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미술사시간에 베르니니를 처음 읽은 날입니다.
반종교개혁의 시대 회화에서는 안니발레 카라치와 카라바지오가 대표주자라면 조각에서는 단연
베르니니와 보로미니를 꼽을 수 있습니다.
마침 시중에서 상영되고 있는 영화 천사와 악마에서 화면으로 볼 수 있는 그의 작품도 많아서
서로 대조하면서 책을 읽는 즐거운 시간이었는데요
멀리서 목요일 모임에 합류한 캘리님의 연극배우를 했으면 좋았으련만 하는 제 개인적인 감상이 틀리지 않게
발제를 준비도 많이 했지만 ,억양이 확실한 발제로 듣는 것이 훨씬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책의 표현은 재미있으나 아무래도 도판이 미흡해서 집에 와서 찾아보고 싶은 작품이 여러 점 있었습니다.

8살 나이의 베르니니를 만난 교황이 그의 재주에 반해서 아버지에게 아들이 자네를 추월할지도 모르겠다고
주의를 주었다고 하더군요,그러자 그 아버지,상관없다고,그래도 나는 승리한 그 아들의 아버지가 될 것이니까
그렇게 대답을 했다는 일화가 있더군요.
위의 작품이 10대에 만들어졌다고 하니 그저 입이 떡 벌어질 뿐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여러가지 관계가 있겠지요.
이 작품에서 표현한 아버지와 아들은 트로이 전쟁직후 그곳을 빠져나오는 아이네아스와 그의 아버지를 '
형상화한 것이라고 합니다.

책에서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여기서는 앞모습을 보여주고 있군요.
뒤집어서 촬영을 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작품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주목할 것은 나이에 상응하는 피부를 표현한 대리석의 질감입니다.
대리석이 말을 한다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로마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베르니니를 보려면 보르게세 공원,혹은 보르게세 미술관에 가야한다는 말을 듣고
물어물어 찾아갔습니다.그런데 지하철역에서 내려서 출구로 나가니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더군요.
우산은 없고 며칠간 돌아다녀서 몸은 축 늘어지고 고민이 되었습니다.
어찌 해야 하나,빗속을 뚫고 찾아다니면 보고 싶은 작품은 보겠지만 앓아누우면 이국에서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겠지? 결단을 내리고 숙소로 가서 잠을 보충했습니다.한 잠 자고 나니 다시 몸이 가뿐해지고
우산을 챙겨들고 다른 박물관을 찾아서 갈 기운이 생겼지만 이미 보르게세는 물 건너가고 말았지요.
베르니니 하면 그 때 일이 떠오르고 언제 다시 갈 수 있을까 고개 갸웃거리게 됩니다.

보르게세를 위해서 일하던 시절 베르니니는 발군의 작품들을 여러 점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 중의 한 점입니다.
아폴로의 관심을 거절하고 나무가 되었다는 다프네의 이야기
그리스 신화에서 읽은 이야기를 어렴풋하게라도 기억하시는지요?

오늘 들은 설명으로는 이 천개의 얼개를 루벤스의 그림에서 보고 현실화시킨 것이라고 하네요.
무에서 생긴 것은 거의 없을 테니 미술사를 읽다보면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는 관계에서
단순한 영향을 뛰어넘는 역량이 있는 사람이 나오면 그것이 새로운 미술사를 쓰게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자신의 얼굴을 모델로 한 다비드상이라고 하더군요.
르네상스이 추구한 인물상이 평범을 멀리하고 이상적인 아름다움에 도달한 인간,신성을 구현하는 인간상을
추구했다면 바로크의 인물상은 그 자신으로서의 인간,바로 현실세계속에서 숨쉬는 인간을 그려내려고 했다고요.
그러니 기준이 다르므로 어느 것이 옳다 그르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우리의 감성에 어느 것이 더 와닿는가의 문제일 수도 있고,두 측면에 고르게 매력을 느낄수도 있을 것이고요.
이상하게 저는 개인적으로 바로크에 끌리지 않았습니다.아주 오랫동안
장식성이 묘하게 거슬린다고 할까요?
그런데 오늘 대리석을 도판에서 보고 있는데 갑자기 대리석이 제게 말을 걸면서 나를 이해해봐
내가 얼마나 매력적인가,그렇게 권하는 기분이 들어서 혼자 피식 웃고 말았습니다.


포르세피나의 겁탈이란 제목의 작품인데요,배경속에서 보는 조각과 그냥 조각자체만 보는 것의 느낌이
이렇게 다르다는 것이 신기하네요.

언젠가 기회가 생긴다면 보르게세에 가서 가장 먼저 보고 싶은 작품이 제겐 바로 이 작품입니다.
바로 보르게세 자신이고요 그 조각에 대한 일화는 책에 재미있게 소개되어 있더군요.
조각가는 자신의 모델을 그냥 세워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이야기를 걸어서 그 사람이 바로 그 사람답게
자기를 드러내게 해서 인물을 조각했다는 일화를 읽으면서 그것이 사진의 원리나 회화속의 인물들에게도
적용되는 것이 아닐까,다만 예술만이 아니고 일상에서도 우리가 우리 자신으로 살아가는 일의 중요함에
대한 생각도 해보게 되고요.

앞으로 한 두번 더 그에 관한 글을 읽을 기회가 있으니 오늘은 이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하고
수업시간의 after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