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수업을 하는 중 도서관 데스크를 오전중에 담당하고
있는 분이 저를 부릅니다.
선생님,보람이 전화예요.
새벽에 나가면서 담임선생님에게 승태의 시험 결과를 알아보고
전화해주겠다고 하고 나간 아이가 벌써 결과를 알았나
궁금한 마음으로 전화를 받으니
오늘 모의고사 보는 아이가 동생때문에 많이 흥분한
목소리로 말을 합니다.
엄마 오후 3시까지는 비밀이니까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엄마만 알고 있어야 되는데 승태 합격했대.
그리고 아직 과는 모르나봐.
보람아 고맙긴 한데 너 지금 모의고사 보는 중 아니니?
그런데 지금 쉬는 시간이야
그래,알았어 남은 시험 차분하게 보거라 하면서
수화기를 놓았습니다.
수업시간에 도로 들어가서 소식을 알리니
함께 하던 사람들이 기쁜 마음으로 축하를 해주네요.
그래서 오늘 사실은 수업끝나고 그림그리러 가야 하는 날인데
순대로 점심 함께 하자고 집으로 우리 모두를 초대한
박혜정씨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하고
마치 학교 빠지고 마음 불편하지만 동시에 해방감을 느끼는
악동처럼 그냥 그렇게 신우아파트로 놀러갔습니다.
위 아래층으로 살고 있는 신혜정씨의 음식솜씨가 가세되어
입도 마음도 즐거운 점심시간을 보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만 해도 빠르게 돌아가는 머리로
여러 사람들의 기대를 모았던 아들이
중학생이 되면서 마치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공처럼
행동하면서 그런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와
참으로 많은 갈등을 빚게 되었지요.
첫 아이의 사춘기때에도 일년에 서너 차례
정말 대성통곡을 하면서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둘째 아이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엄마란 자리가 사표를 낼 수 있는 자리라면
그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에 힘이 들 때도 많았지요.
그러다가 에니어그램을 통해서 그 아이들과 제가 얼마나
다른 유형의 사람들인가를 알고 나자
조금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누가 옳고 그른가가 아니라 다른 것이 문제로구나
다른 기질의 아이를 내 식으로 재단하고
마음 아파하고 혼내기도 하니
아이도 집이 숨막힐 수 있겠구나 그렇게 수긍을 하게
되었지만 이론과 실제의 거리는 얼마나 먼 지
아마 경험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을 것 같네요.

중학교 때의 내신성적이 계속 내려가서
마지막 성적표가 나오고 보니 시험 볼 학교 지망할 경우
거의 20점을 깍이고 시험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아이가 성적표를 보면서 말을 하더군요.
엄마,나 이렇게 놀 때 왜 그냥 두었어?
유구무언이란 문자는 그런 때 쓰라고 있는 모양인가
웃고 말았지만 그렇다고 태도가 금방 바뀌는 것은 아니지요.
이런 상황을 아는 주변 사람들은
아들이 시험에 붙으면 여러 사람에게 희망이 되는 셈이니
응원을 하겠다고 해서 웃기도 했습니다.


아들의 사춘기를 함께 겪으면서 배운 한 가지
아무리 부모가 원해도 아이가 마음속 깊이 원하지 않는 일은
밖에서 밀어도 한계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 내가 바라는 것을 놓아버리게 되더군요,
완전히 놓았는가 하고 물으면 사실 그렇다고 대답할 수는
없겠지요?
지금도 합격 소식을 받고 나니
3월이 되기 전에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겠다는 제 나름의
계획이 서지만 그것을 한 번 마음에서 접습니다.
그것은 그야말로 제 청사진에 불과하니까요.
언제나 웃으면서 옛 일을 추억하는 날이 올까요?

사실은 더 큰 시험이 남아 있지만
그래도 보람이는 완전히 마음에 들게는 아니라 해도
자신이 알아서 스스로 해나가고 있는 상황이라
마음이 그렇게 힘이 들지는 않습니다.
사춘기의 열병을 앓던 때에 비하면 지금 그 아이가 하는
행동 하나 하나가 얼마나 감사한지요,
그런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으니
인삼,홍삼보다 위라는 고3을 참 수월하게 넘기고 있어서
제가 금요일마다 나들이하는 것도 마음의 부담이 덜하게
다닐 수 있었습니다.
참 감사하다 하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네요.
아마 그래서 대학입시의 경우에는 어떤 결과라도
제가 정말 고마운 마음으로 수용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멀리서 가까이서
아이를 위해서 기도해주신 분들
함께 걱정하고 고민해주신 분들
합격소식에 기쁨을 함께 해주신 분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순탄한 과정으로 온 결과라면 이렇게 기쁠 수 있을까
그래서 고통뒤의 열매가 더 달다고 하는 것인가
혼자서 고개 끄덕이면서 함께 한 화가는
칸디스키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