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면 일단 집을 나서기 싫어하는 나, 그러나 문제는 세 번째 화요일이 정독도서관에서 철학수업이
있는 날입니다. 지난 번에 개인 사정으로 결석을 한 일도 있어서 오늘마저 미적거리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싶어서
(물론 제가 빠진다고 수업이 진행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혼자서 생각하는 예의인 것이지요) 같은 동네에 사는
호수님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오늘 수업 갈 거죠? 간다고 마리포사님이랑 이미 약속이 되었다고 하더니
그렇다면 비도 오니 차로 갈까요? 제안을 하네요. 그 이야기를 듣고 차속에서 들을 만한 음반을 세 종류로
골라서 집을 나섰습니다.


차속에서 울려퍼진 장사익의 노래,나오미의 노래, 그러나 아무래도 세 여자가 한 자리에서 모이면
이야기소리가 더 목소리가 큰 법이라 음악은 그 사이에 저홀로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을 알게 된 기간이 그 사람을 제대로 아는 기간과는 다르다는 것,혹은 사람을 제대로 안다는 것은
사실 어려우니까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능한 사이가 되는 것에 기간이 꼭 중요한 것은 아니란 것을 느끼게 해 준
사람이 바로 호수님이지요. 어느 날 제 삶에 불쑥 들어와서 이것 저것 함께 하는 것이 상당히 많은 사이가
되었습니다.


정독 도서관 앞의 커피전문점에 들어가서 그녀들이 커피 주문하는 사이 저는 카메라를 꺼내들게 되네요.
한동안은 이런 증세가 계속 될 것 같은 예감이..
아직 11시도 되지 않은 시간, 이 자리 저 자리에 앉은 사람들 사이의 이야기꽃, 엄마가 차려주는 밥먹는
사람들이나 이렇게 일찍 나오는 것 아닌가 하는 말에 웃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스스로 밥을 차려 먹고
나섰을 여인네들도 여럿 보였거든요.
강의실에 들어가기 전 발제를 맡은 줌마나님이 아파서 못 온다고 발제자를 바꾸었노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서 덕분에? 라는 말은 조금 어폐가 있지만 디자인의 역사를 공부하고 대학에서 실제로 강의도 하는
지혜나무님이 영화에 대한 강의를 대신 맡았는데요. 숨은 보석을 발견한 날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약간 불안하게 시작해서 걱정이 살짝 되었지만 일단 호흡을 고르고 나서는 사진과 영화가
아우라가 파괴된 분야로써 어떻게 대중과 접촉하게 되는가 ,아도르노와 벤야민의 입장 차이, 그들에 관련된
다른 사상가들의 견해는 어떤가,이런 이야기들 속에 잠깐 잠깐 디자인의 역사도 연결해서 시대적인
상황과 연관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우리들도 중간 중간 질문을 하기도 하고 서로 의견이 달라지는 지점에서는
격론을 벌이기도 했지요.
가끔씩 철학책을 왜 읽는가 의문을 갖는 사람들도 만나고, 가끔은 읽고 싶지만 기초가 없어서 감히 읽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만납니다. 그리고 정독도서관에서 만나는 사람들처럼 역시 철학책을 읽으니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책을 읽는 베이스가 확실히 단단해진 느낌이라고 기뻐하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지요. 물론 철학이 직접적으로 우리들에게 밥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밥을 주는 것만이 가치있는 것은
아니란 점에서 늘 동일한 패턴으로 사는 삶에 대해서 의문을 갖고 한 발 옆으로 혹은 한 발 앞으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철학책을 읽으면 어떨까 권하고 싶습니다.
지금 읽는 책이 한 번 혹은 두 번이면 (이야기가 항상 다른 곳으로 새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철학 수업의 매력이므로 ) 끝나고 다음에는 푸코와 하버마스를 읽습니다.
새로운 모임에 참여하려면 무엇이 필요하냐고요?
나도 가겠다는 의사표시도 좋지만 그냥 그 장소에 오셔도 됩니다. 다만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마음만
내려놓고 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