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박 5일이면 피렌체만 보기엔 시간이 너무 많으니 외곽의 어느 도시에 가고 싶은가 하고요.
4박 5일이 너무 많다고요? 사실 모자란다고 생각하는데요 하는 제 대답에 혹시 미술사 전공이냐고
묻습니다. 아니 그런 것은 아니지만 미술에 관심이 많아서 일주일도 모자랄 것 같지만 그래도 계속
피렌체에만 있을 수 없어서 4박으로 정한 것이라고 하니 아무리 전공자라도 그렇게 오래 볼 것은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더구나 월요일은 모든 미술관이 문을 닫기 때문에 가능하면 월요일 외곽으로 다녀오는 것이 좋다는 충고에
어라, 이상하다 집에서 미리 본 정보로는 문을 여는 성당, 성당 부속 미술관 이런 것을 합하면 하루 종일도
볼 것이 있을 것 같은데 ,그래도 외곽에도 가고 싶은 도시가 널려 있으니 어떻게 할꼬 고민이 됩니다.
그래도 피렌체에 왔으니 월요일은 피렌체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에 도달했지요.
월요일 아침, outreach님 남편분 _curious란 아이디를 불러주기로 했습니다. 너무나 호기심도 많고
early adapter인데가 살아 있는 컴퓨터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정말 아는 것이 많아서 이야기거리가
무궁무진했습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인데 전혀 불편하지 않게 서로 이야기나누고 제게도 자극이 대단했거든요_
이 제게 아이폰을 소개합니다. 음악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얼마나 쓰임새가 많은지 알려주기도 하고요.
더구나 여행중에 스피커까지 들고 와서 그렇다면 아침에 바흐곡을 들려달라고 해서 바흐로 하루를
시작하는 호사를 누리기도 했지요.

기계치인 제가 아이폰을 구하면 제대로 이용할 수 있을까 걱정했더니 그림 올리는 실력 정도면 이것도
조금만 배우면 인터넷에 글쓰는 것보다 오히려 쉽다고 하네요. 그래요? 조금 더 고민해보겠습니다.
이렇게 대답했는데 그 안에서 보여주는 음악파일에 그만 마음이 많이 흔들리게 되더라고요.

민박집 아래에 있는 슈퍼마켓인데요 한 번도 들어가보지 못했습니다.
사연인즉 슈퍼가 7시면 문을 닫는데 우리가 들어오는 시간이 7시를 맞추기는 불가능하니까요.
7시에 문닫는 슈퍼마켓이라니 정말 그것이 문화충격이었답니다.대부분의 상점이 그렇게 일찍 문을 닫는다면
그들이 집에 가서 식구들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하겠구나, 참 놀랍다, 그래서 우리가 모르는 세상을
보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아침 일찍 집을 나섰는데 바로 앞 건물에 전시를 알리는 표식이 있습니다. 무엇 하는 곳인고 물어보니
아카데미아 미술관이라고요. 앗, 그렇다면 이 곳도 우리가 가고 싶어하는 미술관인데 코 앞에 있네
그렇다면 화요일이나, 수요일에 갈 수 있겠지 마음속에 꼽아두었지요.
우선은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연인들의 성지로 소개된 피렌체 꽃의 성모 성당의 두오모에 오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이 곳은 엘리베이터도 없이 고스란히 걸어서 계단을 오르는 부르넬레스키가
돔을 설계했다고 해서 유명한 바로 그 성당이지요.

민박집에서 걸어서 5분이내에 갈 수 있는 거리라서 오고 가면서 정말 여러 날 숱하게 보게 된 성당이기도
합니다.

이른 아침 번쩍 번쩍 빛나는 저 곳이 바로 세례당 문, 미켈란젤로가 천국의 문이라고 명명했다는 바로 그
문이고, 앞에 사람들이 벌써 많이 모여 있네요.

미켈란젤로가 자신의 무덤에 가져갈 작품으로 작업했다는 피에타가 이 근처의 두오모 오페라 (오페라가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뮤지움을 그렇게 표현하더라고요 ) 에 진품이 있다는 표시판이 보입니다.

아직은 실력이 모자라 성당을 제대로 찍지 못하지만 그래도 빛이 비추는 그 시간을 담아보고 싶었습니다.

표를 사려고 들어가는 입구에 낙서하지 마시라는 표어가 여러 장 붙어 있어도 낙서는 본능일까요?
심지어는 여기에도 다양한 글씨가!!

아직 전기가 없었던 시절, 성당 안을 통해서 올라가는 계단에는 이런 식으로 벽에 빛이 들어오는 공간들이
여러 차례 나옵니다. 지금은 전기 장치를 해서 빛이 있지만 그 때는 이 공간이 얼마나 귀한 곳이었을꼬
하는 생각을 하면서 밖을 내다보게 되네요.

오래 전 우연히 구한 브루넬레스키의 돔이란 책이 있었습니다. 그가 어떻게 돔을 만들게 되었는지 전 과정을
설명하는 책인데 건축에 관한 기본 지식이 없어서 이해가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그 한 주제로 이렇게
재미있는 책을 쓸 수 있다니 저자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읽었지요. 그런데 바로 그 돔을 안에서 올라가고
있다니, 이 시간이 참 소중하다는 생각이 저절로 드는 시간이기도 했고요.

성당안의 천장에 그려진 성화입니다. 계단을 오르던 중에 저절로 발길이 멎게 되는 곳인데요, 그렇게 정체가
되기 때문인지 멈추지 말고 계속 가라는 싸인이 여기저기 써 있네요.


제 뒤에 오던 일본인 커플이 감탄하면서 위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꼭대기에 오르면 더 멋진 풍광이 펼쳐지겠지만 저는 올라가는 내부도 얼마나 재미있던지요!!

이 공간을 만들었던 사람들의 수고와 여기를 올라갔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모인 공간이니까요.
다 올라가니 제일 먼저 눈앞에 보이는 것이 조토의 종탑입니다. 저기도 올라가고 싶은 곳이니 저기서는
두오모가 여기서는 종탑이 서로를 비추는 거울 역할을 하겠지요?



과거로의 여행이 가능한 도시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위에서 바라보는 광경만으로는
그러나 그 안에서 사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을까요? 늘 자신들이 사는 공간에
이방인들이 여행을 오고 가는 도시에서 산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이것은 경주나 부여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도 해당하는 말이 되겠지요?


두오모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좋지만 그 위에 올라온 사람들의 표정을 보는 것도 즐거운 일입니다.

올라왔으면 내려가야 하는 것이 이치인데, 내려가는 것이 올라가는 것보다 더 어렵게 느껴집니다. 아찔하다고
할까요? 인생도 마찬가지로 내려가는 것이 어렵다는 것, 그래서 여행은 인생을 보여주는 하나의 메타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네요.


브루넬레스키가 돔을 만들던 당시의 도구를 진열해놓았네요. 한참을 바라보았습니다.
어쩐지 오늘 피렌체에서의 첫 날이 풍성할 것 같은 예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