피두의 한 층에서 보던 그림들같다고 할까요?
충격으로 와 닿는 작업들도 많아서 아, 이 곳이 지금 활동하는 작가들이 고민한 흔적인가, 아니면
지금 막 작업을 시작한 사람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전시를 보던 기억이
새록 새록이네요.

르네상스란 시기에 관심을 갖고 언젠가 그 곳에 가서 만나고 싶다고 생각한 그 현장에서 보낸 열흘의
시간, 그 시간동안에 만난 다양한 건축, 조각, 그리고 회화,사진들, 그 기간의 압축된 파일은 오랫동안
제 안에 흔적으로 남아서 여기서 저기서 불쑥 불쑥 만나게 되겠지요. 강했던 기억이 희미해져도
그렇게 만나는 그 시간의 밀도는 여전히 소중할 것이고 그 시간에 함께 한 사람들과의 인연에 대해서도
기쁜 마음으로 새로운 끈을 만들어가게 될 것 같은 예감입니다.

전화 통화중 한 친구가 말을 하더군요. 그런 밀도높은 시간을 보내고 나니 이제 그림 보는 일이 조금은
더 친숙해졌노라고, 그런 기회를 함께 하게 되어서 고맙게 생각한다고요.

그런 효력의 하나가 여행 후 거의 바로라고 할 수 있는 시간에 동서남북 흩어져 사는 친구들이 모여서
음악회와 전시회에 가는 기회를 어렵사리 만들기도 했다는 것인데요, 평소라면 참 어려운 시간내기가
아니었을까 싶더라고요.

여행기를 다 마무리 하기도 전에 뉴욕에 관한 책을 읽고 있는 중입니다. 꼭 가게 된다고 장담할 수 없어도
이상하게 그 곳에 관한 책에 눈길이 가고 그 안에서 만나는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머릿속에 들어와 박히는 것을
보니 이미 제 안에서 새로운 여행이 무르익고 있는 기분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