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첫 날이자 금요일인 오늘
오전 오후 집에서 즐겁게 보내다가
느지막한 시간,집을 나섰습니다.
첫 금요일의 음악회가 있어서요.
브람스연주-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를 들으러
가면서 오늘은 무슨 곡을 어떻게 연주하는 사람을 만날 것인가
설레는 마음으로 갔었는데요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속에서도 곡과 연주자의 실루엣이
어른거리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감흥을 깨기 아까워서 집에 들어와서도
다른 브람스 곡을 찾아서 들어보는 중에
그림을 골라서 함께 보고 있습니다.


칸딘스키와 함께 청기사파를 형성해서 활동했던 화가
프란츠 마르크의 작품인데요
첫 작품과 둘째 작품이 참 달라서 같은 화가의 그림이라고
말하기 전엔 알기 어렵겠구나 싶네요.
화가들의 변화과정을 추적하면서 따라가는 일도 참
재미있는 작업중의 하나인 것 같아요.


제겐 마르크 하면 이 그림 한 점으로도 충분하다고 느낄
정도로 강렬한 느낌으로 처음 만났던 작품입니다.
그 뒤로 뭔가 우울하다,감정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낄 때
찾아서 들여다보고 있으면 조금씩 마음속이 밝아지고
에너지를 주입받는 기분이 되는 작품이기도 하지요.

오늘 바이얼린 주자의 연주가 상당히 격렬해서
그런 인상으로 인해 아마 무의식적으로 이 화가의 그림을
골랐나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게 되네요.
음악회의 동행으로 함께 하는 everymonth의 캘리님과
조금 일찍 만나서 한 달동안의 음악회 프로그램이 담긴
프리뷰라는 소책자를 놓고 무엇을 보러 갈 것인가
서로 이야기하는 시간이 참 즐거웠습니다.
무엇인가를 함께 좋아하고 찾아다닐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망설임없이 그 일에 몰두하도록 하는 자극제가 된다는
것,그리고 그 사람이 이미 그 분야에 대한 소양이 풍부한
경우 함께 하기가 더욱 즐겁다는 것을 이번 한 해
음악회를 함께 다니면서 실감하고 있답니다.


동물을 인간보다 더 신뢰하고 주로 동물 그림을 그렸던 마르크
그의 그림에서도 변화가 보이네요.


제 개인적으로는 이런 변화 이전의 마르크 그림이 더
마음에 와 닿습니다.
화가가 당대를 살면서 휘몰아치는 변화속에서 무심하게
제 자리를 지키긴 어려웠나? 아니면 그의 그림에서 이런
변화를 유도한 내적인 긴박한 사정이 있었나 문득
궁금해지네요.
내일 칸딘스키 책을 다시 읽다가 보면 마르크의 이야기도
더 자세히 나올까요?
브람스 곡을 들으면서 본 프란츠 마르크,오늘 음악회의
after로어울리는 즐거운 시간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