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금요일 나들이에서 빌려온 세 권의 책중에서
두 번째로 읽은 책의 제목입니다.
알고 보니 이 책은 2001년 세계의 문학 100호 기념으로
민음사에서 26명의 대담집 (둘씩 짝을 지어 ) 13가지 이야기를
담은 책이더군요.
당시에 제목을 보곤 제대로 들추어보지도 않고
왜 신파라고 생각하고 그냥 내려놓았을까?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내게 신파를 싫어하는 기제가 있나?
그러면서도 정작 살아가는 문제에서 어려움에 부닥치면
곧잘 신파적인 생각에 빠져드는 것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고요.
everymonth에서 이 책에 대해 소개를 받고는 기회가
되면 읽어보고 싶다고 마음만 먹다가
책장에서 제목을 본 순간 반가워서 빼어 들었습니다.
아니,이게 웬일입니까?
읽어보고 싶은 이름들이 줄줄이 나옵니다.
이강숙,김병종
이 둘이 하는 예술이야기야 그럴듯한 짝이지만
최재천과 최승호는 무슨 이야기를 할까?
이런 의아한 느낌도 있고
한 쪽은 이름을 아는 사람이지만 다른 대담의 상대자는
아주 젊어서 전혀 기억에도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벌써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 문화의 주역으로 등장하고 있구나
그러니 어떻게 보면 알고 있는 사람들의 글만 읽고 사는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었고요.
대담자 두 사람을 다 모르는 이름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2001년이라면 이미 시효가 다 지난 책이 아닐까 하는
그런 의문이 전혀 없지는 않았으나
그 시절의 이야기가 지금도 현재 진행형으로 지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런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제겐 김우창 선생님의 이야기가 많이 새로운 점이 있었고
새롭게 등장한 학자들의 이야기가 특히 인상깊었습니다.
인상깊다는 말로는 적합하지 못하네요.
새로운 생각거리가 제 앞에 보따리로 던져진 느낌이라고
하면 더 맞는 이야기가 될까요?
읽다보니 몰입하여 책주인에게 허락도 밥지 않고
어느새 연필로 슬그머니 약하게 줄을 그으면서 보게 되었습니다.
대담의 한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는 달리
대담자가 서로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곳에서는
서로 찌르고 들어가는 식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는 덕분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한가지 인상깊었던 것은
마침 읽고 있는 소설 (풍수) 에서 새로 알게 된 이야기덕분에
최창조님과 탁석산님의 대담을 아주 흥미있게 따라갈 수 있었다는 점이지요..
아마 다른 때같았으면 그 이야기는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을
그런 주제였는데 사람의 관심이란 종이 한 장 차이로구나
그런 생각도 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갈수록 낯설어진다고 느끼고
그냥 그대로 살지 뭐 하기엔 뭔가 허전한 사람들에게
한 번 읽으면서 새롭게 주변을 살펴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기도 합니다.
마침 2001년에 씌여진 잘 정리된 책소개가 있길래
복사해서 올려 놓습니다.
도처에 말은 흘러넘치지만 가슴에 새길 말을 찾기는 힘들다. 글은 진리를 드러내기보다는오히려 감추는 방편으로 이용되기 일쑤다. 꿈을 일상으로 만들어주는 진짜 말과 글보다는, 일상을 꿈으로 분식하는 가짜 언어가 판을 치는 시대다.말과 글에서 진정한 성찰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민음사가 계간 ‘세계의 문학’ 100호를 기념해 기획한 대담집 ‘춘아, 춘아, 옥단춘아, 네 아버지 어디 갔니?’는우리 사회의 지도적인 지성, 이제 막 그 분야에서 활약하기 시작한 젊은 인물 26명이 가진 13회의 대담을 모은책이다.
아버지와 딸도 있고, 수십년 지기도 다시 만났고, 스님과 목사도 한 자리에 앉았다. 이들은 알맹이 없는 논쟁이 아니라 일상의 애환을 이야기하는데서부터한국사회ㆍ문화의 현안을 짚어내는 진솔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드물게 보는 말의 향연이다.
책의 제목이 궁금하다. 소설가이자 신화연구가인 이윤기씨는 철학과에 다니는 딸다희양과 이야기를 나눴다.
“아빠는 어쩌다 이런 ‘돈 안 되는 인문학’에 빠져드셨어요?” 딸의 질문에 이씨는 대답했다. “그러는너는 왜 철학과 갔냐? 그리고 ‘돈 안 되는 인문학’이라는 말, 함부로 하는 거 아니다. 돈이 안 된다면 내가, 도둑질했단 말이냐?”
부녀 대화는 이렇게 단도직입으로 이어졌다. 책의 제목 ‘춘아, 춘아, 옥단춘아, 네 아버지 어디 갔니’는 우리 전래 무가(巫歌)본풀이에 나오는 노래의 한 구절이다.
‘우리 아버지 배를 타고 한강수에 놀러갔다/ 봄이 오면오시겠지?/ 봄이 와도 안 오신다…’로 이어지는 이 노래를 들려주며 이씨는 “지금은 눈물 없이불러낼 수 없는, 어린 시절에 들은 우리 신화가 묻혀 있는 이 무가야말로 내 신화 연구의 힘”이라고털어놓는다.
대담자들은 그대로 현재 우리 문화의 정점을 보여주는 면면들이다. 김춘수, 김우창,김화영, 최인호, 이문열, 이승훈씨 등 쟁쟁한 문인들이 보인다.
생물학자 최재천, 음악학자 이강숙, 정치학자 최장집, 풍수학자 최장조, 동양학자정재서 교수는 각각 시인 최승호, 화가 김병종, 철학자 강유원, 철학자 탁석산, 커뮤니케이션학자 김주환씨와 대담했다.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교수는 아줌마 페미니스트 이숙경씨와 만났고, 인터넷서점 알라딘 대표 조유식씨와 헌책방 ‘숨어있는 책’ 주인 노동환씨도 마주앉았다. 도법 스님은 이화여대교수 양명수 목사와 지리산 실상사에서 새벽부터 대화를 나누었다.
자신들이 살아온 이야기와 앞으로 살아갈 이야기를 흉허물없이 털어놓으면서 이들의대화는 수다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지다가도 깊이 있는 철학적 주제, 혹은 한국 사회의 핵심적 문제들로 접근했다. 생물학자 최재천 교수와 시인 최승호씨는생명과 죽음을 끌어안는 선(禪)적 일치로 나아갔다. 고교 선후배인 최장조 교수와 탁석산 교수는 “사람은 땅을 닮고땅은 사람을 닮는다”며 진정한 ‘우리 것’의 의미를 되새겼다.
고교 동창생인 소설가 최인호씨와윤윤수 휠라코리아 사장은 돈이란 무엇인가를 토론하며 한국경제의 문제를 통렬히 비판했다.
김우창 교수는 젊은 철학자 김상환 서울대교수와 만나 오렌지주스에 대한 이야기로20세기 한국문화를 돌아보았다.
난생 처음 오렌지 주스를 마셔 본 어느 교수가 그것을 하늘나라 음식을 먹는 기분이었다고 표현한 일화에서, 이들은“우리가 지난 20세기 내내 서양 것을 온통 그렇게 받아들였던 것이 아닐까?” 질문하며 우리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강조했다.
‘더 멀리 더 깊이 바라보면 보이는 것들’에대해 이야기를 나눈 도법 스님과 양명수 목사의 만남은 이 대담집에서 일관되는 주제를 보여준다.
그것은 바로 성찰이다.반성 없이 앞으로만 치닫고 있는 우리의 삶, 이념의 과잉 시대를 지나 이제는 욕망의 과잉 시대를 살고 있는 현실에 대한 반성이다. 생산적인 대화,살아있는 말의 전범을 이 책은 생생한 현장성이 엿보이는 90여 장의 사진과 함께 보여준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