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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의 명장면, 생활속의 즐거움

설악에서

| 조회수 : 2,407 | 추천수 : 94
작성일 : 2009-10-28 01:55:59


되돌아 보니 트래킹이였다.
길 위에서,
단풍폭풍이 지나간 자리 그 여운만 만지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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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박자 늦게 일요일 설악을 갔다.
애초에는 백담사~영시암~오세암~마등령 넘어 설악동이였다.
대청봉은 빗기지만 그래도 오롯이 설악을 느낄수 있는 코스다.
늦여 10시 용대리 도착했다.
인제군 북면 용대리다.
캠핑장으로 인기 높은 용대리 앞으로 흐르는 하천은 북천이다.
북면에 있어 북천이다.
한계령서 발원하는 한계천을 맞나 소양강으로 빠진다.
백담사 까진 버스를 타야하는데 시절이 시절인지라 시간 반을 기다렸다.
편도 2천원이다.
상행은 마을서 먹고 하행은 절에서 먹는다.
일행 중 일부는 /등산에 버스가 웬말이냐?/는듯 먼저 갔고 난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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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행렬 사이로 난전이 섰다.

표고 버섯도 가을을 먹었는지  태깔이 곱다.

즉석에서 기름장 찍어 먹었다.

향이 참 좋다.

송이도 안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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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판 할머니에 여쭈니 말굽버섯이란다.

정말 말굽같이 생겼다.

할아버지가 캐오셨는데 십년은 족이 넘게 자란 거란다.

가격은 10만원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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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담사에 도착하니 12시다.
백담사 최초 이름은 한계사였다.
한계사는 한계령 장수대 인근에 있었다.
지금은 보물로 지정된 삼층석탑 두기와 함께 그 터가 보존되어있다.
한계사지로 불린다.
한계사 또한 신흥사처럼 자장율사가 창건했다.
잦은 화재로 이동을 거듭하다 세조 때 현 위치로 왔다.
늘 화재로 걱정이 태산인 주지 꿈 속에 노승이 나타났다.
/대청봉에서 연못(潭)의 수를 세워보라!/는 것이었다.
이틀날 대청에 올라 내려오며 세어보니 100개였다.
이후 百潭寺가 되었다.

사찰도 도상(圖象)이 있을진데 건물들은 여기저기 뒤죽박죽이다.
경내는 산사의 고즈넉함은 없고 답답하다.
백담사 하면 한용운에 全씨다.
만해(卍海) 한용운 대 일해(日海) 전두환~
연이라면 연일까, 海자 돌림이다.
만해 기념관이 있고 전씨가 2년간 머무른 요사채도 대웅전 앞에서 우쭐하다.
안의 목욕 도구등이 전리품 같다. 

둘은 극과 극이다.
그러나 사찰의 영업방식으로 둘은 동일 상품으로 보인다.
전씨의 고향 합천에 일해공원이 조성되었다.
만해의 고향 홍성에 만해공원은 있는지 궁금하다.
백담사는 유명세에 비해 변변한 문화재 하나 없다.
그래도 사찰 앞의 넓은 분지와 가로지르는 계곡 하나는 국보급이다.
깊은 산속에 저런 분지가 펼쳐진다는게 신기하다.
사람들은 혼란스런 경내를 벗어나 앞 계곡에서 돌을 얹치며 저마다 소원을 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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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 폭풍우는 이미 설악을 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잔해만으로도 충분하다.

아,뭐랄까?

고즈넉에 정겨운 저 La Str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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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나무 하면 내소사에 월정사다. 

전나무 노란 단풍이 저리 고운줄 미처 몰랐다.

누군 노란 산수유 꽃을 /나무가 꾸는 꿈/이라던데 저들도 노란 꿈을 꾸고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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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나무 숲을 지나면 금강송 숲이 나오고 다시 전나무가 나오고,,,,

이리 경쟁하지만 가끔씩 둘은 길 좌우에서 이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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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백담사~영시암  구간은 이땅 최고 트래킹 코스다.

길게는 용대리 부터,,,

계곡 쪽으로 낮게 기댄 산허리 길은 푸른 계곡수와 조화롭다.

내 자주 가는 관악산은 어찌 보면 죽은 산이다.

4면이 도시로 포위되어있다.

새소리 듣기도 힘들다.

새들은 먹이찾아 주택가에 산다.

설악은 다르다.

길 사방서 울리는 현,금관,목관의 지저귐이 관현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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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가 벗하고 있는 계곡은 수렴동계곡(水簾洞溪谷)이다.

水簾,,,물이 맑다는 뜻이다.

외설악에 천불동계곡이요 내설악에 수렴동계곡이다.

사진에선 그저 그렇게 보이지만 영시암을 지나면 찬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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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시암(永矢庵)이 보인다.

영원한 화살이라니!

삼연 김창흡은 장희빈 사건으로 아버지 김수항이 죽음을 당했다.

울분에 세상을 끊고 전국 산수를 유람후 이곳에 암자를 짓고 은둔했다.

그리고  세상과 완전히 인연을 끊겠다는 다짐으로 '영시암' 이라 이름지었다.

영시암은 중간 이정표 같은 곳이다.

이곳서 봉정암,오세암 가는 길로 나뉜다.

난 봉정암을 버리고 오세암으로 향한다.

여기서 부턴 가파른 경사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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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나무다.

생강나무가 단풍 막차를 탔다.

김유정의 '봄봄'에 나오는 그 동백이다.

선운사의 그 동백이 아니다.

강원도서 생강나무를 동백나무로 부른다.

껍질을 벗기면 생강 냄새가 나고 실제로 생강 대용으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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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길에 푸른 산죽,노란 생강,붉은 단풍나무가 어우러져 멋스럽다.

며칠 전 예당 뉴욕 필 가는 길 '20세기 거장전'을 보았다.

/모든 것은 그밖의 모든 것과 공유된다.세상엔 단절은 없다/

도록에 실린 피카소 말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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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일주문은 기둥이 하나라는 뜻의  一柱門이다.

둘이라고?

옆에서 보면 하나로 보인다.

일주문은 보통 곧고 우람한  전나무로 만든다.

고목의 전나무는 특이하게도 정상 끝 부근의 가지들은 우산 살처럼 직각으로 뻗는다.

그래서 일게다.

오래된 아래 가지들은 중력을 못이기고 부러지고 없다.

사람 발도 나이 들며 중력을 많이 받아 커진다 하지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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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암의 로케이션이 환상이다.
하기사 어느 산사인들 멋지지 않겠는가.
뒤로 白岳들이 병풍처럼 휘감고 있다.
앞으로는 귀때기 청봉을 바라보면서.
수렴동계곡의 곰 골에 살던 곰이 잘못을 저질렀다.
그 곰은 불려가 뺨을 맞았는데 이후로 귀떼기청봉(1,578m)으로 불린다.

五歲庵~
/다섯살 고아 길손이는 길에서 스님 따라 왔다.
스님이 월동 준비로 마을에 내려갔다.
폭설로 스님은 돌아오지 못하고 봄에야 왔다.
그동안 길손이는 부처님만 외다 굶어죽었으나 성불했다/ 는...그 오세암이다.

중요한 건 따로 있다.
한용운,김시습이 출가한 곳이다.
만해는 18세에 동학에 참가한 후 오세암서 출가했다.
27세에 원산을 거처 만주,시베리아를 유랑했다.
그리고  백담사로 돌아와  '님의침묵' '불교유신론'을 썼다.

조선시대 '천재 중 천재' 아웃사이더 매월당 김시습도 그랬다.
/배우면 곧 익힌다/해서 '時習'이다.
5세 신동으로 어전서 세종과 대면도 했다.
이율곡은 '김시습전'에서 /한 번 기억하면 일생 동안 잊지 않았기에 책을 가지고 다니는 일이 없었다/고 적었다.
세조가 조카 단종을 폐위하던 해 세상을 등지고 이곳 오세암에서 머리를 깍았다.
그도 금강산,만주를 유랑한 후 경주 금오산(남산)에서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썼다.
부여 무량사에 그의 부도가 있다.
김시습에 죽음도 시니컬한 지식인 모습이였다.
그는 죽음 직전 자화상을 바라보았다.
/네 모습 지극히 약하며,네 말은 분별이 없으니 마땅히 구렁 속에 너를 버릴지어다/

독자로서 매월당을 퍽이나 흠모한 이가 있었다.
'관촌 수필'의 이문구다.
그는 소설 '매월당 김시습'을 썼다.
이문구는 소설을 쓰기 직전 김시습의 채취가 깃든 이곳 오세암을 한겨울에 찿았다.
당시를 회상하며'오리무중'이라는 수필도 남겼다.
그러고 보니,오세암과 연을 맺은 3인은 모태가 같다.
한용운은 홍성,이문군는 바로 옆 보령,김시습은 그 옆 부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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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등령 턱 밑에서 문제가 생겼다.

일행 중 상당수가 아마추어인데다 백담사 버스로 시간 지체가 많아서이다.

다수는 회군파였고, 나는 진군파였다.

쪽수에 밀린지라  발길을 돌려야했다.

넘 아쉬워 마등령 정상 까지만이라도...하는 심사로 배낭을 회군파에 맞기고 맨몸으로 뛰였다.

20여분 뛰었지만,아직도 마등령 까진 깍아지른 5백미터다.

눈물 머금고 회군했다.

이문구는 그때 눈보라로 회군했다.

왜 마등령에 그리 집착이냐고?

정상에 서면 무망대해 설악이 내 손아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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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 오는 길,산죽에 단풍비가 내렸다.

오세암 다섯살 길손이 성불해 하늘로 오를 때는 꽃비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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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적으로나,

사진 구도로나 넘 아름다워 찍고 또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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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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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 황혼이 깃들고 있다.

빛은 피사체를 돋보이게도,서정성이기도한다.

역광으로 흐릿한게 숲에 만추의 서정성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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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군하는 길,영시암 뒷 모습이다.

관악산 연주암에서 아침,낮으로 비빔밥을 공양하듯 길손에 국수를 말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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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목이다.

황색을 띠여서이다.

공식 명칭은 금강송이다.

전지현 같이 쭉쭉빵빵이라 미인송,용같은 자태라 적룡으로 불리기도한다.

적송은 일본말이다.

춘향목은 봉화군 춘양에서 많이 나기에.

이땅 최고 금강송 산지 울진하고 봉화는 지척이다.

남설악 양양과 봉화에선 송이축제가 열린다.

다 그럴만한 연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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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뒷 모습이 걸승처럼 무방비로 처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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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한쪽엔 전나무,반대편엔 금강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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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라지는 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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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담사에 불이 켜지고 하늘엔 반달이.






비발디 기타 협주곡 D장조 2악장 Largo
Dagoberto Linhares , guitar 
Johannes Wildner, cond
Cassovia Camerata

 



 

18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wrtour
    '09.10.28 1:57 AM

    오리무중 / 이문구


    선생의 생애와 관계가 있는 선조는 존양재의 조카인 사육신 이선생 외에 적지 않되 이루 들먹이기를 피하거니와, 선생 재세시에 인연이 깊었던 집안의 후예로서 선생의 정신을 소설로 형상화하게 된 것도 기묘한 인연이란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막연한 인연을 느낀 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유치하고도 외람된 자유에 불과한 것일 뿐이었다.

    선생은 내가 이 소설을 쓰는 것을 매우 못마땅하게 여기시는 모양이었다. 너는 아직 나를 모른다거나, 나를 쓰기에는 한참 어리다거나, 공부를 더 해서 쓰라거나, 아마 그런 뜻이 아닌가 싶었다.

    내가 매월당에 대해서 언젠가는 한번 써보리라는 생각을 그저 생각만으로 그치고 있을 때였다. 하루는 무량사에 다녀 올 일이 있어서 혼자 갔다가, 매월당이 몸을 마친 곳이며 자화상이 봉안되어 있는 절이라는 생각을 하고, 이왕 왔으니 온김에 참배나 하고 가기로 하였다.

    어떤 사람더러 화상을 모신 곳을 물으니 아무것도 안 보이는 산기슭을 가리키며 거기 어디에 있는 산신각이라고 일러주었다. 산신각은 나무 같지 않은 나무와 억새가 자유롭게 우거진 억새밭을 한참이나 더듬은 끝에 기중 후미지고 안침진 곳에 외따로 있었다.

    나는 후생의 문학도 된 태도로, 선생의 독자된 태도로, 공손히 문을 열었다. 신단의 중앙에 산신상이 있고, 그 왼쪽에 책에서 보아 눈에 익은 선생의 자화상 복제본이 모시어 있었다. 벼르다가 날을 잡아서 일삼아 찾아온 것은 아니었지만 감개가 없을 수가 없었다. 나는 우선 선생이 산신과 나란히 앉아서 중생들에게 산신과 동격의 예우를 받고 있는 것이 감격스러웠다.

    나는 절에 가면 산신각을 찾는 보통 중생과 다름없이 예를 갖추었다. 그러나 선생의 화상을 봉심하는 자세는 더욱 곡진한 것이었다. 나는 참배를 마친 뒤에 선생의 화상 앞에 곡좌하고 화상을 자세히 살펴볼 작정이었다. 그런데 그럴 수가 없었다. 절을 하고 고개를 드는 순간 현기증도 아니면서 눈앞이 아뜩한 다음에는 눈을 둘 곳이 없었다. 아니 몸둘 곳도 없는 것 같았다. 그 경황 중에도 밖으로 나오는 것이 상수라는 느낌이 들었지만 이번에는 또 돌아서지지가 않는 것이었다. 가만가만 뒷걸을질을 하여 댓돌에 내려서고, 조심조심 문을 닫고, 신발을 꿰고, 토방에 놔두었던 가방을 집어들 때까지도 선뜻 돌아설 수가 없었다. 누가 보면 무슨 꼴인가 싶어 달음박질도 못하고, 억지로 천천히 걸어서 내려온 뒤에 숨을 돌리고 보니, 선선한 가을철인데도 등에 흘린 식은땀으로 옷이 물말이가 되어 있었다. 나이 사십에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한대 요시차린 명단에 의해 수사기관만도 여러 곳을 구경한 터였지만 그런 식음땀은 흘려 본 적이 없었다. 우수운 일이지만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선생의 유적지로 설악산 오세암이 있다는 것은 다들 아는 일이다. 나는 산이라면 가까이 다가가서 보는 것을 즐겨하고 밟는 것은 그리 즐겨하는 편이 아니어서, 설악산도 이 소설을 쓸 때까지 주마간산은 수도 없이 하였으나 정복자적인 경험은 없었다. 그러나 소설을 쓰면서 오세암을 아니 가볼 도리는 없으므로, 설악산을 뒷동산 다니듯 하는 선배 작가의 자세한 안내와 지침을 받아 단신으로 찾아가게 되었다. 설악동 신흥사 앞에서, 산을 다녀도 꼭 혼자 다닌다는 산에 미친 총각 하나를 사귀어 길잡이로 삼고 첫걸음을 뗀 것이 아침 6시였다. 때도 좋았다. 잔설이 녹을 놈은 녹고 남을 놈은 남고, 초목도 움틀 놈은 움트고 꽃필 놈은 꽃피고 하는 5월 초승이었다. 날도 좋았다. 구름이 갈 놈은 가고 있을 놈은 있고 나무도 잘 놈은 자고 흔들릴 놈은 흔들리니, 먹을 것 있고, 마실 것 있고, 피울 것 있고, 게다가 산에 미쳤다는 길잡이까지 있으니, 대체 여기서 무엇이 더 부족하단 말인가.

    어떤 분은 말할 것이다. 백담사로 해서 올라가면 앞마당을 통해 가는데 왜 하필 뒤꼍으로 돌아서 가느냐고. 가면서 천불동인지 만불동인지도 보고, 마등령도 승람하기 겸해서였다고. 그것은 그렇지 않다. 백담사에는 높은자리에서 호령하다가 높은집에서 염불을 하려고 온 인사로 하여 통행을 통제한다는 바람에 뒷마당을 택한 거였고, 그곳도 월말까지는 산불 예방으로 등산을 통제한다 하여 뇌물까지 바쳐 가면서 어렵사리 허락을 받은 것이었다.

    드디어 마등령에 이르렀다. 그때까지는 땀을 닦으며 올라온 터였다. 그러나 마등령에 이르자마자 삽시간에 안개인지 구름인지로 뒤덮이며 주위가 네댓 평짜리나 될까 싶은 빈터로 급변하는 것이었다. 설악산 전체가 오리무중이 되자 그때까지 아무렇지도 않던 길잡이 청년이 오세암 가는 외가닥길을 가리킨 다음 하직을 고하는 것이었다. 산에 미쳤다더니 미쳐도 설미쳤던 모양이었다. 입산 통제 시기라고 하여 설악에 사람이 없을 터인가. 보아하니 진짜 등산꾼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역시 설악동 쪽으로 하산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내게 친절을 다하여 오세암 가는 길을 지시한 다음 서둘러서 하산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나는 혼자가 되었다. 눈이 쏟아졌다. 비도 쏟아졌다. 우박도 쏟아졌다. 바람도 거세웠다. 눈. 비. 우박. 바람이 순서적으로, 체계적으로 협박하는 것이 아니라 단숨에 끝낼 듯이 서로 협조를 하니, 눈보라와 진눈깨비의 폭동이었다. 뿐만 아니라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천둥과 산을 쪼개는 듯한 번개가 일분 일초를 다투며 공갈을 하니, 과연 산에 미친 사람도 제정신이 들어서 줄행랑을 놓은 만도 하였다. 네댓 평짜리 빈터는 한두 평짜리로 줄어들고, 빈터도 빙판으로 바뀐 지 오래였다.

    그러나 나는 목적지를 향해 쉴 새 없이 가고 있었다. 길이 하나 밖에 없어 가다가 길을 잘못들 염려가 없으면, 길도 내리막이므로 30분 정도면 능히 도착할 수 있다는 격려성 안내 말에 힘을 내었던 것이다. 하지만 3시간 4시간을 헤매어도 오세암은 커녕 그 비슷한 것도 눈에 띄지 않았다. 안개. 구름. 눈. 비. 우박. 천둥. 번개. 바람 등, 하늘이 나를 벌할 수 있는 모든 장비를 총동원한 실력 행사에도 굴하지 않고 찾았건만, 매월당의 유적은 오리무중이었다. 아니, 이때는 내가 오리무중이 된 셈이었다.

    그러다가 지돌이, 안돌이를 하여 한 모퉁이르 돌아선 순간이었다. 어떻게 된 속인지 그 모퉁이 저쪽은 안개도, 구름도, 비도, 눈도, 우박도, 바람도, 천둥도, 번개도 없이 눈부신 햇볕 속에 태평성대가 펼쳐져 있는 것이었다. 꿈도 아니고 분명 생시인데 무슨 생시가 이렇단 말인가. 자세히 살펴보니 몽우리도, 바위도 길도 낯익은 데가 있었다. 아까 오전 내낸 길잡이와 쉬엄쉬엄 올라왔던 길이 분명하였다. 무엇보다도 그 아래에 펼쳐져 있는 설악동의 건물들이 오전에 올라온 길에 되돌아와 있음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오리무중의 실종을 면한 것은 분명했으나, 이제는 다릿심이 풀려버려서 한 발짝 내딛는 걸음이 올가갈 때의 열 발작보다 무거웠다.

    나는 주저앉아서 어떻게 된 속인가를 따져 보았다. 그리고 결론하였다. 이는 설악산이 나를 거부한 것이 아니라 매월당께서 거절한 것이라고. 이놈, 네 감히 나를 만나겠다고? 네가 나를 쓰겠다고? 네가 나를 어찌 안다고 그리 건방진 수작을 하더란 말이냐. 내 이르지 않았더냐, 천 년 후에는 나를 알 사람이 있으리라고. 그런데 지금 얼마나 됐느야, 이제 겨우 오백 년밖에 더 됐느댜? 네 이 놈, 네 소위로 봐서는 저 공룡능선 계곡의 구렁텅이 속에 쳐넣어 따끔하게 혼을 냄이 마땅하리로되, 다만 천성이 늦되고 어리석은 정상을 참작하여 대강 하고 놓아주는 것이니 그리 알거라 하는 뜻으로 여기는 수밖에 없었다.

  • 2. intotheself
    '09.10.28 2:38 AM

    beyond description!!

    글과 사진과,그리고 음악이 어우러져

    이 가을에 멀리 떠나지 못하고 있는 제게 마치 선물처럼 다가온 밤

    기타소리에 귀기울이다 생각하니 오늘 밤,빈센트의 두 버전,모짜르트,그리고

    비발디까지,선물은 받으려는 마음이 있으면 무엇이든 다 선물이 된다는 것을

    즐겁게 깨닫고 있는 밤이기도 합니다.감사,감사

  • 3. 회색인
    '09.10.28 4:17 AM

    재밌고도 아름다운 여행이셨군요..
    잘 봤습니다.

  • 4. 하늘재
    '09.10.28 9:07 AM

    백담사의 안온한 불빛이 시선을 한참 고정 시킵니다,,,, 길은 길에 連하여 있고,,,, 여름 소나기를 맞으며 올랐던 백담 계곡 이었던 지라 하나,하나 떠 올리며 걸어 보게 되네요~~ 아직은 스러지지 않은 단풍과, 고즈넉해 보이는 구부러진 길과,감성을 자극하는 기타소리와,영시암 저녁 연기가 지금 베낭을 꾸리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합니다,,,,,, 감사히,,,,, 잘,,,,, 보았습니다,,,,,,,

  • 5. 살림열공
    '09.10.28 10:28 AM

    세세한 설명과 좋은 사진들 덕분에 직접 다녀온 듯이 눈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6. 보리
    '09.10.28 11:26 AM

    관악산에 이어 이번엔 설악산...
    아름다운 사진에 시선 고정합니다.

  • 7. 무지개9303
    '09.10.28 12:14 PM

    wrtour 님 덕분에 가을을 한 껏 느끼고 갑니다.
    설악산은 가을이 특히 절정을 맛볼 수 있어 좋습니다.
    백담사로 올라가는 설악산 코스가 그 중 백미 입니다.
    고맙습니다^^ 가을의 설악을 담아 주셔서...

  • 8. 변인주
    '09.10.28 2:00 PM

    로긴을 하고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구부러진 길..... 그리고 그위에 흐르는 나뭇잎들....

    지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살고 있는지 나를 돌아보는 좋은 시간이 되도록 만들어주신

    글 그리고 사진들 감사합니다

  • 9. 청미래
    '09.10.28 6:58 PM

    제가 좋아하는 내설악코스를 보니 옛날 생각이 나네요.
    양폭인지 쌍폭인지 폭포 부근에서 텐트치고 자는데 서클 남자애가 귀신얘기해서 넘 무서워 그만 하라고 울고불고 했던거...--;;
    초입부터 아기자기한 오솔길 느낌을 좋아했는데 전 아무개가 기거하면서 백담사근처까지 도로를 포장해놔서 짜증이 났던 기억, 장정 두명이 몽둥이 들고 서서 남자 등산객 신분증 검사하던거...저는 매번 봉정암쪽으로 해서 외설악이나 오색쪽으로 내려갔는데 다음엔 오세암, 마등령코스도 도전해 봐야겠네요. wrtour 님 덕분에 오랜만에 내설악 구경 잘 했습니다~~

  • 10. 산녀
    '09.10.28 7:20 PM

    올해는 아직 설악산을 가지 못했는데 님 덕분에 사진으로 잘 다녀오네요.
    30년전 백담사는 고즈넉했고, 그 마당에서 올려다본 마당만한 하늘의 별들은 지금까지 저에게 최고의 별밤으로 남아 있습니다. 단풍이 한바탕 지나간 단풍도 아름답군요.

  • 11. 들꽃
    '09.10.29 1:11 AM

    설악산은 참 멋진 산이예요..
    언제라도 다시 가보고 싶은 산...

    신비로운 산의 느낌과
    너무 차가워서 손 담그면 뼈속까지 시렸던 계곡물이
    그대로 기억속에 떠오릅니다.

    덕분에 가을 무르익은 설악산 구경 잘 했습니다^^
    음악 또한 너무 좋구요^^

  • 12. 로즈버드
    '09.10.29 11:05 AM

    관악산 사진도 참 좋았는데 이번 사진도....
    일단 양이 많아서 한상 잘먹은 듯 포만감이 느껴지고
    결혼전 미혼의 마지막 휴가에 3박 4일 설악산 올랐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4계중 가을 설악을 아직 못봤는데 사진들을 보니
    무리를 해서라도 꼭 가야겠단 생각이 들어요...^^

  • 13. 캐드펠
    '09.10.30 2:21 AM

    즐겁고 행복한 여행이셨네요.
    음악 들으며 사진 보며 커피 마시면서 가을에 취해 갑니다.^^*

  • 14. wrtour
    '09.10.30 2:49 AM

    인투님,
    그쵸,선물은 받으려는 마음이 있으면 무엇이든 다 선물이 된다는 거요^^
    회색인님,
    맞아요,뜻밖의 선물이였습니다.
    만산홍엽만이 단풍이 아니라는 거...^^
    하늘재님,
    그래요,
    길은 길을 연하고 있습니다.가끔씩 비켜서면서요^^
    살림열공님,
    님 닉만 보면 웃음이 나요.죄송^^ㅎㅎ
    보리님,
    어떨 땐 이리 올리는게 부끄럽고 그러는데
    이리 어여삐 여기시니 뭐라...^^
    무지개님,
    네,저도 감사해요,
    님 말슴대로 이 가을 가기전에 완주 한번 해보렵니다.^^
    변인주님,
    이리 사색적으로 다가오셨다니 넘 기분이 좋습니다.
    저도 현장서 그런 느낌이였거든요^^
    청미래님,
    많이 오르셨네요,부럽습니다.
    친구분과 팔당 검단산 오르심도 아름답구요~^^
    산녀님,
    변함없이 관악산 오르시고 계신거죠??^^
    반간운 두분~
    들꽃님,,
    캐드펠님 늘 감사하구요^^
    로드버즈님,
    마음이 아름다우셔서 그러실거여요
    꼭 다녀오세요,^^
    아,만산홍엽만이 단풍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사 알았으니...

  • 15. 무인산장
    '09.10.31 1:54 AM

    오세암... 백담사...글...사진...너무 좋군요...^^.

  • 16. 호박
    '09.10.31 2:49 AM - 삭제된댓글

    이십여년전 아직 젊다는 것이 절망스러웠을때 들짐승 처럼 울면서 혼자 설악산을 오르곤 했죠.
    다녀오려고 계획을 세우기 한달 전부터 행복했고 다녀온뒤 한달 후 까지 행복해서
    그럭저럭 한 세월을 이겨냈네요.
    참 오랫만에 본 설악의 모습이 왈칵 그리움으로 다가옵니다.
    좋은글, 좋은사진,고맙습니다.

  • 17. 수늬
    '09.11.1 2:28 PM

    오우~~넘 잘봤습니다~~꾸우벅...

  • 18. wrtour
    '09.11.2 12:22 AM

    무인산장님 감사합니다^^
    어떡하죠 사진이 잘 안올라간다고 하시던데,
    저도 그래서 파란닷컴에 들어가 블러그를 개설했어요.
    거기다 사진 올린 후 HTML로 복사해오면 사진이 살더라구요.
    호박님,
    님 글보니 제 마음이 저립니다
    지금은 평온하시겠죠^^
    무늬 아닌 수늬님ㅎㅎ
    저도 꾸우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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