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줌인줌아웃

생활속의 명장면, 생활속의 즐거움

망했어와 엄청 망했어 사이에서

| 조회수 : 2,186 | 추천수 : 17
작성일 : 2006-11-01 00:14:09


   오늘 일교시 시험을 보곤 졸라 쉬웠다고 전화를 건 아이

그래서 침착하게 나머지 시험도 잘 보라고 전하곤

잠이 들었는데 그 다음엔 무소식입니다.

낮에 집에 들어오니

영화를 다운받아서 보고 있다가 아이가 말을 하네요.

망했어

그 한마디만 내놓곤 일체 다른 코멘트가 없습니다.

오후에 도서관에 가보니 오늘 시험 본 아이들의 반응이

거의 비슷합니다.

망했다와 엄청 망했다의 어감 차이는 아이들이 느끼는

반응을 반영하는 것이겠지요?

결과가 나오기까지 신나게 놀테니 아무 말도 말라고

마치 선언하듯이 이야기한 아들은

오늘 시험본 친구들과 함께 찜질방에 간다고 합니다.

그런 장소에 가지 않는 저로선 참 난감하더군요.

그래도 너무 늦지 말고 오라고 하니

그 곳에서 자고 내일 아침에 오겠다고 합니다.

내일 아침?

학교는?

마침 내일이 개교기념일이라고요

가능한 일찍 들어오라고 당부를 했는데

밤에 들어오니 이미 나가고 없습니다.

시험 결과가 문제가 아니라

고등학생이 되는 내년 3월까지의 시간을 어떻게 쓰는가가

문제로군 하는 걱정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밤이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서 마음을 비우고

음악을 켜놓고선 (장한나의 연주는 찾지 못했으나

오늘 쇼스타코비치의 첼로곡을 인터넷상에서 찾았거든요)

아직도 더 보고 싶은 모네를 보고 있는 중입니다.







아이들을 키우는 것은 내 안의 모순을 바라보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실감하는 날들이 되고 있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서 내가 생각한 나와 실제의 나의 거리를

눈으로 똑똑히 보게 되는 경우도 생기더군요.




민사고를 준비하다가 역량이 조금 모자라다 싶어서

일반외고 특차에 지원한 아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만 그 시험에서 불합격하게 되자

평소에도 별로 다정하지 않았던 아버지가

그 일로 인해 아이의 심정을 말로 많이 상하게 한 모양이더군요.

그런데 오늘 시험에서 또 생각처럼 잘 풀리지 않은 아이가

만약 떨어지면 죽고 싶다고 했다는 말을 듣곤

그 아이만은 제발 하는 심정이 되는 밤이기도 합니다.



부모가 자기도 모르게 아이들에게 주는 상처

그 상처가 건강한 에너지로 전환될 수 있다면

그래도 다행이지만 대부분의 경우

부정적인 에너지가 되어서 아이의 성장에 발목을 잡는

경우가 많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가장 가까운 가족이 가장 큰  장애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때도 있습니다.




그 아이의 격렬한 반응에 놀라서

저도 다시 생각을 해보게 되네요.

하기 싫은 공부를 그저 외고 시험 보겠다는 결심으로

그렇게 오랜 세월 늦은 시간까지 매여 있었던 아들에게

그 자체만으로도 고마웠다고

결과에 상관없이 진심으로 말할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밤이기도 합니다.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준&민
    '06.11.1 1:03 PM

    오늘은 반성하는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언제나 공부를 하게 되네요

  • 2. 노니
    '06.11.1 7:59 PM

    말로 상처를 주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

    자식을 보면 내모습을 보는것 같아 더욱 싫어 질때가 있어요.

    참 어려워요 아이들을 키운다는것이..

  • 3. 예진모친
    '06.11.2 10:05 AM

    저는 아직 유아를 키우고 있는지라..
    자세히는 모르지만..님의 글에 저도 괜시리
    반성하게되나봅니다..
    좋은 엄마신거 같네요..^^

  • 4. 착한신부
    '06.11.3 7:45 PM

    어느 선까지 이해하고 인정해야 할까요?
    생각지도 못했던 일로 당황을 시킵니다.
    자신이 어른인줄 착각하나 봅니다.
    이제 고1인데 갓 대학입학한 새내기 기분을 냅니다.
    당황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나봅니다.
    어제는 새로운 사건으로 긴장감을 높여 주었어요.
    어찌 대처하고 훈육해야 할지 나날이 난감해 집니다.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추천
6331 떠나는 가을을 붙잡아 봅니다. 6 시골아낙 2006.11.04 1,692 46
6330 11월 달력~~좀 늦었네요^^;;; 3 안나돌리 2006.11.04 1,285 31
6329 우리 세현이♡ 예요~ 1 정성들이 2006.11.04 1,301 13
6328 프라도 미술관 도록에서 만난 라파엘로 intotheself 2006.11.04 1,484 54
6327 리움미술관에서 만난 귀한 그림들 intotheself 2006.11.04 1,724 72
6326 이 순간의 걱정! 5 이음전 2006.11.03 1,815 87
6325 늦둥이 이쁜딸.. 4 나혜옥 2006.11.03 1,752 9
6324 <산행후기> 우리의 가을이야기 8 안나돌리 2006.11.03 1,356 19
6323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보낸 날 8 intotheself 2006.11.03 1,833 77
6322 산세베리아에 핀 꽃이에요. 16 란비마마 2006.10.31 3,915 66
6321 망했어와 엄청 망했어 사이에서 4 intotheself 2006.11.01 2,186 17
6320 늦둥이 이쁜딸 9 나혜옥 2006.10.31 2,418 10
6319 <공지> 제11차 아네모 디카배우기 모임입니다. 1 안나돌리 2006.10.31 997 32
6318 저도 이런 모습으로 남고 싶습니다. 1 안나돌리 2006.10.31 1,719 30
6317 또랑에서의 단상 3 이음전 2006.10.31 1,437 73
6316 아름다운 우리집 화단 7 가을여자 2006.10.31 2,019 12
6315 교회의 새단장... 2 강정민 2006.10.31 1,262 8
6314 열흘된 조카예요.^^ 21 핑크하트 2006.10.31 2,112 17
6313 마지막 단풍을 찾아서~ 7 밤과꿈 2006.10.31 1,319 12
6312 포항-수원 축구경기에서 김수열 2006.10.31 938 27
6311 카운트 다운은 끝나고 1 intotheself 2006.10.31 980 26
6310 한밤에 듣는 연주 4 intotheself 2006.10.31 1,295 77
6309 오랜만에 보는 이 녀석 7 여진이 아빠 2006.10.30 2,368 70
6308 들길을 걸었다. 1 이음전 2006.10.30 1,206 66
6307 수류탄 고기잡이 1 볍氏 2006.10.30 1,184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