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피곤해서 일단 자고 밤에 일어나야지 생각은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일어나보니 새벽 2시 반
결국 도착한 것도 충전기가 제대로 왔는지도 확인하지 못하고 , 한 방에서 자는 친구도 잠이 깨는 바람에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게 되었지요. 여행 내내 너무 일찍 자고 새벽에 깨어서 이야기하는 요상한 패턴이
계속되어서 그것이 참 특이한 경험인 여행이 되었네요.
6시가 넘어서 호텔 로비에 가서 확인하니 확실히 한국인 부부가 숙박했다고 확인해줍니다.
outreach님 방을 찾아가니 벌써 곱게 화장을 하고 준비를 마친 상태더라고요. 부지런한 그녀!!
마침 보람이를 만나서 충전기도 갖고 왔다고요.
밀라노에서의 마지막 날, 8시 기차로 피렌체로 이동해야 하니 짐을 꾸려서 일단 체크 아웃을 하고
두오모 앞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한 번 더 볼 사람은 보고 처음 보는 사람은 조금 더 시간을 들여서 본
다음 두오모 꼭대기에 올라갔다가 스포르체스코 성에 가기로요.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엘리베이터 작동할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그렇다면 먼저 스포르체스코성에 가자
꼭 보아야 할 작품만 먼저 보고 시간을 분배해야 하루를 제대로 쓸 수 있을 것 아닌가 싶어서요.
밀라노에서 꼭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 그것이 제겐 미켈란젤로의 론다니니 피에타였습니다.

도판으로 처음 본 순간, 숨이 멎을 것 같은 충격을 준 작품, 과연 기회가 올까, 그래도 언젠가는 마음에 품고
있으면 볼 수 있겠지 그렇게 오랜 세월 기다려온 작품을 만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설레더군요.
지난해 방스 성당에서의 시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마티스의 말년 작업으로 완성된 로자리오 성당의
단아한 모습을 화보에서 보고 마음에 품어오던 오랜 세월,그 안에 앉아 있자니 저절로 기도가 흘러나오던
묘한 시간이 제게 큰 선물이었듯이 피에타와 만나는 시간을 오래 기다린 보람이 있었습니다.


도판에서는 대를 본 기억이 없어서 신기했습니다.이리 저리 둘러보면서 찍었지요.

론다니니의 피에타는 이 성의 뮤지움이 가장 자랑하는 작품으로 뮤지움 가장 안쪽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일단 이 작품과 눈인사를 하고 한참 바라본 다음 다시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보았는데요
볼 것이 너무 많아서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이 곳에서 더 있고 싶은가, 아니면 출발해야 하는가를

이런 때 갈등을 느끼게 되지요. 조금 더 시간 여유가 있다면 하는 아쉬움도 있고, 아무리 시간 여유가 있다
하더라도 여행객에게는 늘 모자라는 시간이겠지요?

언젠가 다시 밀라노에 올 기회가 있다면 현대미술관과 이 곳 뮤지움은 정말 다시 찬찬히 보고 싶은 곳이라고
마음에 새겨두게 된 장소입니다. 그저 론다니니 피에타가 있는 곳이라고 간단히 알고 온 곳인데 너무 많은
작품이 있어서 놀랐던 곳이기도 하거든요.



여행을 다니다보면 제한없이 사진을 찍게 허용하는 곳, 플레쉬는 곤란하지만 플레쉬를 터뜨리지 않는다면
좋다고 하는 곳, 일체 카메라는 곤란하다고 하는 곳, 이렇게 규정이 다 다르더군요. 어떤 기준에서 그렇게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 곳은 플레쉬가 없다면 가능하다고 해서 마음껏 찍을 수 있었지요.


이번 여행 기간 중 여러가지 형태로 적장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벤 유디트의 이미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창작하는 사람들에겐 강렬한 이미지를 안겨주는 소재여서일까요?
인원이 여섯명으로 늘어나서 그럴까요? 안에서 작품을 보다 보니 서로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일단 밖으로 나왔다가 엇갈린 사람들이 있으니 조금 더 보고 몇 시까지 이 곳에서 만나자고 약속하고
다시 들어갔지요.


사람 마음이 참 이상합니다. 론다니니 피에타를 보기만 하면 오늘 하루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했지만
일단 피에타를 보고 나니 마음이 또 바쁘기 시작하네요.


자신들의 작업이 그 당시에는 아직 예술이라 분류되지 않았을 시기의 석공들, 그들은 그들의 작업이
후세에 이렇게 박물관이란 이름의 공간에 걸려서 후대의 사람들이 감상하는 존재가 되리란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겠지요?



공간을 둘러보다 보니 19.20세기의 디자인을 볼 수 있는 곳도 있더라고요. 아무래도 그런 곳이 더 반갑고
감각에도 맞는 셈이라 앞으로도 실컷 보게 될 중세, 르네상스를 건너뛰고 그곳으로 갔습니다.


작품들을 보고 있는데 이제 나가야 할 시간이 다 된다고 신호가 오네요. 나가는 길을 찾던 중에 만난
것들, 그대로 지나칠 수 없어서 눈길을 주게 되더라고요.


그 곳에 가면 그것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던 것을 만나는 것도 물론 좋지만 전혀 의외의 곳에서
전혀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만나는 것도 역시 신선합니다.



초상화에 왜 끌리는가를 가끔 생각합니다. 성화의 경우에도 집단으로 그려진 경우보다는 한 개인의 인물에
촛점을 둔 경우가 더 마음에 와 닿고 그 사람의 깊은 내면을 보여주는 경우라면 더 자세히 보게 되더라고요.

바니타스 정물화에 해골이 그려진 경우는 흔해도 이렇게 사람이 직접 해골을 들고 있는 경우는 드물어서
눈길이 가는 그림이었습니다.


이제 더는 지체할 수 없는 시간, 그 순간 로렌쪼 로또의 초상화를 한 점 만났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마지막으로 카메라에 담고 나온 그 곳을 뒤돌아보면서 언젠가 다시 와서 제대로 만나자고
마음속으로 작별의 인사를 하게 되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