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아침 이른 시간에 메디치 리카르디 팔라초를 본 다음 잠시 시장에 들렀습니다.
다니면서 오렌지를 비롯한 과일을 먹을 수 있게 준비해주신 outreach님 덕분에 새로운 경험이 되었네요.
그런데 과연 혼자 다녀도 그렇게 잘 먹고 다닐 수 있을지 그것은 아직 미지수이지만요.

이 곳에 오니 사람사는 냄새가 물씬 납니다.


한쪽에서는 과일을 고르고, 한 쪽에서는 사진을 찍기도 하고, 그러다가 커피 한 잔 마시자고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주문한 커피가 나오기 전에 조금 더 둘러보자 싶어서 여기 저기 돌아다녔지요.


수녀님들이 직접 이렇게 이른 시간에 장보러 나오시는구나 신기해서 뒤에서 찍어보기도 하고

드디어 커피를 마시러 자리에 앉았는데 우리에게 커피를 제공한 주인장께서 계속 미소를 보내고 있는 겁니다.
친절이 지나친 것인가? 그런에 아뿔싸 알고 보니 선불로 지불을 하지 않았는데 이야기를 못하고 계속
보고 있었던 모양이더라고요.
더 곤란한 것은 이상하게 갑자기 몸이 아프기 시작해서 어쩔줄을 모르는 상황으로 돌입한 것인데요
아니 어떻게 하지? 걱정이 될 정도로 급속도로 상태가 악화되기 시작합니다.
그래도 산타 마리아 노벨라에 가서 마사초의 삼위일체를 보아야 하는데 그런 마음에 일단 일행과 함께
움직였습니다.

카메라를 들 엄두가 나지 않아서 단 한 장의 사진도 못 남긴 유일한 곳인데요 정말 마사초의 삼위일체
딱 한 점만 보고서는 일행들이 움직이는 동안 혼자서 의자에 앉아있겠다고 했습니다.
몸이 피곤하다가도 무엇을 보려고 하면 갑자기 기운이 나곤 해서 함께 한 일행들이 신기해하던 제가
의자에 앉아 있고 싶다고 하니 아 정말 많이 아픈 모양이구나 실감이 나는 모양이더라고요.
의자에 앉아서 깜빡 잠이 들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른채로.

그래서 제겐 산타 마리아 노벨라에 관한 기억이 거의 없이 공백으로 남아 있는 희안한 경우가 되었지만
아무래도 그런 이유로 더 기억에 남는 셈이라고 할까요?
덕분에 오늘 밤 마사초의 삼위일체를 찾아보게 되었는데요 마침 preview라는 제목으로 구도를 보여주는
도판이 있네요.


마사초, 너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떴지만 그는 살아있는 동안 브루넬레스키, 도나텔로,알베르티, 기베르티
우첼로, 이런 쟁쟁한 사람들과 동시대를 살면서 자극을 주고 받았다고 하더군요.
오늘 강남 역사 모임에서 대공황에 관한 글을 읽고 나서 서점에 가서 구한 책 중의 하나가 케인즈와 하이에크를
비교하면서 쓴 글이었습니다. 읽다보니 두 사람다 젊은 시절에 서클에서 자양분을 얻으면서 함께 교류했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것이 어떤 일이든지 자극을 주고 받으면서 성장할 수 있는 그룹을 만난다는 것의
중요함에 대해서 생각을 하던 중에 마사초 그림을 보자니 서로 다른 시대, 서로 다른 분야이지만 그런
중요성만은 변함이 없다는 것에 저절로 관심이 가네요.

요즘 오래 전에 구해서 읽었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 관한 책을 다시 읽고 있는데 그 책에서도 마사초의
그림과 더불어 그가 갖고 있는 중요성에 관한 것을 상당히 자세하게 설영하고 있더군요. 한 사람에
대해서 읽는다고 해도 그 사람을 형성하게 된 시대, 그가 살던 곳에 대한 설명, 그곳의 지적 지형에 대한
이야기가 빠질 수 없는 법이니까요.
산타 마리아 노벨라를 나와서 산타 크로체로 가는 도중 이대로 민박집에 혼자 들어가서 쉬는 것이
나을까, 아니면 그래도 함께 가는 것이 좋을까 마음의 결정이 서지 않습니다.
그래도 산타 크로체에는 미켈란젤로의 무덤이 있으니 보고 싶다는 마음이 저를 끌어당기더군요.
그런 마음을 알기라도 했다는듯이 표사는 곳으로 가보니 산타 크로체와 카사 브오나르티를 동시에 살
수 있다는 설명이 눈에 들어옵니다. 아니 그렇다면 카사 브오나르티가 근처에 있단 말인가?
갑자기 몸에 이상한 반응이 오면서 정신을 차리게 된 정말 희안한 경험을 한 순간이었습니다.

가고 싶다고 생각하던 곳에 갈 수 있게 되자 갑자기 기운이 나는 ,

물론 몸이 완전히 개운해진 것은 아니더라도 카메라를 꺼낼 기운이 난 것을 보니 신기하더군요.

미켈란젤로를 존경했던 바사리가 주동이 되어서 마련한 묘소앞에 생전에 그가 메디치 가문의 묘소를 작업했던
모양을 본떠서 만들어 놓았네요.


추방당한후 결국 피렌체로 돌아오지 못하고 객지에서 죽은 단테, 피렌체에서는 그를 기려서 이렇게
산타 크로체안에 장식을 해놓았다고 합니다.

이 곳안에도 역시 보수작업이 진행중이어서 아, 그래서 가는 곳마다 입장료를 조금 쎄다 싶게 받는가보다
고개 끄덕이게 되기도 .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보니 바로 이 곳에 브루넬레스키가 작업한 파치 예배당이 있는 곳이더라고요.



사진을 보고 있으려니 역시 기운이 없었을 때 찍은 것이라 무엇이 무엇인가 뒤죽박죽입니다.
다만 그 다음에 간 곳이 카사 부오나르티라서 시간 순서로 보면 이 곳이 바로 산타 크로체로구나를 구별할
수 있을 정도라니, 그 당시의 몸 상태가 얼마나 지독히 힘들었는지 미루어 짐작할게 되네요.
못 견디고 그냥 민박집에 돌아갔더라면 하고 생각하니 아찔하던 기억도 나고요.



온전하게 보존된 것도 좋지만 이렇게 군데 군데 떨어져 나가고 남은 흔적을 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하게
되더군요.



녹색이 들어간 대리석이라, 이상하게 여러 곳에서 만난 저 대리석을 오래 기억하게 될 것 같아요.
그런데 그 공간에서 이슬람을 떠올리게 되고, 그러다보니 터키의 이슬람 사원에서 보았던 아름다운 광경도
기억이 나서 재미있는 연상이 계속 되기도 했답니다.
어설프게 보아서, 더욱 아쉽고 그래서 더욱 생각나는 이 두 곳, 아무래도 그런 결핍감때문에 어디선가
책에서 만나면 더 자세히 관심갖고 들여다보게 될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