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떠난 이후 가능하면 영국문학,미국문학작품들에게서 멀찍히
떨어져서 살았습니다.
아마 다 마치지 못한 공부가 제게 고통이 될까봐 피해다닌 것이겠지요?
거의 이십년 세월이 흘러간 다음
목요일 수업에 필요하다는 생각에 우연히 펼쳐든 책에서
다시 그 시절의 흔적을 이곳저곳에서 보고 있습니다.
마침 그 책을 쓴 저자가 제 친구여서 (대학원에서 공부를 너무 오래 한 것에 대해서
공연한 짓이었다,차라리 가방끈이 좀 더 짧았더라면 하는 후회가 있지만
그래도 이 친구를 만난 것이 평생에 걸친 우정의 시작이었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제가 마음으로 의지하는 친구라는 점에서는
참 다행인 시절이기도 하지요) 친구를 만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
재미있는 책읽기를 했지요.
처음 그 책을 쓰고 나서 출판사를 통해 제게 책이 왔을 때는
아직도 마음이 얼얼한 상태라 감정적으로 분리되어 글을 읽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재판을 내고 나서 다시 보내온 책을 지난 주 내내 읽으면서
(시인의 자리를 찾아서,소설가의 길을 따라 이렇게 두 권인데요)
몸은 한국에 마음은 영국에 산 느낌입니다.
그러고보니 영국에 세 번이나 다녀왔지만 제가 다닌 곳은
주로 런던과 그 근교라 영국을 안다고 하긴 어렵겠지요.
그녀의 글을 따라 켄터베리에서 시작하여 요크, 에딘버러,로체스터 등등을 따라다니다 보니
제겐 다시 여행병이 도지기 시작했습니다.
떠날 수 없는 사정이니 마음으로라도 여행을 하는 의미로
음악을 틀어놓고 그림을 보고 있는 중이지요.

콘스터블입니다.
그의 그림을 많이 본 것은 테이트 갤러리에서였는데요
그 때는 그리 좋은 줄 모르고 보았던 것 같아요.
워낙 시선을 끄는 그림이 많아서 그랬겠기도 하고
그 당시에는 그를 잘 몰라서 그랬을 수도 있고요.
오늘 아침 그림을 보고 있으니 아주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아마 사진을 찍는답시고 자주 길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올 봄 유난히 식물과 나무에 정을 들여서 이 그림이 달리 보이는지도 모르겠네요.


낭만주의 화가로 분류되지만
제겐 다른 프랑스의 낭만주의 화가들과는 달리
조금 차분한 느낌이 들더군요.
기질탓일까요?

살면서 느끼는 것중의 하나가 도망다닌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점입니다.
학교를 떠났다고 해도 그 시절을 없었던 것처럼 뭉개버릴 것이 아니라
그냥 소중히 껴안고 살아도 되었을 것을 왜 피했을까 하는 후회를 하게 되네요.
피했어도 결국은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을
이런 저런 시인과 소설가의 이름을 따라 가면서
그 작품을 배우면서 느끼던 감정이 되살아나기도 하고
새롭게 흥미를 느끼게 되는 시인과 소설가를 만나기도 했습니다.


부처님 오신날 제겐 그렇게 새롭게 마음이 열리는 경험을 한 날이 되었군요.
덕분에 국제전화를 했지요.
개정판에서 원래 두 권짜리 책을 좀 더 써서 3권을 내기로 한 책이
3권을 다 마무리못했다고 하네요.
그 책이 기대되니 마음 먹고 빨리 쓰는 것이 어떻겠니?
독자로서 재촉을 하기도 하고요.
이제는 편한 마음으로 영문학책을 읽게 된 변화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햇습니다.
마음이란 어디서 맺히고 어디서 풀리는 것인가
그 경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 귀한 시간이 된 셈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