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해 초에 산 음반입니다.
초기에 여러번 듣다가 다른 음반에 밀려 손을 못 댔던
그 음반이 오늘 아침 갑자기 눈에 띄어서 어제까지 걸어놓았던
멘델스죤과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 음반과 바꾸어서
듣고 있는 중입니다.
두 장의 cd에 40곡의 음악이 들어있는 ,그래서
호흡이 짧은 곡이긴 하지만 나름대로의 장르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사람들의 노래나 연주를 한자리에서
들을 수 있는 귀한 기회이기도 하지요.
"Art is jealous, she doesn't like taking second place an indisposition. Hence I shall humor her. ?What I want and have as my aim is infernally difficult to achieve, and yet I don't think I am raising my sights to high. I want to do drawings that touch some people."
- letter to his brother Theo, 21 July 1882
음악을 들으면서 아직도 다 못 본 고흐의 작품들을
골라서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가 올라와 있군요.
예술은 질투심이 많은 여자와 같아서 두 번째 지위로
그를 바라보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것같다고요
그가 원하는 것은 몇 몇 사람들에게라도 감동을 주는
그런 드로잉이라고 하는데 그의 소박한 소망을 넘어서
지금은 아주 많은 사람들이 그의 그림에서 깊은 감동을
느끼거나 격한 감정을 경험하거나 슬픔을 경험하기도
하고 있으니 그의 생애는 힘이 들었으나 그것으로 인해
그는 자신의 그림속에서 불멸하는 존재가 된 셈입니다.

이 신발그림을 보고 있자니 직업에 따라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보는 대상이 달라진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신발파는 사람들의 경우 다른 사람들이 신고 있는 신발을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더군요.
어릴 때부터 유난히 신발을 좋아해서 다양한 구두,운동화
그리고 슬리퍼를 장만해 신발장을 가득하게 만드는 딸과
사는 덕분에 가끔 그 집의 신발장을 열어보면
그 집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하곤 했지요.

스튜디오에서 바라본 목수의 작업장을 그린 것이로군요.
목수하니까 어느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글이 생각납니다.
목수였다가 나이가 들어서 더 이상 일을 못하게 된 사람의
별난 취미가 아무것도 버리지 않고 모으는 것인데요
어느 날 길에서 울고 있는 아이를 만나게 됩니다.
그 아이에게 도움을 주기 시작하면서 그는 장남감 병원을
차리게 된다는 이야기인데요,단순히 장난감을 고쳐주는
이야기로 읽히는 것이 아니라 제겐 아이들과 노인들의
소통이 어떻게 하면 가능하게 될까 그런 문제의식을
던져주는 글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제 일장춘몽으로 끝난 안타까운 일이 있었습니다.
새로 알게 된 분이 자신들이 모이는 일본어공부 모임이
있다고 하길래 도움을 달라고 부탁했더니
그 모임의 여러분들과 다 함께 도서관에 왔었습니다.
일본어 강독 모임후에 함께 모여서 일본어로 대화하는
시간을 마련했는데 제겐 말을 할 기회가 별로 없어서
참 즐겁게 각자 소개도 하고 앞으로 어떻게 회화시간을
꾸려 나갈까 의논도 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끝났거든요.
그래서 다음주부터 조금 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말할 수 있는 능력을 조금 더 배양해야지 다짐하고는
저녁시간에도 시간을 날 때마다 일본어 책을 읽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걸려온 한 통화가 그 꿈을 다 깨고 말아버렸네요.

일행과 함께 도서관에 찾아왔던 그 분이 죄송하게 되었노라고
다른 사람들이 제가 공부하고자 하는 방향이 조금 부담이
되는 모양이라고,놀면서 편하게 편하게 오래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제가 원하는 방향이 조금 과격하게
비친 것일까요?
유감이지만 마음이 동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억지로
같이 하자고 할 수도 없는 일이라 알았노라고,그래도
기회가 되면 다시 만나서 이야기하는 모임을 갖고
싶노라 그렇게 전하고 전화통화를 마쳤지만
이상하게 개운한 기분이 되지 않아서 한동안
씁쓸한 마음을 가눌길이 없더군요.

어제 국사책을 들고온 고등학교 학생이 있어서
삼국시대 아직 농업생산력이 좋지 않았던 시절
우경이 시작된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를 설명했었습니다.
이 그림을 보니 갑자기 그 시간의 설명을 떠올리게 되고
일본어 수업과 관련해서도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더 깊이 파고 들면 당장에는 불필요하게 느껴지는 주제라도
언젠가 어디선가 다시 그 문제와 만날 수 있으니
도움이 되련만,그런 안타까운 마음이 드네요.

오늘 아침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을 느끼면서
밖에 틀어놓은 음악을 들으면서 오래된 일본여행이란
기행문을 읽기 시작했었을 때,지난 여름까지 목요일날
아침 스터디했던 동아시아속의 일본이란 책을 기억해내게
되었습니다,그 때는 생소했던 오끼나와에 대한 글이
오늘 아침의 기행문에서 제 일편으로 소개가 되어
아,그 때 무슨 소린가 몰라서 헤매며 읽었던 이야기가
바로 이 기행문에 고스란히 소개가 되었네,반갑다 하면서
달려들어서 읽었기 때문이지요.

귀를 열고 있으면 언젠가 말을 통해서 만나게 될
낯선 사람들이 어딘가에 살아가고 있을 것이고
그들과 만날 기회가 있겠지 마음을 고쳐먹고
그림을 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