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1일,거의 4개월간의 자본세미나 마무리하는 날이었습니다.
그 날은 하루 종일 모여서 그동안 공부한 내용으로 기말 에세이를 하나씩 써내고
각자 내용을 읽고나면 고병권선생및 참가자들이 질문하거나 이견을 내기도 하고,거기에 대해서
에세이 발표자가 답을 하는 자리였지요.
중간 중간에 쉬기도 하고 밥을 먹기도 하면서 쉬는 시간은 있었으나 밤 9시까지 일정이 이어지고
마무리하면서 두 사람에게 상을 주겠노라고 하더군요.
누가 상을 타나? 궁금해하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제 이름이 불려져서 깜짝 놀랐습니다.
아무래도 자본 세미나에 참여한 사람들의 평균연령보다 나이가 많고,빠지지 않고 참석해서
매번 모르는 것을 용감하게? 질문했던 것이 인상적이었을까요?
덕분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공부하는 자세는 이런 것이란 것을 몸소 보여주었다는 거창한 명분으로
상장을 받고 부상으로 리영희 프리즘이란 책을 받았습니다.

70년대에 대학을 다닌 사람들에겐 어떤 방식으로든 상당한 영향력을 끼친 시대의 스승,리영희 선생의
팔순을 맞아 잔치를 열고자 했으나 당연히 거부당한 후학들이 그를 우상화하는 차원이 아니라
그가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나,혹은 지금 그들이 몰두해서 생각하는 일들에 그가 어떤 식으로 연결되어
있는가를 자신들의 전공이나 관심사에 따라서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책인데요
어제 돌아오는 길,그리고 오늘 다른 일정을 제치고 책을 다 읽고 말았습니다.조금씩 음미하면서 읽자고
생각했지만 역시 흡인력이 대단한 글들이 많아서 저절로 손이 갔다고 할까요?

길다면 긴 시간,짧다고 하면 짧은 시간,수유공간너머에서 함께 한 시간은 제게 상당한 무게로 남는
시간이 될 것 같아요.앞으로 무엇을 함께 읽고 생각하고 나누게 될 지 모르지만
한 공간,그리고 그 공간을 꾸리는 사람들에 대해서 갖게 된 애정은 어떤 식으로든 이어지게 될 것 같고요
무슨 분야라도 혼자 읽기 어럽다고 느낄 때 함께 하자고 손을 내밀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점에서
마음이 든든하기도 하고요.
토요일 오전은 일본어 번역으로,.일요일 아침은 자본 발제문 올리기로 한동안 바쁘던 일상에서 조금
숨돌리고 나면 제 안에서 차오르는 관심사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네요.지금은 푸코를 제대로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그 때가 되면 어떨지 모르니 기다려보자 싶기도 하고요.

천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조금씩 빼먹기도 하면서 따라 읽었던 시간,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일단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에 대한 큰 그림을 보았으니 그 다음에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의 속살을 조금 더 크게 눈을 뜨고 바라보고 싶다는 것,그리고 어떻게 살면 좋은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보고 싶다는 것,그 과정에서 무엇과 만나고,누구와 접속하여 새로운 것을 경험하거나
만들어갈지 그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가슴 두근거리는 좋은 시간이 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