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저도 휴대폰을 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물론 금요일 나들이때문에 연락이 불편하니 상대방을
생각해서 휴대폰을 구하라는 캘리님의 끈질긴
성화에? 못 이겨서 고민고민하다가 구한 것이지만
아직도 다른 날에는 거의 들고 다니지 않고 있지만요.
그래도 금요일이라 들고 나간 휴대폰,연락이 되어서
아람누리에서 5시에 만나자,먼저 모딜리아니 전시보고
그 다음에 임동혁 피아노 독주회에 가자,이렇게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지하철속에서 충분히 잠을 잔 덕분인지 아람누리에 도착하니
몸이 개운합니다.
그런데 전시장에 들어가서 첫 인상이 우선 조금 이상합니다.
전시설명을 세로가 아니라 가로로 길게 늘어놓아서
관람자의 입장에서는 읽기가 불편한 것입니다.
어라,이런 기본적인 것에서 불편을 주다니,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그림에서는 뭔가 다르겠지 하는 마음으로
마음을 고쳐 먹고 그림을 보러 들어간 순간
이 곳이 모딜리아니의 전시장인지 잔느의 전시장인지
헛갈리네요.
한 쪽은 잔느의 다른 한 쪽은 모딜리아니의 전시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전시장을 돌았는데 계속 되는 잔느의
그림들,순간 당황스럽네요.
안을 지키고 있는 보조요원에게 물어보니 이 전시는
모딜리아니의 전시가 아니라 모딜리아니와 잔느의
슬픈 사랑에 관한 전시라고 우기더군요.
아,이럴 수가
그래도 모딜리아니의 작품을 원화로 본 것,그가 한 스케치에서
순간적인 포착을 보여주는 몇 점의 소묘들이 좋았고
미술학교에 다니던 잔느의 그림이 발전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녀가 초상화보다는 오히려 풍경화에서 기량을 보이고
더 살았더라면 어떤 발전을 이루었을까(초상화보다는
풍경화에서 기량을 보인다는 느낌은 물론 제 주관적인
견해이지요) 그런 마음으로 화가가 되고자 했던 한 여자를
제대로 만난 시간이긴 했지요.
그래도 이것은 대대적인 선전에 비하면 뭔가 많이 부족한
것은 아닌가,마음이 찜찜합니다.
그런 마음 때문일까요?
토요일 아침 그의 그림을 다시 찾아보게 되는군요.
재미있는 것은 그에 관한 책 한 권을 최근에 읽었다고
제목에서 사람이름이 척하니 눈에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이 여성은 모딜리아니의 첫 연인이었다고 하네요.
모딜리아니와 잔느는 같은 모델을 두고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고
하더군요.
그녀가 그린 수틴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이 그림은 물론 모딜리아니이고요.
벨 에포크라 불리던 시대,프랑스의 파리에 모여든
각국의 미술가들,그들이 서로 만나서 경쟁하고 격려하고
좌절하기도 하면서 보냈던 시간,그 시간속에서
모딜리아니가 만난 사람들이 많았겠지만
그 중에서도 그에게 상당한 격려를 하고 도와준 사람이라고
하네요.그림속의 이 인물이
일산의 미용실에 와 있다는 자전거님에게
이 전시는 보지 않는 것이 좋겠으니 천천히 오시라고
연락을 했습니다.
지난 여름 미국의 미술관 순례로 이미 원화를 많이 본
그녀에겐 이 전시가 만족스러울리 없을 것 같아서요.
전시장을 나와서 연주회 시간까지
셋이서 오랫만에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그동안 지낸 이야기,앞으로 가고 싶은 연주회 이야기
드디어 만난 임동혁의 바흐연주
제겐 특히 바흐의 곡을 부조니가 편곡한 작품과
글렌 굴드의 연주로만 듣다가 새로운 느낌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듣는 시간이 좋았습니다.
새롭게 만난 연주자,앞으로 그가 어떻게 변하고 성장할 지
주목하게 된 또 한 명의 연주자가 생긴 날이기도 했고요.
옥의 티라면 아람누리에 온 관객들이 보여준
시간에 늦는 관객이 많아서 연주회 시작이 늦추어진 점
연주회가 시작되자 마자 울리던 휴대폰 소리
그리고 가만히 집중해서 들어야 할 시간에 터지는 박수
마지막 연주가 끝나고 조금 기다리지 않고 일어서서 나가는
사람들,
공연에 참석하면서 즐기는 시간이 늘어나면
이런 것들이 조금씩 고쳐질까요?
마침 여동생 둘이 이 연주회에 왔길래 끝나고 만나서
이야기도 할겸 요기도 할겸 오랫만에 예전에 살던
동네에 갔습니다.
다른 한 동생도 불러내서 4자매가 오랫만에 만났습니다.
서로 다른 술과 안주를 시키고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린 시절의 기억이 다르다는 것이 재미있더군요.
그리고 마침 내년에 이민 떠나는 동생이 있어서
마지막으로 가족여행을 어디로 갈 것인지 이야기를 하던 중
제가 제주도로 강력하게 주장을 했지요.
평소라면 되는대로 남이 정하면 그저 시간에 맞추어
따라가던 제겐 이렇게 강력하게 주장하는 것은 이변인
셈인데요
낮 시간 소격동의 학고재에서 만난 강요배의 그림이
이번 여행지를 결정하는 강력한 힘이 된 셈인가요?
집에 들어오니 새벽 2시가 넘은 시간
참으로 길고 다양한 빛깔로 색칠한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