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로 긴 연휴가 끝나고 (이번 연휴기간에는 짬짬이
실컷 영화를 보았습니다. 그것도 영화관에서요
어느 날은 시간을 잘 짜서 일산에서 한 편
그리고 서울에서 한 편 그렇게 본 날도 있었지요.
렘브란트, 라디오 스타,금발의 초원, 귀향,
델러웨이 부인만 어디서 하는지 찾을 수 없어서 못 보고
말았네요.
그리고 어제의 춘천 나들이까지 정말 즐거운 연휴였습니다.
귀향을 보러 간 날 그 옆의 북스탠에 들른 것이 실수?였지요.
볼만한 책이 별로 없지만 할인율은 높은 그런 책방인데
그래도 무슨 책이 있나 궁금해서 들렀는데
5만원이상 구입하면 유네스코 문화유산을 보여주는 잘 만든
책 한 권을 무료로 준다고 유혹하네요.
그 책을 들추어 보지 않았더라면 좋았으련만
이미 안을 보자 그동안 궁금했으나 찾을 수 없는 도판들이
들어있네요.
어찌 하나 고민하다가 서점을 다 둘러보고 평소에 망서리고 있던 책을 몇 권 구입했습니다.
권수가 몇 권 되니 들고 올 수 없어서 택배를 부탁하고
돌아오면서 사람마다 못 말리는 구석이 한 두 가지는 있는데
제겐 그것이 책과 음반구입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을
느끼게 되네요.
그래도 비싼 옷 사입는 것에 비하면 약과지 하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돌아왔습니다.
그 사고?만 빼면 참 즐거운 휴가를 보내고
오늘 도서관에 나가는 길, 오랫만에 아이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
그것도 역시 즐거운 일입니다.
다른 때보다 조금 일찍 가서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청소를 하면서 집에서 챙겨간 일본어 테이프를 하나
넣고 들었습니다.
미리 집에서 교재를 서너 번 읽고 간 상태라
귀에 잘 들어오네요.
아주 오래전 일본어배우는 일에 매진하던 시간이 떠오르면서
거의 다 잊었다고 생각한 말들이 다시 기억나는 것이
신기합니다.
그러니 한 번 입력된 것은 아주 완전히 잊는 것은 가능하지 않은 것이로구나 ,그래서 오래전의 끈으로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연말에 혹시 일본여행을 할 수 있을 기회가 되면
좀 더 창조적인 여행을 하고 싶어서
도서관에 있는 일본관련 책을 뒤적여서 쌓아놓고
시간 날때마다 읽어보느라 하루가 다 가버렸습니다.
어린이용 책에서부터 시작하여 여러 권의 책을 차례로
조몬시대,야요이시대,야마토국시대,
그리고 그 시기를 거쳐 소가씨 가문이 쇼토쿠 태자를 내세워
불교를 받아들이는 이야기등을 차례로 읽다보니
오래 전 일본사를 처음 공부하기 시작했을 때
공연히 일본사람들의 이름은 잘 들어오지 않는 것같아서
신결이 쓰이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어떤 나라에 대한 호,불호가 이름을 기억하는 일에도
선택적으로 작용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중간 중간에 머리를 쉬느라
매일 조금씩 읽고 있는 책을 손에 들었지요.

이 글에서 9.11 테러 당시에 소방관이었던 사람의 이야기가
소개되네요.
그는 그 현장에서 살아남았지만 마음속의 상처가 커서
고민하다가 소방관을 그만두고 플로리다로 내려와서
등대지기가 되었다고 하네요.
자신의 주변에서 무엇을 발견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
자신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세상이므로
어떤 눈으로 주변을 보는가 행복이 행복을 찾는다는
제목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이 사람을 빗대어서 하고
있는 장이었습니다.

언젠가 비디오로 출시된 실화를 배경으로 한 영화
캘린더 걸을 본 적이 있습니다.
백혈병을 앓는 같은 지역사람들을 돕기 위해
주민들이 달력을 만드는데 자신의 몸을 보여주는 것으로
결정하고 달력을 만드는 과정에서 겪는 에피소드와
그 이후에 달라진 사람들의 관계와 그것으로 인한
각성을 보여주는 영화였지요.
아주 신선하다고 보았었는데 그 영화를 소재로 해서
우리가 나이 한 살이 더 들수록 자신의 몸에 대한 이미지가
오히려 더 좋아진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당위에서 벗어나
자신이 보는 자신의 몸에 대한 이미지가 오히려 좋아진다는 것
그래서 그것으로 인해 사는 일에도 좀 더 자신이 생긴다는
그런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가고 있네요.
짤막한 한 장짜리 글들이지만 재미있고
생각할거리도 많아서 누군가 번역해서 여러사람들에게
읽을 기회가 돌아가는 것이 좋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드는
책이기도 합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림중에서 특히 모나리자를 그린
기법이 스푸마토라고 하지요?
그 기법을 따서 창의적으로 살고 싶다면
단선적으로 확신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기법처럼 모호한
상태를 즐길 수 있어야 하고 그런 사고과정도 필요하다는
설명을 하면서 (수요일 수업의 교재를 읽다가 ) 루브르에 있는
세례 요한을 그린 이 그림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저는 그 그림이 모나리자보다 더 시선을 끌어서 오래 바라보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모나리자는 그 이전에도 보았고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다가가기 어렵기도 해서 잠깐 보고 말았지만
이 그림앞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서 혼자서
오랫동안 서성거리면서 보고 또 다시 보곤 했었지요.
그리곤 혼자서 속으로 내 마음이 끌리는 그림이 좋은 그림이지
나는 루브르에서 만난 이 그림을 잊기 어려운 마음속의
그림으로 생각하게 되겠구나 하고 느꼈었지요.
마지막 그림은 우엇을 설명하기 위한 것일까요?
보는 사람 각자가 생각해보고 이야기해보는 시간이
기대되네요.
늦은 밤 집에 들어와서 바하의 무반주 바이올린곡을
들으면서 연휴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