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 몸이 불편하네,어라 이러다가 큰 병이 나면 곤란해
그런 생각이 들어서 조금 일찍이다 싶은 시간에
잠을 일부러 청했습니다.
그런데 몸이란 참 정직하네요.
오늘 새벽 여섯시에 갑자기 저절로 눈이 떠진 겁니다.
이런 일은 평생에 그다지 자주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서
참 신기합니다.
새벽은 새벽대로 기분이 좋은 시간대로군 하면서
마루를 여러 차례 걸어다녔습니다.
그러고나니 어제 아침 눈여겨본 영화포스터
비투스가 생각났습니다.어라 스위스 영화였지
오늘 보러 가기 전 일종의 워밍업으로 스위스 화가의
그림을 보고 싶어지네요.

보람이가 자꾸 위가 쓰리다고 해서 어제 아침 함께
병원에 갔었습니다.
내시경을 해보니 위는 말짱한데 식도염이라고 하네요.
식도주위가 정말 벌겋게 부풀어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식습관,혹은 불규칙한 생활,아니면 앉아 있는 자세
여러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을 받고
약을 처방받아서 나오다가 그랜드 백화점앞을 지나는데
무슨 영화를 하나 궁금해서 들러보았더니
비투스란 제목의 영화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처음 국내에 개봉되는 스위스 영화,게다가 음악을 매개로
한 영화라고 하니 당연히 관심이 갔는데
그래서일까요?
밤에 집에 와서 반신욕하러 들어가면서 당연히 손에 잡은
책이 스위스 예술기행입니다.
사람의 관심이란 이렇게 금새 어떤 것을 매개로 촉발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었지요.
그리고 새벽에 일어나서 스위스 출신 화가의 그림에 손이
가는..

제게 스위스는 그저 풍광이 아름다운 나라,그리고
칼뱅이 살았던 곳,루소의 고향이란 정도의 사전지식에
시계로 유명한 곳이란 정도의 느낌밖에 없었던 곳인데
스위스 예술기행이란 책을 통해 (사실 이 책은
오래 전에 사서 읽고 그 뒤론 잊고 있었던 책이었거든요)
근,현대 미술의 보고란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다시 찬찬히 읽다보니 와 소리가 절로 나는 작품들이
소장된 다양한 갤러리들에 눈길이 가더군요.


처음에 풍경화로 시작했다가 인상주의에 반발하면서
그림의 경향이 확 바뀌었다는 호들러,그런 말이 의미하는
것이 바로 이런 변화로구나 하면서 그림을 보고 있는
중이지요.

그러다가 그는 생애의 마지막에 다시 스위스의 풍광을
그리는 풍경화가로 돌아왔다는 기록이 기억이 나네요.

그림을 보고 있으려니 갑자기 몇 주전에 있었던 에피소드가
생각이 납니다.
어느 일요일 동생 친구 부부가 도서관에 왔습니다.
동생도 없는데 무슨 일인가 했더니 제게 볼 일이 있다고 하면서
한 장의 그림을 내미는 겁니다.
아들의 숙제인데 이 그림을 모사하고 누구 작품인가
정리해서 내는 것이라고요.
그런데 인터넷에서 뽑아온 그 그림이 누구 작품인지
알 수 없어서 혹시나 그림을 좋아하는 언니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싶어서 왔노라고요.

저로서는 처음 보는 작품이지만 어딘지 앵그르 풍의
그림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래도 숙제인데 추측만으로 앵그르 작품이라고 써보라
그렇게 할 수는 없어서 고민하다가 the portraits란 책을
주면서 그 책에서 가장 따라 그리기 쉬운 작품을 잡아서
그려보면 어떨까 제안을 했습니다.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고 그 부부가 돌아갔지요.
그리곤 잊고 있었는데 다음 날 도서관에 가니
동생이 갑자기 저를 부르더니 언니 내 친구 부부가
언니를 존경한다고 꼭 전해달라고 했다는 겁니다.
존경? 갑자기 이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린가 했더니
그 집 남편이 인터넷을 뒤적이다 보니 앵그르 그림중에서
바로 자신들이 들고 온 그림이 있었다는군요.
이름이 알려진 미켈란젤로,다빈치,그런 화가들의 그림이
아닌데 앵그르풍이라고 알아본 것이 그들에겐 너무
신기한 일이었던 모양이네요.
그렇다곤 해도 존경이라니 조금 오버하는 것 아니야
하면서 웃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금요일에 책을 돌려주러 온 동생 친구가
그 이야기를 다시 꺼내면서 모르는 분야도 오랜 세월
관심갖고 들여다보면 그렇게 되는 것인가
자신도 자신이지만 남편이 너무 놀라서 한참
그 이야기를 했노라 이야기를 꺼내더군요.
덕분에 그림의 abc도 모르던 상태에서 그림에 관한
책을 사서 읽기 시작하던 시절,그리고 미술관에 좋은
전시가 있다면 찾아서 가던 첫 시절의 흥분과
새롭던 느낌들을 떠올리는 시간을 갖게 되었지요.

지금은 그 열정이 음악속으로 빠져드는 것으로 조금
방향 이동이 된 감이 있지만 그렇게 그림과 만나서
사귄 시절의 정이 두터워서
가끔 무슨 일을 새롭게 결정해야 할 때,혹은 슬럼프라고
느낄 때,즐거운 일이 있거나 누군가에게 축하를 하고 싶을
때.혹은 자신을 칭찬하고 싶을 때 저절로 그림에 손이
가는 진짜 친구가 되었구나 감회가 새롭습니다.
일요일 새벽,갑자기 그림과의 깊은 인연을 생각하면서
듣는 브람스의 피아노 오중주,
하루의 출발이 아름다운 시간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