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드디어 기다리던 니체강의가 있는 날입니다.
그런데 평소와는 달리 다른 길로 가보고 싶어서 버스를 탔지요.아마 빛이 만드는 풍광에 부쩍
관심이 생기면서 갖게 된 변화라고 할 수 있는데요,버스에서 내려서 take out 이라고 적어놓은 커피점을
지나가려고 하는데 옆의 낡은 벽에 낙서와 오래된 흔적,그리고 옆에 드리운 그늘,이런 것이 만들어내는
풍광이 마치 현대화가의 캔버스처럼 느껴져서 순간 멈추었습니다.
같은 벽이라도 내가 벽의 어느 부분을 보고 있는가,프레임안에 무엇을 중심으로 잡을 것인가에 따라서
결과는 상당히 다르다는 것이 흥미롭더군요.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더라면 이런 저런 궁리를 해가면서 벽 하나로도 다양한 놀이가 가능할 것 같았지만
시간이 넉넉하지 않으니 우선 두 컷으로 만족하고 계속 걸었지요.
진짜 예술가라면 정말 넉넉한 시간을 두고 작업을 해야겠구나,아닌가 그 순간 그 자리에서의 느낌이
중요한가,아니면 평소에 평범하게 일상을 살다가 어느 순간 축적된 감정의 폭발을 경험하는 것일까
공연히 머릿속에서 이런 저런 공상을 하게 되는 날이었지요.
경복궁을 빠져나와 정독도서관으로 가려고 하는데 길거리에 아직 가을은 더디 오고 있는 모양이네요.
그래도 한 쪽벽에 그림자 길게 드리운 공간이 많아서 위쪽에서 걸어오는 청소부아저씨까지 한 프레임안에
잡아보았습니다,우리의 일상을 제대로 굴러가게 해주는 보이지 않는 많은 손들을 느끼지만
그래도 이렇게 보이는 현장에서 느끼는 감사하는 마음이 더 크네요.
설렁설렁 걸어가고 있는데 왜 아직 사람들이 오지 않는가 걱정하는 켈리님의 전화를 받고
이럴때가 아니다 싶어서 조금 서둘렀습니다.
그래도 선재아트센터앞을 지나는데 그냥 갈 수 없어서 조금 더 늦장을 부렸습니다.
막상 정독도서관에 도착하니 제주도에서 비행기를 타고 출발한다는 강사의 일정이
안개로 인해 일정이 늦어졌다고요.
한 시간이나 강의일정이 늦어졌지만 오랫만에 만난 사람들은 삼삼오오 이야기에 열을 올리노라
늦어진 것에 개의치 않고 즐거운 이야기들이 오갔습니다.
우선 차승연씨와는 11월부터 입에서 톡이란 교재로 프랑스어를 공부하기로 일정을 잡았고
20년에 걸쳐서 권고를 받고도 아직도 시행해보지 못한 EBS라디오로 듣는 일본어강의 초급,중급 회화
등록한 사실을 알리고 켈리님에게도 주소를 적어주었지요.혼자서 해볼만한 프로그램이라고요.
그리고 앞으로 철학책을 무엇으로 교재를 정할 것인지 하는 이야기
새로 온 사람들에게 프로그램을 소개하거나 무엇을 좋아하는지 이야기들어보기
그동안 뜸했던 사람들의 연락처를 적고 앞으로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하는 것을 권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이야기들,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흘러넘쳐서 허겁지겁 도착한 강사는 미안해했지만
사실 우리들은 별로 개의치 않고 그 시간을 보낸 셈이지요.
제주도에서 사들고 온 제주산 초콜릿을 하나씩 나누어 먹고 시작한 강의
1시간 30분이 순간적으로 다 흘러가버렸다고 느낄 정도로 이야기는 원래의 강의록에서 벗어나
자기나름의 생명을 갖고 이리저리 이어졌습니다.
우리가 느끼는 고통은 해석된 고통이라는 말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우리의 경험을 다양하게 해서
포텐셜을 높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
우리가 사실을 앞에 놓고 그 사실을 바꿀 수 없다고 하더라도 공부를 통해 사실에 대하는 태도를 바꿀 수 있는
것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
니체의 짜라투스라가 신이 죽었다는 선물을 들고 왔지만 과연 그것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에게 그 선물은
주는 것이 옳은가,그 경우 선물은 독이 되어버리므로 줄 수 없는 것,그 때 선물을 받을 사람은
미래에 사는 사람이 되기 때문에 아직 오지 않은 것이 되는 것
그러니 선물인가 독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받는 사람의 사정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니
우리가 어떤 것을 독에서 선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몸의 변화를 체득하도록 공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그런 이야기를 펼치기 위해서 고병권 선생이 든 예는 일본 애니메이션 피아노의 숲이었습니다.
두 주인공의 피아노에 대한 애정은 비슷해도 본능적으로 악보를 익혀서 음악을 만드는 사람과
노력에 노력을 거듭해서 완성에 이르지만 예기치 않은 상황에 처하면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변형시킬 수 없는
경우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가
제게 든 의문,우리들은 주로 후자인 경우인데 살리에리가 모짜르트로 인해 좌절하듯이 좌절하는 것만이
우리의 몫인가,우리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모짜르트를 축복이라고 생각하고 즐길 수 있도록 우리를
바꾸는 것,그것이 공부하는 목적이 아닌가 그런 의문을 갖게 되었지요.
점심을 먹으로 내려가는 길,함께 걸으면서 그런 의문을 이야기했더니
바로 그렇다고 살리에리가 모짜르트를 수용하고 즐기는 것,그때 모짜르트는 살리에리에게 선물이고
그렇지 못하고 그를 극복하려고 무리하고,질투하고,그렇게 되는 경우 모짜르트는 독이 된다고
생각한다,독을 선물로 바꿀 수 있는 역량,그것이 바로 니체가 말하는 강자이기 때문에
사회가 이런 강자를 보호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이야기도 이어졌습니다.
점심을 먹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가 나왔지만 역시 제가 관심있는 것은 수유공간너머의 세미나였는데요
내년부터는 어떻게 하든지 시간표를 조절하여 하루는 음악회,하루는 제대로 된 공부를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11월9일부터 월요일저녁마다 16번에 걸쳐 마르크스의 자본을 함께 읽는
모임이 있다고 하네요.
내년이 아니라 곤란하다가 아니라 조금 일찍이라도 시작하면 되겠구나 하고 생각하니 저절로
즐거운 미소에 제 얼굴에 생기가 돌았는지 주변에 앉은 사람들이 막 놀리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거운 것은 즐거운 것이었으니
이번 강의의 가장 큰 수확은 강사를 통해서 제가 수유공간너머에 갖고 있던 관심이 ACTIVATED(행동으로
전환되는 직접적인 계기라고 할까요?) 된 것입니다.
그러나 막상 집에 와서 검색을 하고 보니 등록한 사람들의 연령이 너무 낮다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다시 고민에 빠지게 되었지요.
이것이 나이가 벽이 될지 문이 될지 내게 있어서 하나의 시험대가 되는 셈이구나 싶어서
고민을 하다가,마음을 털어버리고 새로운 세상과 만나보기로 마음을 다졌지요.
그리고 오늘 오전 수업마치고 돌아오는 길,드디어 등록을 했습니다.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있던 공간에 만나게 되는 설레임과 약간의 두려움
앞으로 이 모임을 통해 제가 어떤 식으로 새로움과 만나고 변하게 될지 기대가 되네요.


새롭게 시작하는 공부를 자축하면서 고른 모네의 그림입니다.


이 그림들은 이 강좌에 관심이 있거나,아니면 수유공간너머에 관심이 생겨서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면 함께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자고 권하는 의미에서 고른 그림이고요.
혼자는 어렵지만 누군가 자꾸 권하면 나도 해볼까,공연히 마음이 움직이는 경우가 있지요.
그래서 저는 다른 일은 못해도 이렇게 권하는 일만은 열심히 하자고 마음을 먹었거든요.
보기에 조금 이상해도 그래도 그것이 에너지를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일상에서 체험하고
있는 중이라 그다지 힘들지는 않다고 할까요?
아니 오히려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는다고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