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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의 명장면, 생활속의 즐거움

또, 여행가세요?

| 조회수 : 1,639 | 추천수 : 17
작성일 : 2011-01-29 11:23:04

수요일날 동네의 외환은행에 엔화를 사러 갔을 때의 일입니다.

매달 조금씩 외국돈을 구하다 보니 창구에 앉아서 일하는 직원과 안면이 생겼고 그녀가  유로를 사서

여행갔다 온 것을 아는지라 궁금했는지 물어보더군요. 제가 가는 것이 아니라 딸이 일본에 갈 일이 생겨서요.

비상한 기억력의 그녀는 다시 물어봅니다. 지난 번에도 일본가지 않았나요? 그 딸이

아, 그 때는 외국인을 위한 취업박람회 설명을 들으러 간 곳이고요, 이번에는 시험이랑 인터뷰가 있어서요.



일본에 있는 은행에서 인터뷰를 한다는 말을 들은 그녀는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 것인지 물어보네요.

어떻게 가능한가, 한국에서 태어나서 한국에서만 자란 아이가

저도 그것이 신기한 일인데요, 그 모든 인연은 어린 시절  갑작스러운 부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엄마, 나 퀼트 배우고 싶어, 퀼트가 뭐니? 사실 저는 퀼트가 무엇인지 전혀 몰랐기 때문에 그렇게

물어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 그것 고급바느질이래. 바느질이면 바느질이지 고급바느질이 뭔가 저는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워낙 스스로 무엇을 배우겠노라 말을 한 적이 없는 아이라 반가운 마음에 어디서 배우는가 물어보았습니다.

어디선지는 모르지만 배우고 싶다니, 참 난감하더라고요.



퀼트 선생님을 수소문해서 만나게 되었는데 그 집을 드나들면서 일본어로 된 퀼트 잡지를 보게 된 보람이는

그 잡지의 내용을 읽고 싶어서 일본어를 배우고 싶다고 하네요. 그래? 영어에는 별다른 흥미를 보이지 않던

아이여서 그것도 고마운 마음에 역시 일본어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는데요 그녀는 보람이가 생각하는 엄마가

갖고 있었으면 하는 자질을 많이 보여주신 분이었습니다. 덕분에 그 아이는 그 집에 일본어를 배우러 가는 것인지

아니면 엄마가 줄 수 없는 것을 채우러 가는 것인지 모르게 되었지요.

쌍둥이 자매가 있는 그 집에 가서 공부를 한 다음, 책가방은 그대로 그 곳에 둔채 (집에는 들고 오지도 않고 )

선생님이 만드시는 맛있는 빵도 먹고 아이들과 놀아주기도 하고, 한없이 그 집에서 놀고 오는 겁니다.



늘 시간이 모자랐던 제겐 그 아이가 시간 쓰는 방식이 이해가 되지 않았고, 더구나 레슨비를 내고 배우는

언어에서 아직도 기본 단어를 (가타가나) 읽고 쓸 수 없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해가 거듭되어도요.

그래서 선생님께 여쭈어 보니 글씨읽는 것은 서툴러도 귀로 듣는 것은 저보다 빠른 것 같아요 그러니

걱정하시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하셨지만 저는 그것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지요.

당시에 집에서 일본어를 듣는 흔적은 없었으니까요.

알고 보니 선생님댁에서 일본 방송을 함께 볼 수 있는 시간이 많았다고 하더군요. 그러니 그 선생님의 배려가

그 아이에겐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 셈인데요 나중에 알고 보니 보람이의 언어 적성은 소리를 듣는 일에

빠르고 그래서 덕분에 일본드라마나 영화를 통해서 듣는 일이 편하게 되었답니다.



그런 사실도 모르고 저는 기본도 되지 않는 상태에서 계속 레슨비를 낼 수 없으니 그만 다니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알았다고 한동안 수업을 그만 두었던 아이가 어느 날 부탁을 하더라고요.

한 번만 더 기회를 주면 하루안에 가타가나를 외워서 시험 보고 통과하면 다시 다녀도 되는가 하고요.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렇게 바뀌었나 하고 물어보니 당시 보던 일본영화의 주인공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그 사람과 인사하고 싶다고요. 아니 이렇게 엉뚱한 이유로?

그런데 요즘 제가 스페인어를 배우는 이유가  시몬 볼리바르 유쓰 오케스트라를 보고 나서 베네주엘라에서

가서 오케스트라를 창단한 사람을 만나보고, 그들의 연습을 지켜보면서 한동안 음악을 더불어 제대로

살아보고 싶다는 이유인 것을 보면 모전여전일까요? 그것은!!



그래서 어느 날 한동안 방에 들어가 있던 아이가 나오더니 엄마,지금 시험 봐도 될 것 같아라고 말해서

저도 모르는 가타가나를 눈여겨 보면서 시험을 치루고 한 번에 통과한 보람이는 다시 일본어를 배우러

그 선생님 댁에 드나들게 되었지요. 이제는 조금 큰 아이가 말을 하더군요.

엄마, 나는 어른이 되면 그 선생님처럼 집에서 조금씩 일하고 아이도 키우는 그런 사람이 되면 좋을 것같아.

그러니?  그 한 마디에 들어가 있던 제 마음속의 풍랑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엄마를 일부러 비난하려고 한 말은 아니었겠지만 그 선생님과 거의 정반대로 살고 있던 제겐 그 말이

이상하게 뼈아프게 다가왔었답니다.



중학생이 되어서도 공부에 관심이 거의 없었던 보람이는 한동안 깻잎 머리를 하고 상당히 불량한

표정으로 친한 친구 몇과 거리를 돌아다니기도 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엄마와는 다른 딸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고 저도 고민이 깊어지는 시기를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중학교 3학년이 되는 겨울, 마음잡고 공부하겠다고 하더니 한 일년 반짝 공부를 하더군요.

문제는 수학이 모자라서 울고 불고 했지만 그래도 다행히 귀가 밝은 덕분에 영어 리스닝에서 솜씨를

발휘하고, 그 덕분에 난생 처음으로 학원에서 선생님에게 외국에서 살다온 아이냐는 질문을 받았던 모양입니다.

그것이 약이 된 것인지 아이는 공부에 관심이 생겼고 우여곡절끝에 외고의 일본어과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요

일본어를 1지망으로 쓴 유일한 아이였다고 들었습니다. 나중에



법대 아니면 의대, 이런 학과만을 바라던 아이들속에서 숨막힌다고 학교 다니기 싫다고 노래를 불러서

한 동안 힘이 들었지만 ,학과 성적은 중간 이하라도 일본어로 당시 유행하던 소설을 읽던 아이에게 반 아이들이

다른 시선을 보내고 일본어 선생님들이 실력을 인정해서 일본어 신문을 만드는 일이나 일본에서 교환학생이

오면 안내 역할을 맡기기도 하는 등 그 아이에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수 있는 일이 계속 생겼던 고등학교

3년, 참 즐겁게 학교를 다니더군요. 그 아이의 인생에서 학교가 그렇게 재미있었던 것은 처음이 아닐까 싶더군요.



교환학생으로 프랑스에 갔을 때도 언어 덕분에 일본인 친구들이 생겨서 지금까지 연락을 주고 받고

실제로 한국에 오기도 일본에 가서 만나기도 하는 생활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4학년에 올라가기 전 이미 취업이 시작되는 일본, 그 정보를 듣고 일본으로 취직을 하고 싶다고

하네요. 일본으로 취업을? 아무리 읽고 쓰는 일에 무리가 없다고 해도 일반상식이 모자라는 아이가

과연 가능한 일인가 걱정이 되었지만 해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생기지 않으니 해보라고 권했습니다.

인터넷에서 뒤져서 회사를 알아보고 자신의 소개서를 보내는 과정에서 무엇을 쓸까, 어떻게 쓸까를 서로

상의하기도 하고, 다 쓴 글을 엄마가 읽어보라고 해서 읽다가 이상한 부분은 서로 상의하기도 하는 과정에서

앗 그러고 보니 내 실력도 많이 늘었네 하면서 웃기도 했지요.



맨 처음 보낸 회사에서 서류심사에서 불합격 통지를 받고는 의기소침해 하던 아이가 어느 날 뭔가

즐거운 마음을 감출 수 없는 기분으로 엄마하고 부릅니다. 그런 때는 아이에게 기쁜 소식이 있다는 것을

오래 함께 살다보니 감으로 알게 되었는데요 그래서 제가 대답을 했습니다. 무슨 좋은 일 있구나!!

엄마, 사실 첫 회사에서 거부당하고 많이 심란했는데 그 회사보다 훨씬 좋은 곳에서 연락이 왔어,서류에서

통과했다고.  그 다음에 web상에서 시험을 보고는 망했다고 너무 빨라서 제대로 못 쓰고 찍은 것도 많다는 겁니다.

서류에서 통과한 것이 어디냐고, 이왕 시작한 취직 활동이니 계속 해보다 보면 시험유형에도 익숙해지고

그 동안 공부도 더 하면 되지 않겠느냐, 만약 일본회사 취직이 어려우면 경험으로 삼고 한국에서 취직 활동이

시작하는 6월부터 시도해보면 늦지 않다고 아이를 달랬습니다.



엄마,소프트 뱅크 알아? 소프트 뱅크 무슨 은행이름이 그렇게 이상하니? 아니 은행이 아니고 소프트 웨어

관련일을 하는 곳이야, 혹시 거기 손정의라는 재일 동포가 만들었다는 회사 아니니? 그런 것 같애

그래서 알게 된 회사, 그 곳에서 일단 서류가 통과되었다고 시험치루라고 연락이 왔는데 문제는 지금 하고

있는 인턴이 31일 끝나고 시험은 30일까지 일본에 가서 치루어야 한다는 것, 그래서 고민고민하다가

주말을 이용해서 시험치루고 오는 것으로 결정을 했지요.

그렇게 비행기표를 알아보던 중  웹상에서 시험치고 거의 포기하고 있던 은행에서 인터뷰 하러 오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일정을 맞추기 어려워서 다른 나라에 취직하는 것이 이렇게 복잡하구나 어찌 해야 하나

궁리를 하다가  시간을 바꾸어서 29일 오후 시험, 30일 오전 면접 이렇게 나란히 일정을 잡고

오늘 새벽 보람이가 떠났지요.



일본까지 가서 떨어지면 망신스러우니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길래 웃었습니다.

그것이 무슨 망신이냐고요. 서류 통과하는 것도 어렵고, 일차 시험에 붙기도 어렵고 그러니 그런 과정을

거치는 것 자체가 경험이라고요. 어제 밤에 만나서 함께 저녁먹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버스타고

들어오는 길에 엄마 사실은 오늘 밤 시험이 하나 더 있어 그렇게 말을 하네요. 어디인데?

아지노모토라고 들어봤어? 어, 그거 한국의 미원이랑 비슷한 것 만드는 곳 아니야? 국제적으로 지점이

다 있어서 일부러 고른 회사라고 합니다.



수학과 언어가 시험과목인데 언어는 지난 번 본 시험과 비슷한 유형이 나오더라고, 아무래도 시험문제의

풀이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고요. 그렇다면 여러 번 치루다보면 시험도 편하게 볼 수 있겠네 하고 웃었습니다.

여섯시도 되기 전에 일어나서 아이가 나가는 것을 보고 잠이 들었는데 지금 공항에서 떠나기 전이라고

연락이 와서 일어나고 나니, 뭔가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서 수선스런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마티스

그림을 골라서 보는 중입니다.



그림이라면 현대화 밖에 보지 않는 보람이, 그래서 함께 좋아하는 화가가 몇 안되는 중에 그래도 이 화가

하면서 관심을 갖는 마티스, 더구나 요즘 불어 시간에 마티스를 읽기 때문에 저도 관심있게 보는 중인

화가라서요. 어제 서점에서 본 마티스 책의 첫 머리에 그는 화가가 되기 위해 태어난 운명은 아니었다가

첫 머리에 있더군요. 그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자발적으로 선택해서 시작한 언어가 그 아이에게 선사해준 세계, 그것의 끝이 어디가 될지 모르지만

일희일비하지 않고 조금 더 큰 안목으로 성장하는 아이가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들꽃
    '11.1.29 2:32 PM

    보람양이 자신의 인생을 잘 설계하면서 살아갈
    참한 젊은이로 보여집니다^^
    일본 잘 다녀오고 좋은 결과도 있기를 바래봅니다.

    이미 충분히 멋지고,
    삶을 열고 만들어갈 준비가 된 보람양이니까
    어떠한 일들도 잘 해낼 수 있을거에요.

  • 2. 예쁜꽃님
    '11.1.29 9:04 PM

    정말 멋진 보람양이네요
    무한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이렇 게ㅐ 우리나라도 발전하고 잇다는 생각에 맘이 편해 지네요

  • 3. 칼라스
    '11.1.29 10:04 PM

    정말 대견한 따님이네요..

    아직은 완성되지 않았지만 한걸음 한걸음 자신이 원하는 세상으로 다가가는 그 모습이 너무 보기 좋네요.. 엄마와 꼭 어울리는 따님이네요..

    우리나라가 이런 젊은이들이 있어서 발전되고 있나봐요. 제 마음이 든든해 집니다.^^*

  • 4. intotheself
    '11.1.30 9:02 AM

    마음으로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제 낮 수업하고 있던 중 이모와 통화해서 연락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필기시험은 걱정하지 않을 만큼은 치뤘다고요.

    정말 결과에 상관없이 그 아이가 지금 경험하는 것이 제겐 상상이 잘 되지 않는 것이라

    마음으로 응원하고 있는 중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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