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대화도서관에 갔을 때 빌린 다섯권의 책가운데 한 권이
내 영혼의 그림여행이란 제목의 책입니다.
서점에서 처음 발견했을 때 살까 말까 망서리게 하던 앞표지엔 샤갈의 그림이 뒷 표지엔 레핀의 그림이
눈길을 끌던 책인데 당시 다른 책들이 더 유혹적이라서 그만 미루던 책이었지요.
시인이 본 그림이라,그리고 그 안에 한국화가의 그림,서양화가의 그림이 두루 섞여 있어서
그녀는 그림을 어떻게 보고 이야기했을꼬 궁금하기도 했던 책인데
마침 도서관에 있길래 즐거운 마음으로 빌려 온 책이기도 했지요.
김호석,샤갈,그리고 폴 클레 이렇게 우선 세 사람에 대한 글을 읽고는
가능하면 조금씩 나누어서 천천히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읽어야겠다고 ,속도를 줄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어제 밤 집에 와서 FM라디오를 틀었더니 그 안에서도 샤갈 이야기를 하고 있더군요.
그런 인연이 재미있어서 누워서 음악과 더불어 샤갈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제 아침 강희남 목사님의 자살소식을 신문에서 읽고 마음이 쿵하고 내려앉았습니다.
젊은 시절부터 직접 뵌 적은 없지만 늘 신문을 통해,유인물을 통해 읽던 이름이라서 그럴까요?
마치 잘 아는 사람같은 느낌으로 이름을 접하던 사람이라서 ,그리고 그가 거의 90에 가까운 연세에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에 마음이 아파서 한동안 멍한 기분이 들더군요.
현실이 어려울수록 꿈을 꾸는 힘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물론 현실을 직시하는 힘이 우선이겠지만
그것과 더불어 꿈을 꾸는 힘이 필요해 그런 생각이 드는 아침,
샤갈의 그림에서 두 연인의 사랑만이 아니라 충만함으로 넘치는 빛과 색이 제게
말을 겁니다.그러니 색으로 꿈을 꾸는 것은 어떠니?


그림여행과 더불어 빌린 책중에 사라예보의 첼리스트란 제목의 소설이 한 권 있습니다.
그 소설속의 시대배경은 1992년 사라예보에 전쟁이 일어난 시기인데요
세 명의 주인공을 번갈아가면서 등장시키고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상황을 보여주는 소설인데
그 중 한 주인공인 arrow는 대학에서 사격을 연습한 여성입니다.
그녀는 이런 상황에서 상대방을 저격하는 저격수를 하게 되는데 어느 날 첼리스트를 보호하라는 임무를
맡게 됩니다.
첼리스트는 빵을 사러 왔다가 폭격으로 죽은 22명의 사람들을 위해서 하루에 한 번씩 네 시에 그 자리에 나와서
곡을 연주합니다.
사람들이 그에 대해서 보이는 반응이 가지가지인데요
죽은 사람들을 위해서 연주하는 것일까,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연주하는 것일까
자신을 위해서 연주하는 것일까,아니면 그는 미쳐버린 것일까?

상황이 악화되는 걸 막아줄 수 있는게 단 하나 있다면
그건 아마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지금 하고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이런 구절을 수첩에 적어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말은 당시의 사라예보만이 아니라,지금 우리에게도 필요한 말이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