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 꽁바스
이름을 처음 듣는 화가입니다.
그래서 시립미술관 전시장에 가서 함께 이 전시도 보자는
everymonth의 반쪽이님 제안이 있을 때만 해도
그리 큰 기대가 없이 마그리뜨 전을 보러 가는 김에
함께 본다는 의미로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전시장 앞에 세워진 커다란 조각을 보자마자
생각이 달라졌지요.
마침 이 날 전시의 도슨트를 맡은 분의 해설이 좋아서
더 깊이 있게 관람을 할 수 있는 즐거움을 누렸습니다.

이 전시는 작년이 한,불 수교 120주년이라서 기획된
시리즈중에서 마지막 행사라고 하더군요.
로베르 꽁바스는 자유 구상화가라고 불리는데
20세기 후반의 미니멀리즘을 포함한 비구상회화들이
주류를 차지하던 화단에서 그것은 아니다,구상을 되살리지만
그것을 그대로가 아니라 조금 더 다른 방향으로 되살린다는
화가의 취지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1957년생인 화가는 다양한 영향을 받은 그의 화풍을
변화시켜가면서 그의 글을 독자적으로 찾아가는 것을
정말 커다란 화폭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더군요.
위의 작품은 처음 전시된 것인데요
너무 커서 어떻게 찍어야 될 지 몰라서 일부만
촬영을 한 것입니다.
3중자화상이란 이름의 이 그림은 고갱에 대한 오마주라고
이름붙일 수 있다는 도슨트의 설명처럼 고갱의
흔적을 볼 수 있지만
그것은 좀 다른 흔적이었습니다.
모방과 영향이 다른 것은 바로 그 점이 아닐까 싶네요.
골판지에 세로로 세 줄이 나 있고
왼쪽에는 말 그대로 세 번 나누어서 자화상이 그려져 있고
가운데에 있는 인물은 광고의 기법을 차용해서 그려져 있고
그 아래에는 고갱의 원시를 상징하는 그런 그림들이
있습니다.
어찌 보면 그라피티라고 할 수도 있는 그런 그림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앞에서 마음이 시원해지는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그의 조각과 그림 합해서 49점이 왔다고 하는데
그 중 한 조각입니다.
조각이라고 해야 하나,전혀 말과 닮지 않은 말위에서
서커스를 하는 것 같은 두 사람
그 앞에서 설명하는 도슨트의 말에 귀기울이는 사람들의
반응이 느껴집니다.
미술전시를 다닌 이후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그 사이에 전시장이 많은 변화가 있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사람들의 참여가 더 진지해졌다고 할까요?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다고 할까요?


글씨를 이미지로 차용해서 그린 그림들도 많더군요.
심지어는 아랍어같지만 별 의미는 없는
그래도 선의 움직임,색의 느낌이 좋아서 인상적인
작품들,일부러 잘 못 쓴 글씨를 그대로 가위표로 지우고
다시 쓴 글씨들도 그 자체가 전체 대상을 오히려
생동감있게 표현한 느낌이 들어서 좋았습니다.

이 그림속의 왕관을 쓴 남자는 화가 자신의 형이라고 하는데요
자폐증을 앓았다고 하네요.
그래서 꽃과 나무속에서 혼자 왕관을 쓴 형태로 등장한
그는 소통이 부재하는 상태속에 있는 형을 생각하면서
그린 작품이라고 하는데 도슨트 자신도
이 그림이 가장 마음속을 울리는 작품이라고 설명을 하더군요.
실제로는 정말 대형 작품인데 한 번에 들어오게 찍을 수 있는
방법을 몰라서 가장 마음을 울리는 장면만 잡아보았습니다.
사실 소통의 부재는 자폐증 환자만 경험하고 사는 것은
아니겠지요?
우리도 일상에서 정말 말이 통하지 않아서 괴로운 상황을
수시로 겪을 수 있고 그 때 우리는 어떤 심정으로
살아가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해보는 시간이 되기도 했습니다.

트로이 전쟁을 그린 장면인데요
이 그림도 역시 너무 커서 한 눈에 다 보기도 어려워서
전체를 한 번 본 다음 부분 부분을 돌아다니면서
여러 번에 걸쳐 살핀 작품입니다.
전쟁 놀이를 하면서 자란 그는 전쟁 ,그것도 고대의
전쟁을 그리는 일에 흥미를 가졌다고 하더군요.
그것만이 아니라 고대 신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고요.
그래서인지 트로이전쟁에서는 색이 화려하고
사람들이 그려진 장면이 폭력적이라기 보다는
뭔가 의식을 치루는 그런 기분이 드는 그림이었습니다.
갑자기 옛 트로이 지역에 가서 느꼈던 페허가 주는
아름다움에 사로잡혔던 시절이 그리워집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공간에서 만난 터키라니
그래서 전시장에 간다는 것은 그 전시뿐만 아니라
제 안의 기억속에 잠자고 있는 것과의 만남이 되기도
하는 귀한 시간이 되고 있습니다.


스테인드 글라스에 매력을 느꼈었던 모양이다라고
느낄 정도로 화가의 그림속에서는 그런 영향이 보입니다.
이 그림도 성화의 이미지를 느낄 수 있는
그런대도 상당히 다른 그림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실제로 록 밴드에서도 활동했다는 화가는
벨벳 언더그라운드라는 그룹을 그리기도 했더군요.

작품에 그들의 싸인이 여러 개 있어서 재미있는 느낌이라
찍어보았습니다.

실제로 전시장 배치를 화가 본인이 직접 했다고 하는데
마지막 작품도 록 밴드의 모습을 담은 것이었습니다.
마지막 작품이 아닌데도 그렇게 컨셉을 잡은 것은
우리들에게 록의 정신이 주는 해방감을 누리면서
사는 삶을 촉구하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라고
도슨트는 설명을 하더군요.
전시장에서 갑자기 마음속의 억압이 폭발하면서
발산이 되는 경험을 한 흔치 않은 날
기대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에서
이렇게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니
그것이 전시장을 찾는 일에서 얻는 또다른 선물이로구나
하면서 즐거워 한 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