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름을 쓰고 나니 불어를 몰랐을 때
이 화가의 이름을 읽느라 낑낑대면서 두챔프가 뭔가
혼자 이상하게 생각햇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나중에야 그 이름을 뒤샹이라고 읽는다는 것을 알고
혼자서 막 웃었습니다.
마르셀 뒤샹
그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변기를 작품으로 내놓았던
바로 그 사람이라면 아하 하고 고개를 끄덕일 사람이지요.
피카소나 마티스보다도 더 현대미술에 영향을 끼친 사람
그래서 현대미술에서 그를 피해 갈 수 없다는 뒤샹은
사실 안티 미술이란 개념을 내세운 사람이기도 합니다.
지금 제가 읽고 있는 책이 알파벳 순서로 배열되어 있어서
시대순으로 되어 있지 않아 지그재그로 화가를 보는 것이
처음 보는 사람들에겐 조금 불편할 수 있겠지만
저는 이 방식도 재미있다고 느끼면서 보고 있는 중이랍니다.

한 시대의 획을 긋는 미술사의 개념을 만든 사람이라 해도
누구에게나 그것을 만들기 이전의 습작기가 있겠지요.
우리는 주로 한 화가의대표작 중심으로 소개받기 때문에
전체적인 조망을 하기 어려운 구조로 독서를 하는구나
하는 것을 마네의 손과 모네의 눈을 읽으면서 깨달았습니다.
물론 그것을 느끼고는 있었으나
아주 중요한 화가들을 제외하곤 전체적으로 한 화가를
제대로 다루는 책이 번역되지 않아서
그런 책읽기가 어려웠었는데 이제는 그런 접근이 가능하구나
싶으니 상당히 즐거운 기대감이 생겼습니다.
뒤샹에 관한 것을 김광우님이 쓴 글이 있다고 하니
한 번 구해서 읽어보아야지 마음속에 기억을 해두고 있는
중이지요.

둘 다 1909년의 드로잉이네요.

1911년의 풍경화입니다.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누가 그 이후의 뒤샹을 상상할 수나
있을까요?

이 작품의 제목은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입니다.
누가 이 작품을 보고 제목이 없다면 형태를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요?
미국에서 1913년에 아모리쇼가 열립니다.
유럽화단의 작품을 전시한 이 전시회가 미국의 화단에는
충격을 주어서 미국화가들에게 미술에 대해서 다시
생각할 기회를 주었다고 하더군요.
이 작품의 충격은 화가에게는 물론 일반인들에겐 더
심했겠지요?
이 그림의 탁월함은 보는 사람들에게 이미지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다시 생각해보게 만들고 거기서 더 나가서
몸과 동작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점검하게 만드는 점이라고
웬디수녀는 작품해설에서 설명을 하고 있네요.

Gallery label text
Dada, June 18–September 11, 2006
Although Duchamp had collected manufactured objects in his studio in Paris, it was not until he came to New York that he identified them as a category of art, giving the English name "Readymade" to any object purchased "as a sculpture already made." When he modified these objects, for example by mounting a bicycle wheel on a kitchen stool, he called them "Assisted Readymades." Duchamp later recalled that the original Bicycle Wheel was created as a "distraction": "I enjoyed looking at it, just as I enjoy looking at the flames dancing in a fireplace."
Publication excerpt
The Museum of Modern Art, MoMA Highlights, New York: The Museum of Modern Art, revised 2004, originally published 1999, p. 87
Bicycle Wheel is Duchamp's first Readymade, a class of artworks that raised fundamental questions about artmaking and, in fact, about art's very definition. This example is actually an "assisted Readymade": a common object (a bicycle wheel) slightly altered, in this case by being mounted upside-down on another common object (a kitchen stool). Duchamp was not the first to kidnap everyday stuff for art; the Cubists had done so in collages, which, however, required aesthetic judgment in the shaping and placing of materials. The Readymade, on the other hand, implied that the production of art need be no more than a matter of selection—of choosing a preexisting object. In radically subverting earlier assumptions about what the artmaking process entailed, this idea had enormous influence on later artists, particularly after the broader dissemination of Duchamp's thought in the 1950s and 1960s.
The components of Bicycle Wheel, being mass-produced, are anonymous, identical or similar to countless others. In addition, the fact that this version of the piece is not the original seems inconsequential, at least in terms of visual experience. (Having lost the original Bicycle Wheel, Duchamp simply remade it almost four decades later.) Duchamp claimed to like the work's appearance, "to feel that the wheel turning was very soothing." Even now, Bicycle Wheel retains an absurdist visual surprise. Its greatest power, however, is as a conceptual proposition.
입체파 화가들도 물론 콜라쥬의 형태로
일반적인 물체를 부착시키긴 했으나
그들은 전체적인 균형이나 미술적인 감각에 대해서 고려한
반면 뒤샹은 그것을 무시한 점이 달랐다고
그래서 이 작품부터를 시발로
미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논의가 무성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그림과는 상관없는 이야기이지만
오늘 서양사 시간에 읽은 헤이스팅스 재판에 관한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군요.
그는 인도에 동인도회사 직원으로 갔다가
그곳에서 그의 능력을 인정받아 나중에는
회사체제에서 벗어나 나라가 인도를 지배하게 된 영국의
벵골 총독으로 일한 사람입니다.
그가 인도에서 행한 정책에 대한 의문으로
(그는 인도사람들의 관습을 살리는 방향으로 정책을
진행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지요)
에드먼드 버크에 의해 고발당해 오랫동안
재판정에 섰다가 나중에는 무죄로 밝혀진 사람인데요
그 사람 개인이 아니라
제국이 식민지를 다스리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의 우리를 돌아볼 수 있는
반면교사가 되는 점이 있어서 생각을 자꾸 하게 되네요.

우리가 말하는 정체성이란 우리를 다른 사람의 거울에 비추어
보게 되는 닮음과 다름에서 생겨나는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나를 비추는 거울이 무엇인가
우리를 비추는 거울이 무엇인가에 따라서
우리의 정체성은 어떻게 규정되는가 하는 문제가
상당히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게 되지요.
덕분에 이번 주에 인도역사를 다시 읽어보게 되었고
그 전에 그냥 넘어갔던 문제들을 다시 되짚어 볼 기회가
되기도 했습니다.

고등학생 시절을 마감하고 대학이란 더 큰 곳으로 나가는
보람이에게도 이야기를 많이 하고 싶어요.
타인의 시선으로 너를 재단하고
열등감을 느끼고 남에게 자신을 맞추려고 하지 말고
무엇이 진짜 너인가,무엇이 좀 더 사람답게 사는 것인가를
정말로 고민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고요.
아직은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어렵겠지만
그래도 자꾸 이야기하다보면 서로 스며들면서
변하는 부분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박혜정씨가 들고와서 읽어준 거짓말이란 제목의 책에서
만난 이야기가 참 인상적이었지요.
제 차례가 온 거짓말
오늘은 그 책의 저자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로
오늘의 빵을 만나게 될 것 같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