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아침
두 번 이상 깨워도 일어나지 못한 보람이에게
대신 아침 밥상을 차리라고 (일어나지 못한 대신)
일러놓고
브람스 곡을 하나 들어보려고 블로그에 들어가보니
낯선 곡들을 많이 담은 곳이 있어서
쇼송의 곡을 듣고 있는 중입니다.
어제 밤 쓰다 만 글이 생각나서 파르테논 신전을 검색하니
그림으로 볼 수 있는 파르테논 신전이 있네요.


그린 화가의 이름을 읽다보니 어딘가 낯익은 느낌이 들어서
다시 읽어봅니다.프레드릭 에드윈 처치라
웬디수녀의 미국미술 소개 책자에서 본 바로 그 사람이로군요.
하루 강의를 들었다고 신전 모습을 조금 더 자세히 보게
됩니다.
아침 수업이 있어서 자세하게 풀어 설명할 시간은
없지만 그래도 기분좋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 그림은 피디아스가 (그는 페리클레스 시대의
일종의 페리클레스와 메이트가 되어 아테네 건축의
재건을 맡았던 사람이지요)
그의 친구들에게 파르테논 신전의 부조를 구경시켜주는
장면이라고 하네요,

이 곳을 오스만 투르크가 화약 창고로 쓰고 있다가
베네치아와의 싸움에서 베네치아쪽에서 폭파하는 바람에
이렇게 페허가 되어버렸다고 하니
역사가 문화재에 가한 폭력의 실체를 보고 있는 느낌입니다.
물론 문화재에만 폭력을 가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우리에겐 순백의 대리석 이미지로만 기억되고 있는
파르테논 신전이 사실은 채색,그것도 상당히 화려한
색으로 채색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놀라움이
지금도 기억이 나는군요,
그 때 우리의 미감이란 것이 사실은 주입된 것이로구나
처음 알았던 것과 달라지자 얼마나 생경한 느낌이었던가
그 느낌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이 조각상은 처녀신 아테나,즉 아테나 파르테노스입니다.
그래서 처녀신을 보신 신전이라 파르테논이라고 한다는군요.

아침 밥상이 차려졌다고 빨리 나오라고 부르는 소리
밥부터 먹어야겠지요?
이 글을 아침에 쓰고 나서 하루가 다 지나고
이제야 조금 한가한 늦은 밤입니다.
보로딘의 음악 한 곡을 틀어놓고
다시 파르테논으로 돌아갑니다.
신전의 정면 기둥이 6개이면 측면은 곱하기 2에 더하기 1
이렇게 하면 일일이 세지 않아도 기둥수를 알 수 있다고 하네요.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300이란 영화 아직은 보지 못했지만
처음 제목을 들은 것은 어떤 학생에게서 였습니다.
제가 영화를 좋아한다는 것이 널리 알려져서
아이들이 영화를 보고 나면 이야기를 곧잘 하거든요.
선생님,삼백 보았어요?
삼백이라니 이게 무슨 이상한 영화제목인가
그래서 삼백이라니 무슨 영화니 하고 물으니
페르시아랑 그리스랑 싸운 이야기래요다른 대답이
돌아오네요.
그래? 그러면 테르모필라이 전투를 영화로 만들었단
말인가 하고 놀랐습니다.
오래전 불의 문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읽은 적이 있는데
고고학자 출신이 쓴 아주 탄탄하고 아름다운 소설이어서
기억에 남아 있었거든요.
그 전에 키루스2세란 소설을 읽었으니
거의 동시에 페르시아와 스파르타를 비교하면서
읽는 것도 흥미있었고요.
영화라면 어떻게 형상화할 것인가
언제 짬을 내서 보아야 하나 궁리중인 영화이기도 한데
파르테논 신전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왜 영화이야기로 샛길로 접어들었는가 하면
바로 페르시아와의 싸움에서 아테네시가 거의 전소되다시피
했다고 하더군요.
테르모필라이에서 스파르타군이 지긴했으나 그다음
살라미스 해전에서의 승리와 다른 싸움에서의 결전으로
아테네를 중심으로 했던 그리스 연합군의 싸움이 승리로
끝났고 그 다음에 앞으로 있을 페르시아의 침략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델로스동맹이 형성되었다고 하는데요
원래는 금고가 델로스섬에 있어서 델로스동맹인 이 모임이
아테네가 주도권을 행사하면서 이 금고의 돈을 이용하여
페리클레스가 아테네의 도시 재정비를 했다고요
그 덕분에 원래 있던 자리의 작은 규모의 신전자리 근처에
새로 신전을 짓게 되었는데 신전 본래의 목적에 더하여
전승기념관같은 역할도 겸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판부조의 조각들도 그런 이야기들이 다양하게
있다고 하네요.
저는 그리스는 못 가본 곳이지만 마침 대영박물관에
엘긴이 그리스에서 가져온 유물들이 많았고
파르테논신전의 모형을 복원한 것이 있어서
본 기억이 나지만 그 때만 해도 잘 몰랐던 시기라
아,새하얀 신전의 느낌이 독특하네,그리고
신의 옷주름을 이렇게 섬세하게 표현하는 손의 놀라움이라니
뭐 그런 정도로 바라보고 감탄하던 기억만 떠오르는군요.
이 신전의 건축과정은 플루타크 영웅전의 페리클레스편에
잘 나와있다고 한 번 읽어보라는 권유를 하더군요.
강사의 권유가 있기 전에도 풀루타크 영웅전을 읽었지만
그런 과정이 자세히 나와 있었는지는 가물가물해서
기회를 봐서 다시 한 번 자세히 읽어보아야 할 모양입니다.
원래는 정면기둥이 6개인 도리스식 건물인 이 신전이
페르시아 전쟁중에 불에 타는 바람에
다시 지으면서 기둥을 8개로 늘렸다고 하네요.
그러는 바람에 비례가 맞지 않는 그런 건물이 되었다고 합니다.
사실 잘 모르는 우리들 일반인의 눈에는 그런 것이
잘 보이지 않아서 명성에 눌려서 아,파르테논 하기 쉽지요
물론,
그래도 도판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파르테논 신전과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의 도면을
보니 아,정말 그렇네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더군요.
이 신전이 전쟁기념관의 성격을 띄는 것중의 하나가
정면 기둥 위에 있는 장면중에 아테나와는 상관없는
켄타우로스를 등장시킨 장면인데요
켄타우로스는 그리스인들이 생각한 페르시아에 대한 상징이
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당시에 지어진 신전들의 단골주제가 바로
켄타우로스마키아였다고요 (마키아란 싸움이란 뜻이라고
합니다.)
박공부분의 한가운데에는 제우스의 머리에서 태어나는
아테나,그리고 그 옆에서 출산을 돕는 헤파이스토스의
모습도 보이고 가장자리에 앉아있는 디오니소스도 보입니다.
당시 이 건축물의 공사기간을 단축시키려고
신전을 두르는 기둥을 이중으로 하지 않고 하나로 처리한
점,그리고 신상이 너무 커서 전체 규모에 비해 감실이
너무 크게 지어진 점
그리고 기둥이 여덟개이다보니 기둥의 지름,높이 주간거리등이
비례에 맞지 않아서 제대로 건물을 볼 줄 아는 사람들의
눈에는 협소하고 제대로 못 지어진 건물이란 생각이
든다고 하네요.
그렇다고는 해도 이 건물은 당시 그리스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겐
일종의 견학하고 보아야 할 건물이었고
특히 건축물을 지어야 하는 사람들에겐 꼭 들러서 보고
배워야 하는 건축물이었다고도 합니다.
제 능력으로는 여기까지만 설명이 가능하군요.
그리스 도기에 대한 이야기도 수업중에 한참 들었지만
오늘은 여기까지의 정리로 일단 끝내야 할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