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의 일입니다.
헌책방 집현전에 갔을 때 마침 60%나 되는 할인율로
한길사의 개념미술 (번역본)을 발견했습니다.
안을 펄럭펄럭 넘겨보다가 어라,어렵겠네
그런데 책값은 유혹적이고
한참 갈등하다가 읽다가 못 읽으면
다시 기운내서 읽을 기회가 오겠지 하고
책을 구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황무지나 다름없는 개념미술에 대한 글을
읽으려니 머리에 쥐가 나는 느낌이고
실제로 이름을 알 수 있는 화가도 거의 없는 실정이라
사분의 일가량 읽다가 다른 재미있는 책에 밀려
책장에 먼지를 뒤집어 쓴 채 그냥 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이번 성곡미술관 강의의 마지막 강사가
이 책을 번역한 사람이라는 귀한 인연이 생겼고
개념미술을 강의 들은 날 집에 와서 책을 꺼내
넘기면서 보니 새롭게 들어서 알게 된 이름들이
페이지마다 나오는군요.
한 주일동안 공부해서 제대로 정리를 해야지 마음먹었지만
의무로 읽는 책과 그것보다 더 강력한 힘으로
잡아당기는 책중에서 선택은 역시나 즐거움쪽으로
흘러가버리고 다시 화요일이 돌아왔습니다.
이번에는 포스트 모더니즘강의인데
여기도 역시 한 번의 강의로 해결하기엔 너무
복잡한 이야기들이 산재합니다.
이야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철학적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는 이름들도 줄줄이 나오고요.
누가 숙제로 강요하는 것도 아닌데 왜 부담을 느끼는 것일까
혼자 고민하다가 생각해보니
시작한 일을 제대로 마무리못하고 그것도
잘 알기 어렵다는 이유로 도망가는 것이 마음에
걸렸던 모양입니다.
마침 목요일 영어책 정하는 시간에
one small step can change your life란 책으로 결정을 하고
그 책을 읽었던 당시의 환희와 설레임을 생각해냈습니다.
그렇지,조금씩 공부하면서
제대로 이 강의 시간에 다룬 내용을 정리해보도록 하자
이렇게 마음먹으니 마음이 갑자기 가벼워지네요.
아람누리 도서관에서 빌려온 개념미술,그리고 미학 오딧세이
3권을 보조 텍스트 삼아서
앞으로 남은 2007년의 공부과제로 삼고
즐겁게 읽어나가고 이해하는 만큼 정리해보자,이렇게
간단하게 생각하면 될 것을 왜 이렇게 부담을 느꼈을까?
한 번 마음을 뒤집는 것의 어려움과 홀가분함을
함께 경험한 날입니다.
개념미술 책을 처음 펴면 개념미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가 나옵니다.
개념미술이란 형태나 재료에 대한 것이 아니라
개념과 의미에 관한 것이며,미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특히 개념미술은
독창적이고 수집 및 매매될 수 있는 미술 대상의
전통적인 존재방식에 도전한다
작품이 전통적인 형태를 지니지 않기 때문에
개념 미술은 관람자에게 좀 더 적극적인 반응을 요구한다
이런 표현이 나오네요.
그렇다면 그런 요구를 작가들은 무엇을 통해 우리에게
들이대는가,그것에 대해서 관람자인 우리들은 어떻게
반응할 수 있는가,혹은 반응을 통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이런 문제들을 고민해보아야 하겠지요?
1960년대 미술계를 풍미한 현상은 팝아트,미니멀아트
그리고 키네틱아트였습니다.
키네틱아트라 뭐지? 궁금한 사람들은 칼더의 작품을
상상하면 이해가 될 것 같네요.
작품이 허공에서 바람을 맞고 흔들리는 ,그래서
주변을 돌면서 바라보는 일에서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순간을 기억하면.
그런데 68세대라고 총칭되는 그 시기에 권위에 대한
반발이 절정에 이르게 됩니다.
미국에서는 베트남참전에 반대하는 시위가 잇다르고
프랑스에서도 68운동을 통해 젊은 학생들이
권위에 대항하는 운동을 벌이게 되면서
그런 상황에 대한 대응의 일환으로 미술에서도
미술이란 무엇인가?
미술가가 만든 것만이 미술인가?
미술가는 어떤 행위를 해야 미술가라고 할 수 있는가?
관람자는 누구인가?
관람자와 미술작품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미술제도 (화랑,미술관,미술시장,그리고 미술비평)와
미술가는 어떤 관계를 갖는가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작업하는 일군의 사람들을
개념미술가라고 한답니다.
그들이 관심갖는 것은 미술작품 그 자체보다는
미술의 개념자체이며
미술의 개념에 관계되는 미술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자기 정의를 시도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고요.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내놓은 작품을 보면
언어로 기술한 것,사진이나 도표를 이용한 것등
기존의 미술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 많이
나타난다고요.
개념미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론만 늘어놓아도
구체적으로 그것이 무엇인지 알기 어려우니
본론으로 들어가서 개념미술의 양상들에 대해 알아봅니다.
우선 미술,미술가의 의미에 대한 논쟁적 설명을 보여주는
작품을 찾아보았습니다.

아니,이게 무슨 미술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겠지요?
처음 본 순간.
존 발데사리의 작품입니다.
이런 식으로 언어로 설명을 하는 작업이 개념미술의
한 가지 접근법이라고 하네요.

이 작품은 terms most useful in describing creative works of art란 제목을 달고 있습니다.
흐리게 인쇄되어 있어서 다 읽긴 어렵지만
미술가가 생각하는 창조적인 미술작품을 설명하는 가장
유용한 용어들을 정리한 것입니다.
처음 보면 참 어리둥절하지요?
이것이 작품인가,아니 관람자를 놀리는 것인가 하고요.
그러나 찬찬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미술을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라기 보단 내가 하고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업이란 것을 알 수 있네요.
그는 1970년에 화랑 프로젝트란 것을 기획했는데
그 내용이 작품 남은 것을 태워서 재를 유골함에 넣는 과정을
보여주는 작업을 했다고 하네요.
그런데 그 과정을 보여주는 사진이 소프트웨어로 남아
지금은 뉴욕에 있는 전유태인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여기서 미술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작품자체보다 중요한 의미가 되는 새로운 개념과
맞닥뜨리게 되는 셈이랍니다.
또 하나 그의 작업중에서 재미있는 것은
i will not make any more boring art란 작품이 있는데
이 글씨를 자신의 제자들에게 쓰게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을 누구 것이라 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겠지요?
모짜르트곡을 누가 연주해도 그것은 모짜르트 작곡의
누구 누구 연주가 되듯이 발데사리가 이런 작업을 생각한
장본인이므로 글씨를 누가 쓰던 상관없이 그것은
발데사리의 작업이 된다는 것
이것도 그 이전의 작업과는 다른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지요.
개념미술은 우리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문제들을 건드림으로써
호기심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그 이전의 미술에 익숙하고
그것을 바라보는 일에서 심미적인 경험을 한 사람들에겐
사실 당혹스럽기도 하고,이것도 미술인가,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던 미술은 무엇인가
자꾸 생각하게 하는 골치아픈 미술이라고도 할 수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