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수업중에 있었던 일입니다.제 책상에 니체라는 제목의 책이 여러 권 있었거든요.이야기의 발단은
그 아이가 말을 하더군요.선생님,니체가 제 우상이라고요.
니체가 네 우상이라니,지금 네 나이에 니체를 우상으로 삼는다는 말이 무슨 의미니?
아,그를 잘 안다는 의미가 아니라 100이면 2,3정도 알지만 웬지 멋있어 보인다고요.
그래서 시작한 이야기가 흘러서 흘러서 다양한 이야기로 번졌습니다.
마침 그 이전에 공부하러 왔던 아이들이 거의 다 돌아간 시간이라 그렇게 이야기를 길게 할 수 있었는데
그 아이가 물어봅니다,이렇게 열심히 산다해도 언젠가 죽는다면 이런 노력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도덕성을 버리면 돈과 명예를 얻을 수 있다고 하면 도덕성을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셔요?
같은 반 아이들이 너무 책을 읽지 않아서 상대적으로 이런 저런 책을 읽는 본인은 조금 교양있어 보인다고
생각하는데,그래서 반 아이들이 허접하게 보이는 때가 있다는 이야기(그래서 책을 읽는다는 것자체가
진정한 교양인일까,교양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니? 선생님은 아무리 책을 많이 읽어도 인간적으로 더 성숙해지지
못하는 느낌이라 상당히 괴로울 때가 많거든,왜 읽는가하고) 감정보다 이성을 우선하는 삶을 살고 싶지만
감정을 조절하기 어렵다는 이야기,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 (같은 반 여자아이들을 볼 때 얼굴보다 내면을
보아야 한다고 하지만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거나) 해야 한다고 생각한 일과 그것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것 사이의 간극으로 고민한다거나 (아니 그것이 가능하면 너는 이미 학생일 필요도 없고,어른들도 쉬운 일이
아니어서 사실 죽을 때까지 고민하고 고치려고 하다가 포기하기도 하는 문제인데 지금 그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놀랍구나 )불멸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고민한다는 이야기,고흐보다는 살아서 명예를 누리고 죽어서는
잊혀진 화가가 더 나은 것이 아닌가요? 헨델과 바흐중에서 저는 헨델이 더 행복하다고 생각해요,죽어서
자신은 모르는데 후세 사람들이 바흐의 음악을 듣는다고 그 사람이 알게 뭔가요?
그렇다면 너는 살아서 불멸을 누리고 싶다는 욕망이 있구나,어떤 방식으로 불멸을 누리고 싶은데?
그런데 살아서의 불멸이란 과연 가능한 것일까?

어느 것 하나 그 자리에서 해결이 가능한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그 아이의 말들이 화살이 되어 제 마음속에 맴돌면서
왜 사는가,어떻게 사는가 이렇게 큰 화두를 어린 시절에 의문스럽게 생각하고 고민하는 그 아이가
사랑스럽기도 하고,그런 큰 의문을 품고 학교에 다니는데 과연 누가 그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의문에 답해주거나 함께 고민해줄 사람은 있는 것일까 안쓰럽기도 하고 마음이 술렁거리더군요.
아침에 되어 월요일 수업을 위해 도덕의 계보학서문을 요약 정리해서 올리면서도 여전히
그 아이의 목소리가 귓전을 맴돌아서 답답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태어나는 것,죽는 것 이 두가지는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그 사이의 기간은
우리뜻대로 다 된다고 할 수 없어도 (어디서 어느 시기에 누구의 자식으로 태어나는가,누구와 함께 공부하고
누구와 더불어 살아가는가에 따라서 삶이 서로 다르겠지만)그래도 우리의 의지가 작용할 수 있는 시기 아닐까?
그러니 순간 순간을 자신의 에너지를 담아서 살아가는 것,그러다가 지치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하고
때로는 기쁨을 맛보기도 하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것,그 때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고,어려울 때 도와달라고
손 내밀 수 있고 도와준다고 손 내밀 수 있으면 그것으로 된 것이 아닐까?
나는 안 돼,이렇게 자신에게 부정적인 말로 자신의 한계를 미리 정하지 말고 한 번 더 내딛어볼 것
이런 대답을 해주고 싶습니다.다음 시간에 만나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