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껴서 보고 싶은 책,책장을 덮기가 아쉬운 책을 만나는
즐거움을 누린 날이었습니다.
마네의 손,모네의 눈
같은 저자의 책을 한 권씩 한 권씩 사기도 하고
빌리기도 하면서 일년 내내 읽게 될 것 같은
강한 예감을 느낀 날이기도 했고요.
모네가 마지막 수련연작들을 오랑제리 뮤지움에 기증하게
되는 사연과 더불어
그의 이야기는 끝이 났지만
책속에서 본 그림들의 인상이 머리에 박혀서
일요일 밤 집에 들어오니 다른 일을 선뜻 하지 못하겠네요.
오랑제리
보람이가 초등학교 일학년 들어가기 직전의 이월에
당시 프랑스에서 유학하고 있던 막내동생이
언니,내가 있는 동안에 오면 아무래도 다니기가 편할 테니
이번에 한 번 올래? 하고 권유하는 말에 마음이 동해서
난생 처음 해외여행을 떠났습니다.
친구와 친구 아들,그리고 보람이랑
이렇게 넷이 간 여행에서
정말 많은 것을 보았지만 그 때만 해도
역사나 미술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던 시절이라
나중에는 멀미가 날 것 같더군요.
모른다는 것이 주는 충격,낯선 것에서 오는 이질감
그래도 오르세 미술관에 가니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고 오랑제리 미술관에 가서는
바닥에 주저앉아서 수련 그림을 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습니다.
비행기타고 런던까지 가야하므로 짐이 될 것을 알면서도
당시 통에 넣어주는 수련 포스터를 오랑제리에서 한 장
구했습니다.
그리곤 집에 돌아와서 프레임을 해서 걸어두고
매일 바라보았지요.
상당히 큰 그림이라 오래 지나니 프레임이 휘어져서
다시 해야 하는 상황에서 고민하다가
그래도 제가 그림과 맺은 첫 인연이라 아쉬워서
다시 프레임을 한 작품이기도 하지요.
아마 동생은 모를 겁니다.
그 여행이 제 인생에 얼마나 큰 turning point가 되었는 줄을
그러니 사람이 뿌리는 씨앗은 거두는 사람이 따로 있을
경우가 많고 그것이 어디서 어떻게 열매 맺게 될 지
모른다는 것이 묘미가 아닌가 싶네요.
그 때부터 닥치는 대로 그림에 관한 책을 읽었습니다.
모르는 것은 모르는채로 건너뛰고
다시 읽다보면 어라,이제는 조금 더 선명하게 보이네
하고 감탄하면서 십년 이상 그림에 관한 책을 읽고
실제로 전시장에도 다니는 동안
참 행복한 시간을 보냈지요.
그것이 제 삶에 얼마나 윤기를 더해주었나 생각하면
정말 고맙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군요.
책읽기를 마치는 기념으로 모네의 후반기 그림들을
살펴보고 있는 중입니다.
씨를 뿌리는 줄도 모르고 뿌려준 사람들이 많이 있지요.
제 인생에서.
현대미술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해 준 사람
일본통인 사람을 우연히 만나서 그녀와 함께 여행을 가고
덕분에 일본어(까맣게 잊고 있던 기억을 살려) 를 다시
하게 되고 한 나라에 관한 관심,그것에서 더 나아가
동양 3국을 연결하여 공부를 하게 된 것
낯모르는 사람들을 인터넷을 통해 만나 공부도 하고
여행도 할 수 있는 힘이 생기도록 도와준 사람들
난생 처음으로 사진도 배우게 되었고
그것이 이제는 뗄 수 없는 인연으로 제 생활속으로 들어왔지요
우물안 개구리에서 조금 시야를 넓혀 세상을 바라보는
힘을 기르게 도운 사람들
오늘 밤 갑자기 그런 고마운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깊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받았듯이 저도 잘 모르는 그림에 관한 이야기를
그림을 좋아한다는 애정하나로 그 날 그 날의 하루 이야기와
곁들여 글을 쓰다보니 덕분에 그림을 좋아하게 되었다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전해주는 글을 받는 즐거움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런 인연으로 실제로 만나서 공부를 하기도 하고
함께 전시장에 다니는 사람들도 생겼고요.
생각해보면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닌가요?
몇 년 전의 일입니다.
제가 가르치던 학생의 어머니가 (직장일로) 미국에
출장을 다녀오는 길에 책읽기 좋아하는 줄 알고서
구해다 주신 책이 the history of arab peoples였습니다.
고맙게 받긴 했으나 그 당시는 아랍민족의 역사에 까지
관심이 있던 상황이 아니라서 예의상 조금 읽다가
책장 한 구석에 밀어놓고 언젠가 읽을 기회가 오려나
아니면 그냥 저렇게 사물로 존재하고 말 것인가
마음 한구석이 찜찜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요즘 a history of god을 읽다가 이슬람에 대해
읽을 기회가 생기자 그 책이 생각나서
다시 읽기 시작했지요.
그 때는 왜 그렇게 그 책이 지루했을까
다시 불붙은 관심으로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해보게 되네요.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 책읽기란 그런 것이구나..
그런 책중에 다른 한권은 동인도 회사란 제목의 책인데요
그 책도 이름에 혹해서 (역사책에 자주 등장하는 이름이라)
사서는 다 못 읽고 말았던 책인데
요즘 읽는 서양사 깊이 읽기에서 그 부분과 연관해서
읽을 수 있는 글이 나오자
갑자기 동인도 회사가 소설처럼 읽히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요즘 스터디의 위력을 실감하고 있는 중이지요.
혼자서도 잘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밖에서 들어오는 에너지에
의존하지 않고도 잘 진행이 되지만
그런 힘이 부족한 경우 밖에서 들어오는 에너지가 우리를
앞으로 나가게 하는 힘이 된다는 것을
종교를 제대로 알게 되면 다른 종교로 개종하라고 권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믿고 있는 종교를 좀 더 제대로 믿을 수 있게
돕는 것이 진짜 선교라는 말이 있더군요.
그것과는 다른 차원이지만 그림에 관해서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자신이 알고 있다고 믿는 그림에 대해서 조금 더 마음을
열고 매번 그 안에서 새롭게 느끼고 바라보게 되는 것이
그림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느끼는 행복이 아닐까
하고요.
오늘 도서관에서 오래 전 사람들과 스터디 하면서
읽었던 타쉔 출판사의 마네를 다시 꺼내서 읽었습니다.
그 때는 영어가 참 까다롭구나,프랑스 사람의 글을 번역해서
그런가,아니면 원래 저자의 글이 이렇게 어려워서 그런가
하면서 머리를 쥐어짜면서 번역하며 읽었던 글
그 책이 마네의 손,모네의 눈에서 두 화가의 일대기를
아주 자세히 읽고 나서 다시 읽은 덕분인지
지난 번보다 술술 잘 읽히고 모르던 부분도 많이 이해가 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어렸을 때 지루하던 바하가 지금은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중의
한 명이 되었듯이 언젠가 머리에 쥐가 난다고 하면서
읽었던 책이 머리에 가슴에 물처럼 스며드는 경험을 한 날
책속에서 만난 물의 라파엘로라는 말이 마음에 와 닿아서
오늘 글의 제목을 물의 라파엘로라고 적어보았습니다.
한 권의 책읽기가 제게 준 행복을 만끽한 날
기쁨을 더불어 누리고 싶어서 찾아 올린 모네 그림들
마음에 드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