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전 정수기회사에서 부품을 교체해주러 온다고
연락이 와서 기다리면서 씨디정리를 했습니다.
음악회 가기전 정발산에 사는 백명자씨 집에 가서
그 집의 좋은 스피커로 음반을 들은 다음
저녁먹고 음악회에 함께 가기로 했거든요.
무슨 음반을 들고 가서 좋은 소리로 다시 들어보고
제가 들고 간 음반은 그녀에게 들으라고 빌려주고
저도 듣고 싶은 그 집의 음반도 빌려오고
그런 기분으로 음반정리를 하는 마음이 즐겁지만
더 즐거운 것은 어제 밤 아들과의 통화였습니다.
기숙사에 살고 있는 그 아이와 요즘은 문자로 제가 하고
싶은 말을 골라서 하고 있는 중이지만
어제 밤은 문득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전화를 했지요.
그랬더니 승태가 엄마 부탁이 있다고 하더니
토요일에 집에 가면 아무래도 컴퓨터를 많이 하게 되니
엄마가 나갈때 선을 뽑아서 들고 가거나 어디에 숨겨달라고
하네요.
그런 마음을 스스로 생각했다는 것에 갑자기 눈물이 핑
돌면서 제 몸에 날개가 생긴듯한 희안한 기분이 되었습니다.
중학생시절부터 지금까지 제 마음속의 불안이나 고통이
주로 아들과 관계된 것으로 인해 생긴 것이고 보면
이런 기분을 느끼는 것이 이상한 것은 아니겠지요?

정리를 마치고 나서 오랫만에 나윤선의 음반을 걸어놓고
음악을 듣고 있습니다.
겨우 한 번 마음 먹은 것을 듣고 그렇게 즐거울 수 있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제겐 그것이 밖에서 강요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마음에서 단 한 번이라도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것을 일종의 씨앗으로 보았으므로
시들어도 다시 물을 줄 수 있는 가능성으로 생각하게 되네요.

함께 보고 있는 그림은 얀 스틴의 작품인데요
갑자기 이 화가의 그림을 찾아서 보게 된 사연은
렘브란트의 유령이란 소설을 읽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서점에 가서 다른 책을 사다가 이 책을 발견했는데요
오로지 렘브란트란 이름에 끌려서 산 책이
불행히도 제 기대에 못 미치긴 했지만 그 소설속에서
다시 보고 싶은 화가의 이름을 많이 발견했지요.
그 중의 한 명이 바로 얀 스틴입니다.

나윤선에 이어 듣고 있는 음반은 the holmes brothers의
state of grace,이 음반은 보람이랑 일본여행갔을 때 구한
음반입니다.
마침 그 아이가 일본에 가 있어서일까요?


아니면 제목에서 grace란 말에 끌려서 일까요?
두 번째로 이 음반을 골라서 들으면서 거꾸로 시간여행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 당시에는 제가 일본에 대해서 그리고 그 나라의 언어에
대해서 이렇게까지 관심을 갖게 될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뒤돌아보는 과거는 이랬더라면 저랬더라면 하는
후회나 아쉬움이 많겠지요?

그렇다해도 사람은 얼마나 놀라운 존재인가 생각을 합니다.
얼마전 궁금한 표현이 있어서 보람이에게 물어보니
갑자기 그 아이가 말을 하네요.
엄마는 아무래도 언어 중추가 발달한 모양이야
오십이 넘어서 외국어를 그렇게 할 수 있다니
그리고 아무래도 나는 엄마의 언어 중추 덕을 보는 것 같애
엄마가 지금은 일본어가 마치 무사의 말처럼 들리게 하지만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것이니 지금 이대로 계속하면
된다고 격려를 해서 웃었습니다.
이거 역할이 거꾸로네 하면서요.

딸이 방황하던 시절의 이야기를 지금 웃으면서 할 수 있듯이
아들의 청소년기의 이야기를 웃으면서 할 수 있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갑자기 마음속에 희망이 솟는 아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