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요일의 일입니다.
문희,성희의 엄마인데 기억나세요? 그런 전화를 받았습니다.
물론 기억하고 말고요. 문희는 보람이의 학교 친구이기도 한데 (보람이는 중학교때 모범생이 아니어서
그 친구와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지만 그런 아이가 같은 학교에 있다는 것이 영광이라고 말하던 ,그리고
그런 딸을 키우는 엄마는 좋을 것 같다고 서슴없이 말해서 저를 놀라게 했던 아이랍니다.) 고등학교 2학년때
제 이야기를 들었다고 엄마와 딸이 찾아와서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스스로 너무나 잘 알아서 공부를 하지만 뭔가 궁금한 것이 있을 때 다만 물어볼 수 있는 선생님이 필요하다고
느낀 그 아이가 엄마에게 부탁해서 찾아왔다고요.

그 아이가 고 3때 당시 중학교 3학년이던 동생 성희가 왔는데 한참 예민하게 사춘기를 넘기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만나본 순간, 언니와 정말 다르지만 매력있다고 느낀 ,아니 어쩌면 더 강렬하고
재미있는 삶을 살 수 있는 아이로구나 느꼈습니다.
그림에 관심이 있던 아이는 밀라노가 가장 가보고 싶은 도시라고 하더라고요.
왜? 그 곳에 자신이 원하는 것이 다 있을 것 같다고요.

그렇게 함께 공부하다가 언니는 서울대학교에 그리고 동생은 홍대 미대에 합격을 해서 마음껏 축하를
해주었던 기억이 났습니다 .
그런데 어머니가 찾아온 것은 아이들의 문제때문이 아니고, 지금 일하고 있는 직장에서 (일반 직장이라기보단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해결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모인 직장이거든요) 여자 직원들끼리 계를 들어서
본인 차례가 되면 다 타가지 않고 조금씩 각출해서 무언가 의미있는 일을 하자고 의견을 모았다고 하더군요.
그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 서로 의논해서 한 번에 지원하는 것 말고 사회복지사와 연결해서 진짜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갈 수 있게 하자, 그래서 생각한 것이 고등학교 아이를 돕자고 정했다고요.
연결이 된 집은 사별하고 아이를 혼자서 세 명이나 기르는 어머니였고 큰 아이가 고등학교 1학년인데
가장 원하는 것,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물으니 영어공부를 하고 싶다고 말을 했다고요.

그래서 생각이 나서 도움을 주실 수 있는가 상의하러 왔다고 합니다.
그렇군요. 물론 저는 좋지만 과연 사교육을 해서 돕는 것에 사람들이 돈을 쓰는 일에 합의가 되었나요?
더 한 사연의 사람들도 많을 터인데
그랬더니 오히려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라서 그런지 한 번에 조금 돕는 것보다 공부해서 자립하는 상황이
더 좋다고 생각하더라, 매장에서 일하는 사람들까지 포함해서 한 달에 1만원씩 지원하기로 약정한 사람들이
있어서 어떻게든 그 아이가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시기까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고요.

그렇다면 내 쪽에서도 재능기부 형식으로 3분의 2, 그 쪽에서 3분의 1 부담하는 형식으로 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수업자체가 아니라 책값이네요. 사실 공부를 시작하면 계속 무언가를 읽고 풀고 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입시생의 경우 ) 그것에 대해서 어떻게 할 지 생각을 해보셨는지요?

그렇지 않아도 오면서 그 문제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았다고, 두 사람이 동시에 같은 생각을 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실제로 학교 선생님을 만나서 그 아이의 가능성에 대해서 타진을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도움을 받을 만한
마음의 준비가 된 아이인가 하고요. 그렇다면 학교 선생님들에게 주어지는 참고서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도
있고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방법도 있을 것 같고요.

그 이야기를 일단 마무리하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이들 이야기, 그녀가 일하는 이야기, 그동안의 삶에 대해서도요. 물론 제 이야기도 하게 되었고
살림하랴, 일하랴, 고시준비하고 있는 큰 아이를 챙기랴, 몸이 여러개라도 감당이 되지 않을 만큼
다양한 일을 하는 그녀를 보면서 제가 누리고 있는 시간여유에 대해서 감사하기도 민망하기도 했지요.
그동안 조금만 시간 여유가 있었으면 하고 싶었던 일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녀가 하고 싶은 일들이
조금씩이라도 이루어지길 마음깊은 곳으로부터 빌게 되었지요.

함께 나와서 걸어가면서도 이야기를 계속 하다가 서로 헤어지는 길에서 저도 모르게 말을 했지요.
언제라도 이야기가 하고 싶으면 오시면 된다고요.
사실 시간 여유가 별로 없는 제겐 늘어지게 이야기를 할 기회가 별로 없는 편인데 한 번의 만남으로
상당히 깊은 곳까지 이야기가 가능했던 시간이 값지다고 느껴서 저절로 그런 말을 하게 되었답니다.

아무래도 다음에 만나면 문희,성희의 엄마로서가 아니라 누구씨로 이름 부르면서 조금 더 기쁜 마음으로
이야기나누게 될 것 같은 즐거운 예감이 드는 아름다운 만남이었습니다.

더구나 그녀의 제안으로 제게도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새로운 길을 만나게 된 셈인데요 이것으로 갖고 있는
재능을 조금 더 의미있는 것에 쓸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을 고맙게 생각합니다.


아주 작은 출발이지만 그런 출발자체가 힘이 있는 법이니까요.
나는 무엇을 더 할 수 있는가, 나 혼자가 아니고 주변 사람들과 더불어, 이런 생각을 구체적으로 해 볼 수 있는
기회도 되었으니 그녀가 제게 새로운 씨를 뿌린 셈이기도 하고요.
씨를 키우는 것은 전적으로 제가 할 일이지만 그래도 그런 씨앗으로 서로 만나서 이제는 좋은 친구가
될 법한 사람을 만난 것도 즐거운 그런 시간이었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