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미술관에서 르네 마그리뜨전이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중,고생들의 방학이라 밀리는 전시장 사정을 생각해서
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주면 로베르 콩바스전이 끝난다는 말에
그렇다면 아무래도 이번 금요일에 두 전시를 다 보러
가는 것이 좋겠다 해서
반쪽이님과 시간을 정했지요.
요즘 닥터 고토 진료소를 드라마로 다운받아서 보는 중이라
어제 조금 늦게 잤더니 아침부터 몸이 그리
상쾌하지 않네요.
아마 그동안의 피로가 쌓여서 몸이 나 좀 쉬게 해달라고
신호를 보내는 모양이다,어찌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그렇다면 버스를 타고 나가면서 광화문까지 자고 가는
것이 좋겠다고 결정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역시 조금은 상태가 좋아졌어도
여전히 즐거운 전시장 나들이가 되기엔 무리다 싶더군요.
가까운 거리에 있는 빵집에 들어가서
핫 초코 한 잔에 베이글을 주문하고서
들고 간 책을 꺼냈습니다.
클래식광,그림을 읽다란 제목의 책인데요
어제 구했지만 바빠서 책하고 인사도 못 한 상태라
궁금해서요.
그 안의 처음 인사글을 읽다보니 갑자기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입니다.
클래식음반의 자켓에 있는 그림을 음악에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 풀어서 설명하는 그런 책인데요
그림도 그림이지만 저자가 설명하는 음반에도 슬며시
관심이 동하는 책읽기였습니다.
기운을 차리고 시립미술관으로 가는 길
약속시간에 늦어서 서둘러 가니
벌써 르네 마그리뜨전의 도슨트 설명이 시작되었네요.
그런데 놀랍게도 중,고생들이 아니라
어른들이 통행이 불편하다고 느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설명을 듣고 있습니다.
아,놀랍다
언젠가는 렘브란트,모네,세잔,
이런 식으로 한 화가의 전 일생에 걸친 그림들을
전시하는 특별전이 멀리 가지 않아도
서울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오겠구나
혼자서 공연히 감동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전시장을 둘러보니 반쪽이님이 보이네요.
반갑게 인사하고 각자 혹은 어울려서 전시 도슨트의
설명을 듣던 중 켈리님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2.3층의 전시장을 돌면서 간단하게 설명하는 도슨트의
안내를 다 따라다닌 다음
셋이서 다시 처음부터 전시장을 돌면서 그림을
구경하였지요.
우리가 흔히 초현실주의에 속한다고 알고 있는 르네 마그리뜨
그의 그림을 후기작만이 아니라
작품활동의 처음시기부터 차례로 볼 수 있어서
화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전시장을 나와서 다음 전시인 로베르 콩바스전에 가기 전에
약간 시간을 내어서 들어간 아트 샵에서 만난 어린이 책이
한 권 있었는데요
그 책에서 마침 르네 마그리뜨에 관한 설명을 읽었지요.
저는 전시장의 도슨트 설명보다도
이 책에서 더 큰 즐거움을 누리는 행운을 만난 셈인데요
르네 마그리뜨 그림에 대해서 이렇게 명쾌하게
아이들도 이해하게 설명할 수 있다니 하고 놀랐습니다.

저자는 아이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평범한 사과가 그려진 그림이 이상한 그림나라에
놀러 오는 것으로 시작을 하더군요.
그 그림은 이 세계에 끼어들고 싶지만
이상해야 한다는 조건에 맞지 않아서 쫓겨 날 지경이지요.
그러자 그 그림이 교장이란 이름이 붙은 그림앞에서
교장선생님에게 사정을 합니다.
제게 기회를 준다면 며칠 안에 이상한 그림들이 자신과
무엇이 다른지 알아내겠다고요.
그러면서 추론을 해나가는 과정인데요
위에서 본 그림을 예로 들면
크기가 다른 점을 눈여겨 봅니다.
예를 들면 침대위의 빗이 터무니 없이 큰 크기이지요.
전체 구조에 비해서요.
르네 마그리뜨는 일상에서 우리가 흔히 쓰고 있는 물건의
크기를 달리 해서 우리에게 일상을 다시 보게
만들어서 일종의 철학하는 그림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을 그 그림은 알아냅니다.
다른 한 가지는 벽에서 벽난로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기차가 나오는 그림 기억하나요?
갑자기 찾기가 어려워서 말로 설명을 하자면
우리가 당연하다고 하는 관념을 뒤집어서 병치시키는
수법을 쓴다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이것은 사과가 아니다
이런 글씨를 써놓은 그림들을 통해서
우리가 당연시하는 대상들을 반어적으로 말함으로써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을 들고 있습니다.
물론 마그리뜨의 그림들을 단순히 이렇게 세 가지
방법으로만 단순화시켜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림을 보고 나서 뒤숭숭한 머리에
어린이 책의 설명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게 들렸습니다.

전시장 내의 공간에서 찍은 포스터입니다.

들어가기 전에 본 포스터와 그림을 제대로 감상하고
다시 나와서 보는 포스터,같은 포스터인데도
얼마나 느낌이 다른지요.

화가의 초창기에는 인상주의와 야수파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대로가 아니라
나름대로 소화해서 그려놓은 그림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요
특히 르노와르풍의 그림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 다음 초현실주의 쪽으로 옮겨간 후에도 다른
초현실주의 화가들과는 조금 다른 느낌의 그림을
그렸다고 말해도 될까요?
제겐 그의 세계가 상당히 따뜻하게 느껴져서
오래 전에도 퐁피두 센터에서 그의 포스터를
구해 온 적도 있었지요.
어떻게 이런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을까
놀라던 기억도 생생하네요.


이전 전시에서는 빠진 작품이지만
너무도 잘 알려진 그의 대표작중의 하나이지요.
빛의 제국이란 제목의 이 그림은
사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공간이지요.
낮과 밤이 공존하는
자신의 그림에서 상징을 찾지 말라고 말했던 마그리뜨의
말과는 달리 그의 그림에서는 수수께끼가 다양합니다.
그 앞에서 처음에는 당황스러워도
한참 바라보고 있으면 우리 인생에 대한 일종의
메타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루 전시를 보았다고 해서 갑자기
초현실주의 그림들이 다 이해되었다고 말할 수 없는
그림들입니다.
천천히 시간을 내어서 그림과 친해지고
그림이 제게 이야기하는 말들을 조금 더 귀기울여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