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간 추운 날씨가 계속되더니 날씨가 조금 풀렸습니다.
일 년을 넘게 벼르던 곳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청게천이 열린지 얼마를 지났는데
이제야 처음부터 끝까지 걸어볼 요량으로 길을 나섰습니다.
조선일보 사옥도 보이고~
여기가 시발점입니다.
물이 솟아나오는 곳.
한강물을 끌어올려다가 다시 내려보내는 지점이지요^^
물은 솟아 나오자마자 금방 폭포져서 떨어집니다.
이렇게 낙차를 만들어주면 산소가 공급되어 더 맑은 물로 변하게되지요.
멋지게 웨이브진 물길을 조성하여 보기에도 근사하군요^^
ㅎ히히ㅣㅣ
하늘은 잔뜩 구름이 끼었고 바람은 세차게 불어도
걸어가는 발길엔 힘을 주지 않아도 저절로 걷는 경쾌한 걸음걸이가 됩니다.
그 옛날 도성에서 가장 아름답고 제일 큰 다리였다는 광통교~
수량도 많고 유속도 제법되네요.
바람이 불어 그런지 산책객들이 드문드문 보이고 생각처럼 혼잡하지 않아서 좋습니다.
이윽고 물길도 조용해지고...
건너편 圖壁이 참 예쁩니다.
디자인엔 문외한이지만 친근미가 느껴지니 좋은 것 아닙니까?
하류로 내려갈수록 다리의 모양과 벽면의 문양도 다양해지고
인적도 드문드문 조용해졌습니다.
五間水다리~
다섯개의 물구멍이 있어서 붙여진 다리~
어릴적 아버지 손을 잡고 동대문구장(옛 서울운동장)을 가려면 반드시 건너야했던 다리입니다.
다리의 옛 형태를 재현하지는 못했어도 이렇게 벽면에 타일로 도벽을 만들어 놓았군요^^*
건너편에는 오간수교의 모양을 만들어놓았구요~
세심한 배려가 맘에 들었습니다.
다리밑으로 지나오니 위의 번잡한 상가와 도로가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 좋았는데
갑자기 우리나라의 팻션계를 상징하는 동대문 상가가 나타났습니다.
그 옛날 헐벗고 굶주리던 시절..
이 곳 청계천변을 삶의 터전으로 의지하고 먹고 입고 자고 또 기지개를 켜던 모습들..
개천이 복개되기 전의 모습을 벽화로 간직하여 후세에게까지 보여줄 것입니다~
제 생각에는 당시에도 깨끗하지는 않았을 것같은 청계천의 물이지만
빨래도 했다는 걸 보면 어차피 물이 부족했던 당시이고보면 이 곳 말고는 마땅히
빨랫터를 찾을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재현해 놓은 빨랫터는 비둘기의 배설물로 더럽혀져있어 흉해요@#%^!
이렇게 걸으면서도 그 중에 애착이 가는 다리가 있습니다.
영도교~
예전 까메오가 어렸을 땐 이 다리를 영미교라고 불렀는데 서울시에서는 영도교가 맞는답니다^^
단종이 영월로 유배당하고 그의 비 정순왕후는 지금의 숭인동 동망봉 기슭으로 쫓겨나와서
염색을 업으로 연명을 했다는데 이 영도교를 건너다니면서 장사를 했다지요..
당신이야 건너다녔겠습니까? 함께했던 시종이 다녔겠지요^^
다리 위로 올라왔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혼잡하고 많은 인파의 왕래는 변함이 없군요,
이 다리를 지나면 그 유명했던 신당동 중앙시장이 나옵니다.
지금도 중앙시장이라고 하면 웬만한 서울분들은 다 알아들으시지요^^
조금만 더 내려가면 만나는 다리가 황학교입니다.
다리의 폭이 무척 넓고 청계천 다리중에 인도교에는 특이하게 창문과 지붕까지 있는 다립니다.
까메오는 이 다리를 6년간이나 건너다녔습니다^^
당시엔 도로가 흙길이어서 비만 오면 교복 바지 밑단이 온통 흙투성이로 변해서
언제나 이 길은 포장이 될까??했었고요..
한 번 들어가 봅시다~
마치 영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연상시킵니다^^
그러나 아쉬운 건 그런 로멘스(?)조차 없었던 시절의 추억이기 때문입니다~
성북천과 만나는 물길앞에서..
여기를 지나면서 부터는 수량도 조금 더 불어나고 개천의 폭도 넓어지기 시작합니다.
복구전 그 자리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수행해왔던 교각을 상징물로 남겨두는 배려도 잊지 않았습니다.
또 다시 정릉천과 합류한 개천은 더욱 더 불어나 큰 시내를 이루며 내려갑니다.
철새들도 간간이 눈에 띄며..
어쩜 요렇게 예쁠 수가~
한참을 바라보다가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내려가는 계단의 돌을 자연석처럼 다듬어놓아 발딛기에 여간 편안한 게 아닙니다.
개울 건너로 놓여진 징검다리와 맞은 편 계단의 조형미가 일품이네요.
뿐만 아니라 그 아래쪽으로 약간 턱을 지게 만든 물길로 여울을 만들었습니다.^^* 추천!
위로는 어쩔 수 없는지 고가도로가 우르릉 쿵쾅거리는 차량의 질주를 떠받치며 서있고
아래로는 넓어진 개울 둔치에 쉼터랑 운동장도 조성되어있습니다.
성급한 버들강아지는 눈을 떴는데 바람은 세차게 불어와
봄아가씨가 어디 있는지 둘러봐도 안뵙니다.
엣취~~~
때 마침 운동하던 아이들은 빠뜨린 공을 건지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아랫쪽은 아직 얼어있어 유속은 느리고 공은 제 자리를 떠날줄 모르니 더욱 안타까워하는 모습들입니다^^
곧 봄은 오겠지만 아이들에게는 벌써 찾아왔나봅니다~
찬바람을 뚫고 부지런히 걸어서 중량천과 만나는 곳을 지나 살곶이다리에 닿았습니다.
여기부터는 청계천이 아니고 중량천이 되겠군요~
이성계의 화살을 피했던 다섯째 아들 방원~
그 화살이 꽂혔다는 곳에서 명명된 살곶이다리입니다.
훗날 태종에 올라 조선을 크게 발전시킨 임금으로 기록되었으니 이 곳의 의미도 각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개천이라고 부를 수 없으리만치 넓어진 중량천 모래톱엔 수많은 오리등 각종 철새가 무리지어 앉아있습니다.
대충 보아도 원앙을 비롯해 왜가리.. 좌우간 많이 있습니다.ㅋㅋㅋ
청계천까진 바람을 뒤로하고 걸어서 추운 줄 몰랐는데
중량천을 지나면서부터 방향이 바뀌면서 바람맞이를 하며 걸었습니다.
늘 그런 것인지는 모르나 갈대가 서있는 방향을 보니 본래 그렇게 풍향이 계속되었나 봅니다.
우와 춥당~
여기까지 왔는데 그만 둘 수도 없습니다.
걷는덴 이골이 난 우리의 까메오, 내친 김에 서울숲으로 향합니다~
이윽고 한강을 만났습니다.
그 이름도 유명한 성수대교~
우하하하ㅏㅏㅏㅏㅏ~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뒤돌아보니 어느덧 해가 하류의 동호대교쪽으로 기울어져 가고있습니다.
東湖大橋~ 그러니까 동쪽에 호수가 있다는 뜻인데, 그 호수는 어디에도 보이질 않습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바로 동호대교와 성수대교 중간에 자그마한 반달 모양의 호수(라기보다는 강물이 갇힌 모양이겠지요)가 있었으나
한강개발을 하면서 이 東湖를 없애버렸습니다.
그러나 이십여년이 지나자 모래가 쌓이면서 다시 자그마한 둔덕이 생기면서 또 다른 동호가 생겨날 모양이라는군요^^
자연의 섭리를 거스릴 수는 없는 이치가 여기에도 있습니다^^
저무는 해를 등지고 서울숲으로 들어갑니다~
첫 선을 보는 노총각의 심정으로..
처음으로 선을 보여주는 건 사슴의 무리~
한가롭게 풀을 뜯고 물마시며 쉼터에 몸을 의지하고 있습니다...
숲은 숲이고 숲일뿐인지 탐방객은 거의 눈에 띄지않고 을씨년스런 분위기에 압도돼 버립니다.
해질 녘이기 때문이리라 생각하며 한 바퀴도는데 어디가 어딘지....
이 곳 저 곳 둘러볼 겨를도 없이 해는 제 갈 길로 기울어 가는데
마침 눈에 띄는 건 자작나무 울타리~
둥그렇게 심어놓은 자작나무가 까메오의 발길을 붙잡았습니다.
이제는 서울에서도 심심치 않게 보이는 대나무~
그 옛날 어린시절 어머니랑 누나들을 따라서 나들이 왔던 뚝섬.
여름이면 수많은 인파속에서 개헤엄을 치면 수박이랑 김밥이랑 맛나게 먹고 즐기던 곳.
귀가 아프도록 시끄럽게 울던 매미소리를 들으면서 엄마 무릎을 베고 잠들던 곳~
세월이 지나 친구들과 함께 경마장을 찾았던 이 곳 뚝섬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고
그 흔적이라도 보존한 양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하는 기수의 역동적인 모습을 뒤로하고 긴 걸음을 끝냈습니다.
다가올 새 봄을 기다리면서...
*들으시는 곡은 Lou Sern이 부른 Swiss bo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