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으로 문자가 왔네요. 일요일은 반납하는 날이라고. 사실 스피노자에 관한 책을 세 권이나 빌려놓았지만
어려워서 제대로 읽지도 못했는데 한 주일을 더 미룰까 고민하다가 순전히 도서관 가는 길에 있는 건영빌라,
그 곳의 꽃이 어찌 되었나 궁금해서 (유난히 잘 가꾸고 다양한 꽃이 있는 단지가 있거든요.동네에 ) 책을 주섬주섬 챙겨들고 도서관에 갔습니다. 갈 때는 무거워서 카메라 꺼낼 엄두도 못 냈지만 올 때는 아무래도 이번에는
무게 부담이 덜 한 책을 빌린 덕분에 한가하게 꽃구경도 하고 가끔은 찍기도 하고 일요일 아침 일찍 부터 움직였더니
세월아 네월아 조금은 여유가 있어서 좋았습니다.
우선 월요일 공부를 위한 보조자료로 스피노자에 관한 책 두 권,그리고 대국굴기 시리즈의 네덜란드
여행서로는 이탈리안 조이, 그리고 레닌이 있는 풍경, 이렇게 하니 벌써 다섯 권이네요.
사실은 금요일 밤 보람이가 피렌체에서 보낸 엽서를 받고 엽서의 그림이 칸단스키의 무르나우 풍경이길래
신기했었습니다.금요일 아침 버스속에서 들은 이야기중에 이탈리아,독일등의 음악소식을 전하면서
그 중 한 지역,무르나우에서 차를 타고 들어가는 어떤 지역에서 인구가 겨우 5000명인데 10년에 한 번
마테 수난곡을 동네 사람들이 오디션을 거쳐 배역을 정하고 연습을 해서 100일 정도를 공연한다는 소식
그 공연이 성립된 사연등을 들었고 그 때 무르나우에서 차를 탄다고? 그렇다면 그 곳은 칸딘스키의 그림속
바로 그 풍경이네 하고 혼자 생각했었는데 밤에 받은 엽서가 바로 그 곳을 그린 것이라 도서관에서 칸딘스키와
끌레를 다룬 이론서를 보고는 들었다 놓았다 했었지요.이미 고른 다섯 권 다 나름대로 이야기가 있어서
고른 책인데 ,고민하다가 금요일 수업에서 폴 존슨의 레닌에 대한 평가가 지나치게 박해서 다른 식으로 접근해
보고 싶은 마음이 남아있어서 아무래도 레닌이 있는 풍경을 놓기가 어렵더군요.
도서관에 가면 그런 망설임과 갈등의 순간이 자주 오지요. 빌릴 수 있는 책은 정해져 있고 도서관 서가를 돌다
보면 이 책도 저 책도 유혹하는 바람에 그 날의 ,혹은 그 전 주의 내가 관심갖고 있던 영역에 의해서
책 선정이 정해지기도 하고 어느 날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책과 마주쳐서 단 번에 반해버리는 날도 있고요.

어떤 날은 빌린 책이 궁금해서 도서관 뜰에 있는 벤취에 덜썩 주저 앉아서 일단 다섯 권을 나란히 늘어놓고
목차를 뒤적이다가 한 권에 마음이 동해서 그 자리에서 오래 읽게 되는 날도 있지요.

어느 날은 한참 걸어오다가 그래도 호기심이 동해서 길거리에 있는 벤치에 앉아보는 날도 있고요.

오늘 처럼 동네의 꽃이 궁금해서 가방에 넣은 책은 쳐다도 보지 않고 남의 빌라 단지에 들어가서 어슬렁
거리면서 구경하는 날도 있고요. 2주전과는 피고 진 꽃도 다르고 막 몽우리가 올라오고 있는 나무도 많아서
그 사이의 변화에 주목하면서 거닐게 되더군요.

그림이 소유와 관련된다면 소리는 소유할 수 없는 것,그런 의미로 사유를 펼치는 글을 읽었습니다.어제 밤
그래서 일까요? 오늘 단지 내 꽃을 구경하다가 이 단지안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보려고 잘 가꾸었지만
그 곳을 지나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선물을 했구나, 선물을 받을 준비가 된 사람들에겐 그것이 소유가 아니라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는 일들이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이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엄마,베네치아에서 미술관을 많이 가니까 게스트 하우스에 있던 사람들이 미술이 전공이냐고 물어보길래
웃었어, 이렇게 보람이는 엽서에서 이야기를 적어 놓았더군요.그 이야기를 읽고 얼마나 웃었던지!
두 아이가 어린 시절 함께 오르세에 갔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그림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 아이들, 한 작품이라도
더 보고 싶은 나, 그래서 생각해 낸것이 꼭 보았으면 하는 그림들만 찝어서 함께 보고 의자에 앉아서 둘이서
놀도록 했습니다. 어떻게 놀 것인지는 두 아이의 몫이니 일단 자리에 앉는 것을 보고는 저는 그림앞으로 뛰어가고
한참 정신없이 보다가는 걱정이 되어서 의자 있는 곳으로 다시 가 봅니다.

상황을 보고 아직은 견딜말한 상태라고 생각되면 다시 가서 그림을 보고, 그러다가 얘들아 이 작품은 꼭
보면 좋겠다고 달래서 다시 데려가기도 하고. 그런 식으로 미술관에 있으려니 많이 피곤하더군요. 그래서
생각을 했었지요. 이렇게 다닐 필요가 있는가,언젠가 스스로 정말로 원하는 시기가 오면 말려도 어떻게든
경비를 마련해서 가지 않겠는가!!

현대 미술관이외에는 전혀 관심이 없던 아이가 이제 커서 혼자 여러 나라로 여행을 다니고 그 곳에서 그림을
보러 다니고 가는 곳마다 엄마가 좋아할만한 화가의 그림을 선택해서 엽서를 보내고 있는 상황이 참 신기하네요.
기다리면 될 것을 마음이 앞서서 저지른 수없는 시행착오를 생각하게 됩니다.

한참 사진을 찍고 있는 중에 전화가 울립니다.엄마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잠에서 깬 아들이 집에 없는
엄마가 어디 갔나 이 이른 아침에 궁금해서 연락을 한 모양이더군요. 일요일이라 깨우지 않고 그냥 나왔다고
하니 그러면 엄마 올때까지 조금 더 잔다고 합니다.집에 도착해서 아침을 준비하고 깨우니 다른 날보다
조금은 빨리 일어나서 준비하더니 마음을 단단히 먹고 공부할 것이니 엄마가 믿어달라고 합니다.

스승의 날 ,대학생 친구들과 함께 학교에 다녀온 아이에게 무슨 사연이 있었을까요? 뭔가 달라진 분위기로
아직 11시도 안 된 시간에 독서실에 간다고 짐을 챙겨들고 나가는 아들을 보면서 기쁘기도 하고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묘한 느낌에 사로잡혔습니다.그래도 대신할 수 없는 일이니 그냥 지켜보자 마음먹고
아침 먹은 자리를 말끔히 치우고 커피 한 잔 들고 자리에 앉아서 다섯 장이나 한꺼번에 빌려준 마리포사님
덕분에 요즘 제대로 만나고 있는 피아니스트 리히터의 곡을 듣습니다.그리고 보니 그도 러시아인이군요.
러시아라,갑자기 레닌이 있는 풍경을 먼저 읽고 싶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