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의 일입니다.
언니,동생이 나란히 저랑 함께 공부하는 자매가 있는데
그 아이들의 어머니가 도서관에 오셨더군요.
4학년짜리 딸이 아무래도 선생님이 늘 바쁘셔서
제대로 식사를 못하시는 것같다고
엄마가 맛있는 것을 좀 사드리라고 했다고요.
그러면서 거봉 한 상자를 준비했노라고 내미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라기도 하고,고맙기도 한 선물,더구나
너무 수줍어서 기어드는 목소리로 대답하곤 하는
어린 아이가 어떻게 그런 생각까지 했을꼬 신기하기도 하더군요.
사실은 늘 도시락을 챙겨들고 와서 (사먹는 식사에
질려서일까요? 요즘은 도시락을 준비하는 일이 오히려
손에 익어서 그 편이 더 도움이 되더군요) 제대로 식사를
하는 편인데요,걱정해준 아이에게 고맙다고 전해달라고
그렇게 말하고 교실에 들어오는데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집에 들어와 사연을 말한 다음 거봉 포도를 씻어서
먹으면서 82cook의 카루소님이 올려주신 음악을 들으면서
고흐의 그림을 찾아서 보고 있습니다.
이 그림은 아마 그가 네덜란드에서 탄광촌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시기에 만난 사람들을 모델로 초상화를 그리던 시절의
작품이 아닐까 싶네요.
오늘 마침 자본주의시기가 막 시작되는 때의 영국에 관한
글을 읽다보니 노동으로 함겨운 사람들의 인상에
먼저 손이 갔습니다.
절대 빈곤이 사라진 시대라곤 하지만 사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삶이 질곡인 상태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절대적으로 다 가난했던 시절에 비해 상대적인
빈곤이 더 무서운 마음의 병을 낳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사실 우리가 아는 고흐는 그의 대표작으로만 만나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그런데 마침 그의 초기작부터 수집해놓은
싸이트가 있어서 찬찬히 보게 되네요.
화가하면 떠오르는 이름을 바로 대보라고 하면
어린아이들의 경우 십중팔구 피카소와 고흐를 대더군요.
고흐란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아이의 경우에는 그 귀 어쩌고
하면서 고흐를 언급하기도 합니다.
피카소는 그림보다는 이름으로,고흐는 이름도 이름이지만
그림으로도 기억하는 점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요.
화가의 대표작품으로 화가를 만나는 것보다는
한 화가의 일대기를 읽으면서 그가 살았던 시기,
그의 성장과정,그리고 어떤 변화를 겪으면서 그림의
경향이 달라졌는가를 따라가다보면
한 사람이 시대속에서 시대에 구속받고,그러면서도
구속을 뚫고 나가는 힘을 발휘할 때 그가 진정으로
시대를 초월한 화가가 된다는 것을 느낍니다.
파리에 온 이후의 색감이 달라진 고흐가 느껴지네요.
물론 가정에 불과하지만 일년전에 태어나서 죽은 형
그의 이름을 그대로 새로 태어난 아들에게 붙이는
무감각한 일을 한 부모가 아니라 조금 더 주의력이 있는
부모에게서 자랐더라면 그는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됩니다.
자료가 너무 많은 싸이트에서 그림을 보다 보니
아직도 그가 파리에 온 이후 초기작품들이 이어지는군요.
오늘은 여기까지 본 다음,내일 시간이 날 때
이어서 보아야 할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