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다니니의 피에타를 본 아침의 기분을 무엇이라고 묘사할 수 있을까요?
beyond description이란 말은 공연한 수사가 아니구나 ,그런 생각을 한 아침, 그래도 그 작품 하나
본 것으로 밀라노는 떠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다시 두오모로 돌아왔습니다.
만약 계속 엘리베이터 운영을 하지 않는 날이라면 바로 미술관으로 ,아니면 일단 위로 올라가보려고요.
이제 떠날 날이 되니 지하철 노선을 찾아가는 것도 눈에 조금은 익숙해지고, 길거리 간판도 친숙해져서
이 곳에 남아서 조금만 더 살면 글씨도 더 잘 읽을 수 있을 것같고, 사람들의 말도 조금은 더 잘 알아 듣고
의사소통도 할 수 있으련만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그것이 인생인 것일까요?

조금 비싸다 싶은 엘리베이터 비용,그러나 올라가서 그 공간을 본 순간, 그런 마음이 다 날라가버리고
말았습니다. 비가 보슬보슬 내려서 우산을 접기에는 조금 곤란한 날씨, 그래도 개의치 않고 성당 위 공간을
여기저기 걸어다녀 봅니다.

오랜 세월에 걸친 작업도 작업이지만 마모의 속도도 달라서 마치 얼룩덜룩한 패치워크를 보는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요? 한쪽에서는 보수 공사가 진행되고 이미 손을 보아서 다른 곳과는 달리 새 것이란 기분을 확 느끼게
하는 부분들도 있네요. 언제쯤 지나야 그런 흔적을 지울 수 있게 될지 모르는 그런 새로움


가우디를 만나러 갔던 적이 생각나더군요.가우디도 이 성당의 지붕에 올라왔던 적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의 건축물에서 보았던 느낌이 바로 여기에 있구나 ,하늘 아래 완전 새롭다는
것이 가능한가? 그가 무엇을 보고 그것을 흡수해서 자신의 것으로 내놓는 것이 중요하지, 여기 와 보았는가
아닌가가 무엇이 중요한가 생각하다가도 자꾸 그 공간에서 가우디를 생각하는 제가 재미있기도 하고
신기한 느낌이 들기도 하네요. 가우디도 그렇고 자연 지형이 너무 독특했던 스페인 여행이 생각나기도 했지요.

건축사 공부를 마치고 언젠가 건축 기행을 함께 하자던 사람들도 생각났습니다. 이 자리에 함께 했더라면
무슨 이야기들이 오고 갔을꼬 !!


감탄하면서 그 공간을 바라보고 있는 일행을 저도 즐거운 마음으로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대학시절의 친구들, 사실 그 친구들은 의과대학생이어서 친구가 될 확률이 거의 없는 상태였는데 무슨 인연으로
모이게 되었을까, 서로 기억하고 있는 것이 달라서 한참 웃었지요. 저는 의과대학생이었던 제 친구의 소개로
만났다 이렇게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 친구들은 독서 클럽에서 만났다고, 그 독서클럽을 매개했던 것이
바로 영문과의 다른 친구였다고 하네요. 그래? 서로 기억이 달라서 ,그리고 우리들이 기억하고 있는 친구를
친구 딸은 전혀 몰라서 웃기도 했습니다. 우리 엄마가 피아노를 칠 줄 안단 말인가요?
그런 소리 처음 들어보았어요. 무슨 소리야? 너네 엄마가 대학교때 우리들에게 베토벤의 템페스트 연주
들려주기도 했는데
그렇게 오랜 공백을 메우면서 서로를 알아간 시간도 그림을 보거나 건축물을 보던 시간 못지 않게 소중하다는
것, 앞으로는 아무리 바빠도 좋은 음악회나 전시회가 있으면 연락하고 시간을 맞추어서 만나기로 하자는
지키기 어렵지만 지키고 싶은 그런 약속도 하게 되었습니다.
두오모 위를 걸어다니면서 카메라에 담고 있던 어느 순간, 뱃터리의 충전이 모자란다는 신호가 오네요.
앗차, 어제 밤 잠들지 말고 기다려야 했는데, 이미 늦은 후회는 소용없지요.
두오모 위에서 내려다본 밀라노를 마음에 담고 내려와서 , 브레라미술관으로 갔습니다.
브레라, 암브로시아, 그리고 카라바지오를 보려고 갔으나 줄이 너무 길어 결국 선택을 해야 했지요.
시립미술관 분관의 현대미술을 보기로 마음 먹고 (그곳이 저녁 늦게 까지 한다고 해서 이왕이면 다양한
그림을 볼 수 있겠거니 하는 기대, 더구나 모란디 특별전을 한다고 해서요 ) 오래 늘어선 길, 그 곳에 들어가니
거기에 바로 선물이 가득하더라고요. 아니 이게 웬 떡인가 싶게 좋은 그림들을 만나고 피렌체 가는 기차에
오르니 드디어 이번 여행의 백미를 향해서 가고 있다는 실감이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