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치 리카르디 팔라초에서 물론 가장 관심갖고 간 것은 동방박사의 행렬이었지만 그 곳에서 꼭
그 작품만을 만나는 것은 아니란 점, 늘 의외성에서 진짜 선물이 생기는 법이란 점은 이 곳에서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일층을 돌아다니다가 이 얼굴을 자주 만났지요. 당연히 궁금해서 물어보니 이탈리아의 시인이라고 하네요.
어떤 시를 썼는지는 모르지만 단눈치오라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가물가물 떠오르네요.

안에서 밖을 내다보니 정원이 눈길을 끌더군요.

그렇다면 이 정원이 미켈란젤로가 들어와서 살았던 집의 정원인가, 갑자기 생각은 엉뚱한 곳으로 비약을 하고

당시에 신플라톤주의자들이 모여서 토론을 했다는 곳도 여기일까, 아니면 다른 곳일까 역사적인 장소에
들어와 있다는 실감을 하게 되더라고요.

유리너머로 안에 뭔가 진열된 것이 보입니다, 아무리 바빠도 잠깐 들러가고 싶어지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옛 작품들을 원작은 아니지만 여러 점 볼 수 있었습니다.


뒤에 붙어 있는 피아노 치는 남자의 사진에 관심이 가서 한참을 바라보기도 했지요.

같은 조각이라도 어떤 배경으로 놓여 있는가에 따라서 느낌이 사뭇 다른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한 사회에 풍미한 사상이라는 것은 그것이 종교이건 사상이건 단순히 정신에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끝나는
법은 없겠지요? 개인이 내밀하게 사용하는 물건에 조차 그 흔적은 강하게 남아 있게 마련이란 것을
강렬하게 느끼게 되는 것, 그래서 다시 그 시대를 들여다보고 지금과 어떻게 다른가, 나는 어떤 영향하에서
살아가고 있는가를 되돌아보게 되는 것도 여행이 주는 매력이 아닌가 싶네요.


오랜 기간 한 가문 혹은 다른 가문이 살아온 흔적이 여러가지로 겹쳐서 남아있는 공간이라 박물관이
주는 것과는 다른 즐거움이 있었지요.

앞으로 천사에 관한 이야기를 읽게 되면 이 이미지도 역시 함께 떠오를 것 같은 장면이었습니다.



모르는 사람인데도 여기서 저기서 자주 만나니 공연히 친숙한 기분이 드는 묘한 날이기도 했네요.


이 공간에서 시인, 이사도라 덩컨을 포함한 예술가들,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흔적, 그리고 단테에 관한
기록을 만난 것, 이런 것은 전혀 예상밖의 일이어서 오히려 더 흥미를 느끼는 시간이 되었지요.


궁금해서 물어보니 20세기 초에 발간된 잡지라고 하네요.


이런 기록을 보고 있자니 시대마다 그 인물이 어떻게 수용되고 변용되는가를 보여주는 전시가 있다면
도움이 크게 되련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직 시도하지 못하고 있지만 단테를 비롯한 그 시기의 문학인들의 작품을 제대로 읽어보고 싶기도 하고요.


물론 현장에서 느낀 강렬함이 그 곳을 떠나면 점점 희미해져서 언젠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경우가
태반이지만 가끔은 남아 있던 불씨가 다른 상황에서 자극을 만나 확 타오로는 경우도 있다는 것, 그것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요.


잡지가 전시된 방에서 만난 장면입니다.


시간여유가 있다면 서로 말은 잘 통하지 않지만 질문에 간간히 대답해주는 그 공간을 지키고 있던
사람과 더 대화를 나누면서 20세기의 이탈리아에 대해서 더 알고 싶었지만 그것은 다음의 과제로 미루고
아쉬운 마음을 담고 그 곳을 나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