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수능 날입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시험을 치루게 된 아들, 그 사이의 변화라면
제가 음식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작년 수능날에는 여동생의 아들과 동갑인 관계로 도시락을 두 개
준비해서 제가 새벽에 가지러 가면 되었지만 이번에는 동생이 이사간 관계로 그것이 어렵게 되었지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 궁리하다가 어제 수요 요리 교실에서 본 미소된장으로 끓이는 된장국과 아이가 평소
좋아하는 음식을 장만해서 보내는 것이 제일 좋다는 사람들의 충고를 마음에 새기고 집에 와서 물었지요.
무엇을 먹고 싶은가 하고요. 김치볶음밥이라고 하네요.

새벽에 죽을 먹고 가겠다고 하니 점심 시간이 되기 전에 허기가 질 수도 있어서 그렇다면 간단하게 주먹밥도
두 개 정도 만들어야 하고, 된장국도 준비하고, 거기다 볶음밥, 옥수수 수염차를 조금 끓여서 넣어주고 싶기도
하고, 시간을 계산해보니 빠듯해서 밤중에 다시물을 만들어 놓고 잤지요.
다른 사람들에겐 평생 해 온 일이라서 너무나 간단한 일이겠지만 사실 저는 이번이 전적으로 한끼의 식사
그것도 아이에겐 중요한 날의 식사를 혼자 준비하는 날이라 사뭇 긴장이 됩니다.

새벽 6시에 일어나서 다 준비하고 아이가 집을 나서는 것을 보고 나니 7시 조금 넘은 시각, 현관앞까지만
나오라고 하더군요. 콜택시를 불러놓고 엄마 나 만점 맞을꺼야 신소리를 하는 아이에게 그것 너무 부담되니까
평소 하던대로만 보면 된다고 웃으면서 배웅하고 나니, 아무리 그래도 밖에 나가봐야 할 것 같더라고요.
웃옷을 걸쳐 입고 바로 뛰어 나갔지만 이미 차는 떠난 상태, 돌아오는 길에 후곡 성당에 켜있는 봉헌초앞에
조금 서 있게 되네요. 지나다니면서 늘 누군가 마음을 담아 켜 놓은 초를 그냥 지나치게 되지 않습니다.
물론 초가 무엇을 이루어주는 것은 아니지만 초를 켜는 마음을 생각하게 되면 저도 모르게 제 마음이 따뜻해
진다고 할까요?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말을 그다지 신용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오늘 같은 날,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챙겨가게
된 아이가 맛과 별개로 이것을 자신에게 보내는 응원이라 생각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제겐 끝이 좋으면 다 좋다에 해당하는 경우가 아닐까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다시 잠들기 어려운 아침, 지난 금요일 연주에서 만난 작곡가 야나첵의 음악을 틀어놓고
그림을 보러 들어왔습니다. 평소에 하던 일을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제 마음의 기도가 가능한 것이 아닐까
싶어서요.

이 글을 읽고 있는 수험생 어머니가 있다면 함께 즐길 수 있길!!

수요 모임의 멤버들을 생각합니다. 그녀들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구나, 이제는 한 발 더 내딛을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드네요. 그것이 어디로 가는 발걸음이 될 지 모르지만, 몰라서 더 기대가 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