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가뭄에 지친 서울 사람들에게 반가운 기상청 예보가 있었습니다.
내일 제법 많은 양의 눈이 내린다는...
신바람이 난 까메오.
저녁 늦께까지 배낭을 꾸리는데 콧노래도 절로 흘러나오고 엔돌핀이 팍팍 솟아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열흘간 기침감기로 고생을 하여 산행을 못한데다가
눈까지 내린다니 생각만해도 어깨가 으쓱해집니다^^
북한산성 입구를 벗어나 늘 다니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솔잎이 낙엽이 되어 쌓인 푹신한 길...
향기는 없어도 참으로 아늑한 고요속으로 빠져들어가며 행복을 만끽합니다.
저만의 자유를 찾아서~
하늘을 보니 해가 옅은 빛깔로 내리 쬐는데 과연 눈이 내릴른지..
원효봉 중턱에서 덕암사로 빠져 가려다가 마음을 고쳐먹고 원효봉으로 오르는 도중에 만난 시구문.
문의 이름도 참 거시기하게 소름끼칩니다~
屍口門이라니?
옛 사람들은 가리는 것도 많아서 시체를 부정하다고 생각하여
산 사람과 죽은 이가 드나드는 문도 따로 만들었습니다.
그래도 죽은 이를 위해 만든 문치고는 아취형의 아담한 것이 공은 많이 들였어요^^
지난 해까지만 입장료를 받았는데 아직도 한 아자씨께서 지키고 있길래 말을 붙여봅니다.
"아니~ 웬일로 나와계십니까?"
"네에~ 이 달말까지는 나오라는군요. 글쎄.."
손톱을 계속 깎으면서 대답을 하십니다^^
"그럼 젊은 친구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늘 오가며 만나는 젊은 이들이 염려되어 물어보니,
"젊은 친구들은 그냥 붙어있구요 늙은 이들은 다 나가라네요~"
껄껄 웃으시며 하시는 말을 뒤로 하고 계속 오릅니다.
원효봉은 계곡으로부터 릿지를 타고 오르기는 했지만 이렇게 등산로를 이용하기는
한 2년은 넘은 것같습니다.
가파르기도 하거니와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는 계단으로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웬만큼 올랐습니다.
맞은 편의 의상봉이 바위틈으로 바로 앞에 보이고 잔설도 희끗희끗 보입니다.
시원한 바람을 맞고 기침 몇 번으로 감기를 완전히 날려버립니다~
감기대장 까메오에게 산은 보약인가봅니다^^
드뎌 원효봉에 도착했습니다~
근데... 눈은 커녕 햇빛만 잘도 내리쬡니다.
이러다가는 일기예보가 맞는다해도 오후 늦게에나 오겠는걸...
내심 바람만 맞겠다는 생각에 걸음을 라르고로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혹시라도 늦은 산행이라도 된다면 어렵겠지만,
랜턴까지 준비했는데 무슨 걱정이겠냐 싶었지요.
북문의 모습은 언제나 봐도 예쁜 색시같은 모습입니다^^
여름내 안간힘을 쓰면서 기어오르던 담쟁이덩쿨도 이파리를 다 떨구어내어 실핏줄처럼
간신히 찬 바람을 피해가며 석문에 바짝 붙어있습니다.
이제 다시 내려가야합니다.
시간을 소비해야만합니다,
한참을 내려와서야 백운봉으로 올라가는 삼거리에 도달했습니다.
이정표 옆에 앉아있는 조그마한 바위의 모습이 신기합니다.
화강암속에 마치 고대 철갑옷 모양의 다른 석질의 돌조각이 촘촘히 박혀있어
나름대로 귀여워 늘 한 번씩 만져주고 지나가는 바위~
계속해서 더 내려가야 다시 올라가야할 길이 있습니다.
오늘은 기필코 님을 만나야만 합니다~
님께서 반드시 오신다는 기별이 왔으니까요^^*
중성문을 지나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는데 지금 시각은 두시~
어구.. 슬슬 배도 고파오고 맥도 빠지는데 하늘은 여태 소식도 없이 환하기만 하니
이거야 원~~~
까메오가 가장 사랑하며 즐겨 오르는 행궁지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이 건 또 뭔가요???
참나무가 베어져 있는데 가운데 구멍이 뻥~뚫려있네요@.@~
광릉긴나무좀이라는 벌레가 파먹어 들어가 고사된 참나무를 일부러 베어버린 것이 분명합니다.
저런.........
더 확산되기 전에 빨리 조치를 취해야겠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을 뒤로 한체 발걸음은 라르고~~~
올 적마다 언제나 반겨주듯 귀여운 모습의 석물이 있는 곳~
행궁지...
등산객이 별로 다니지 않아 호젓할뿐만 아니라 아늑하여 쉬어가기엔 안성맞춤인 곳.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이궁시에 사용하려 지었던 행궁지에 남은 것이라곤 석축과 석물 몇점뿐...
그래도 남한산성과 같이 사용되지 않은 것이 참으로 다행스럽습니다^^
삼각산에서 몇 개 되지 않는 샘터입니다.
바가지는 얼음속에 갇힌지 오래이지만 샘물은 졸졸 소리없이 솟아나옵니다.
찬 기운이 돌지만 한 컵 받아서 꿀꺽꿀꺽~~~
감기 뒤끝이라지만 소양인인 우리의 까메오는 한 겨울에도 찬물만 마십니다 그려^^
남장대지에 올라 동쪽의 삼각산 백운봉으로부터 남쪽 성벽능선을 거쳐
대남문과 문수봉까지의 모습입니다.
역시 남장대지에서 북쪽을 향하여 백운봉과 원효봉을 거쳐
의상릿지를 바라본 정경입니다.
대남문에 당도하도록 기다리는 님은 아니오고,
지금 시각은 4시..
문밑에 쪼그려 앉아 점심을 먹으며 하늘을 올려다 보니 점점 어두워지네요^.^*
갑자기 찬 바람도 불어 손과 발이 시려옵니다.
그래도 오늘은 라르고입니다.
작년 이맘때 눈길에 미끄러져 꽁지뼈가 골절되었는데도 아직도 정신 못차리고
아이젠을 착용치 않고 또 다시 눈길을 그냥 내려옵니다.
제 아무리 용빼는 재주가 있겠습니까?
두어 번 자빠지고 넘어지고...
암튼 웃기지도 않는 잉간입니다^^*
제 딴에는 라르고니까...
스톡을 의지했으니까...
그럭저럭 내려오다보니 참말로 눈발이 송이송이 내립니다~.~
이 눈을 맞이하기 위해 어제부터 지금까지 준비하고 기다리며 온 산을 헤메고 다녔습니다.
아무도 없는 늦은 산길을 홀로 걷습니다.
펑펑 쏟아지는 눈길 속에 산이 걷는지 내가 걷는지..
눈이 나를 맞는지 내가 눈을 맞는지..
눈이란 참 신기하다못해 신비롭기까지합니다.
한 겨울 우리에게 내려주는 하늘의 축복인양 흡족하게 그 양은 많지 않았어도
까메오가 내리는 눈을 만나러 이렇게 친히 마중나간 날이었지요.
먼 데서 오는 사랑하는 님이 늦게 도착하여 만난 것만큼이나 더욱 반갑고 행복한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