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체임버홀에서 오늘부터 열리는 2008 실내악 축제
젊음이란 소제목을 단 콘서트에 갔었습니다.
오늘이 첫째 금요일이라 다른 날이라면 조금은 여유있게
하루를 보내고 느긋하게 음악회에 갈 수 있는 날이지만
오늘은 사정이 있어서 도서관에서 제가 오전 근무를 해야
했었지요.
그런데 일산의 초등학교중에서 단기방학을 한 학교가
있어서 그런지 어린 학생들이 도서관 문을 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책을 보러 오기도 하고 다른 날보다
어른들도 책을 빌리러 일찍 나선 사람들이 있더군요.
집중해서 무엇을 읽기가 어려운 시간이라서
집현전에서 구한 blink의 audio tape를 틀어놓고
(블링크라고 한국어로도 번역책이 나온 바로 그 블링크입니다.)
들리지 않는 부분은 스킵하면서 tape 하나를 다 듣고 나니
정신이 조금 맑아지는 느낌입니다.
수요일날 전해받은 반룬의 THE STORY OF MANKIND
새 책이니 맛만 좀 보려고 펼쳤으나 역시 그의 문체에 반해서
한참을 읽게 되더군요.
그리스의 마지막 부분을 읽던 중에 누군가 말을 걸어오네요.
혹시 영어 전공이세요?
아,예 그런데요.
그랬더니 역시 그러니까 영어로 책을 읽고 있는 모양이네요
하면서 면담을 하고 싶다고 합니다.
5학년짜리 딸을 키우고 있는 그녀는 오전 중에
학교에 가지 않은 딸아이와 수학공부를 하다가
열받아서? 머리를 식히려고 도서관에 왔노라
그러면서 먼저 아이를 키운 제게 조언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이것저것 물어봅니다.
사실 저는 도서관에 앉아 있을 기회가 별로 없어서
처음 보는 회원인 셈인데 마침 목요일 수업의 영어교재도
보고 싶다고 하면서 말문을 연 그녀와 한참을 이야기하다보니
동생이 교대하러 왔습니다.
미안하다고,오늘은 그만 가야된다고 인사를 하고
도서관을 나서서 길을 건너는데 오래 전
선생과 학부모로 인연을 맺었던 분을 만났습니다.
무엇인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듯한 분위기라서
그렇다면 길거리에서 이야기할 게 아니라
차를 마실 수 있는 곳에 잠깐 들어가자고 들어간 그 곳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그 집 둘째와 우리 집 둘째에 대한 고민이 너무 비슷해서
서로 지금 누구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 헛갈릴 정도로
닮은 상태더군요.
그래서일까요?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몇 년의 공백을
메꾸고 있다가 나선 길,시계를 보니
벌써 다섯시가 넘어갑니다.
어라,조금만 더 지체했더라면 음악회에 늦을 뻔한
참 희안한 날이었습니다.

집에 와서 간단하게 점심겸 저녁을 먹고 나선 길
사실 중간에 낮잠을 못 자서 음악회에 가서 집중해서
음악을 못 들을까봐 버스속에서 푹 자고 싶었으나
뒷자석의 여자분이 계속 휴대전화로 크게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중간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좀 짜증이 난 상태로 연주장에 도착을 했지요.

그러나 일단 실내악 축제의 개막을 알리는 소리와 더불어
예술감독 강동석의 소개말과 (이번 연주를 위해서
시벨리우스의 출간되지 않은 악보를 구하려 노력하다가
포기한 이야기,그런데 연주개막일 3주전에 악보를 입수해서
이번에 초연을 하게 되었다는 사연,그리고 이번 연주회의
곡들은 작곡가들의 어리거나 젊은 시절의 곡이란 소개말을
들으니 갑자기 흥미가 생기면서 몸이 깨는 느낌이더라고요)
그리고 젊은 그들이란 제목의 곡을 작곡한 작곡가
강은수 (제겐 한국작곡가라면 진은숙의 곡을 들은 이후로
처음인 그것도 둘 다 여성작곡가라니 감개무량한 ) 가
직접 무대에 나와서 젊은 그들의 제목이 표상하는 것이
용정중학교의 동창생인 윤동주와 얼마전 작고한
크리스챤 아카데미의 강원룡 목사를 지칭한다고
(강은수는 강원룡목사의 질녀라고 하더군요)
젊은 그들은 아직 어린 사람들의 앞으로의 미래,
지금 젊은 사람들,젊음을 막 빠져나온 사람들,그리고
이미 젊음미 멀리 가버린 사람들,모두를 위한 그녀의
선물이란 멋진 인사말과 더불어 자신이 좋아하는 악기
아코디언의 맛을 살리도록 작곡한 것이란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어라,점점 더 관심이 가는 프로그램이네요.
처음 로시니가 열두살 때 작곡한 현을 위한 소나타는
그다지 관심을 끄는 곡이 아니었으나
두번째 시벨리우스의 4중주에서 강동석과 조영창의
바이올린과 첼로 소리에 반해서 갑자기 몸안의 감각이
확 살아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연주자와 악기가 하나인 듯한 느낌으로 연주에 몰입하게
만드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기량이 아니겠지요?
일년이 넘게 연주장에 다녔지만 참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오늘의 강동석의 연주는
그의 연주가 마음속의 소리를 주체할 수 없이 분출하는
아름다운 연주라면 조영창의 연주는 뭐랄까
소리를 연주자가 주인이 되어 다스리면서도 따뜻한
그리고 함께 연주하는 사람들을 마음으로 배려하는
그런 연주라고 할까요?
체임버 뮤직이 아름다운 것은 바로 이런 느낌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세번째 작곡가는 난생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습니다.'
도흐나니,그런 이름의 작곡가의 피아노 오중주였는데요
이 연주는 체임버 뮤직의 정수를 제게 보여주었다고 할까요?
피아노 오중주라서 그런지 다른 곡에 비해 피아노의 비중이
컸고 피아노를 연주한 한동일은 제겐 이름으로만 존재하던
사람이었는데 연주장에서는 처음 만나는 연주자였지요.
첼로의 양성원
사실 오늘 아침 그의 연주로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를
연달아 들었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공간에서 다시
만나니 더 반가웠습니다.
현악기 사이의 소리의 조율,그리고 그 자리를 비집고 들어오는
피아노 소리, 비올라가 먼저 소리를 내면 그 소리에 화답하던
첼로,첼로속으로 파고드는 바이얼린 소리에 이어
다시 빠른 음으로 격렬하게 이어지는 피아노
그런 느낌을 눈앞에서 보면서 그리는 것은 참 즐거운
몰입의 경험이 되었습니다.

휴식시간후에 젊은 그들의 연주를 들었는데요
아코디언의 매력을 잘 살린 곡이란 작곡가의 말처럼
아코디언소리가 솔로로도 연주되어서 음색에 빠져들 수 있었고
이제는 조금 편안한 마음으로 현대음악을 들을 수 있을
것같은 느낌이 든 소중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피아노가 낼 수 있는 다양한 소리에 대해서도 한 번
더 생각한 시간이기도 했고요.

마지막 곡은 멘델스죤이 열여섯에 작곡한 곡이라는
현악 팔중주였는데 이 곡에서는 현악기가 내는 여린
소리들의 하모니가 인상적이더군요.
시벨리우스에서보다 더 정열적인 강동석의 소리에
연주가 제게 스며오는 것이 아니라 제 몸이 연주자에게
반응하는 희안한 경험을 한 시간이었지요.
청중들의 열화와 같은 박수에 마지막 연주자들이 여러 번
다시 나와서 인사를 하고 드디어 불이 켜진 연주장
그래도 여전히 박수를 치면서 브라보를 외치는 청중들속에서
저도 브라보,브라보를 마음을 담아서 외치는 즐거운
경험을 한 날이었습니다.
13일까지 연달아 실내악 축제가 벌어지지만 제겐
오늘 하루 가능한 시간이어서 정말 아쉬운 마음이네요.

혹시 그 기간동안에 광화문에 가실 일이 있는 분들은
그런 즐거운 축제에 함께 해보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