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이외에는 하루 중의 대부분 시간을 오전에는 어른들과의 수업, 저녁에는 아이들과의 수업으로 떼어놓습니다.
금요일이라도 2,4주는 역사모임과 영어 읽기 모임, 그리고 음악회로 하루가 밀도있게 씌이지만 문제는 개별적으로 하루를 통으로
쓰는 날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은 멀리 부천으로 캐드펠님을 만나러 가기로 오래 전에 약속했지만 코앞으로 다가온
스페인어 교실의 송년파티에서 연주할 바이올린,피아노 곡 연습이 바빠서 약속을 취소하고 집에 있었습니다.
물론 저녁에는 백건우의 연주를 들으러 예술의 전당에 가야 해서 적당한 시간에 출발해야 하지만 그것은 즐거워서 하는 일이니까
말하자면 오늘 하루를 완전히 통으로 즐겁게 보내는 셈이로군요.
아이들이 각기 다른 시간에 나가므로 나가는 것을 지켜보고는 일단 조금 느긋하게 늦잠을 자고는 , 요즘 듣기 시작한 그들의 경제, 우리들의
경제학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생산과 소비가 일치하던 시대에서의 부와 생산과 소비가 일치하지 않게 된 시대의 보이지 않는 부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에 대한 것, 교환을 매개하는 것, 노동시간의 사회적 평균에 대한 것, 이런 정의들을 듣다보니 수유너머에서의
강의가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네요.
요즘 이상한 버릇이 하나 생겼는데요, 읽고 싶은 책이 많아서 이것 저것 쌓아놓고 뒤적이면서 보는 것입니다.
어제 딸이 외고에 합격한 턱을 낸다고 우리들을 집으로 부른 초록별님, 아이의 방에 들어가보니 책장 가득 다양한 책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그 중에서 시선을 끄는 소설 한 권 언젠가 서점에서 보고 망서리다 기회를 놓친 시식시종을 빌려 왔지요.
1500년대 이탈리아가 배경인 소설이라서 일단 읽기 시작, 소설속으로 빠져들어가다가 아니, 어제 밤 읽다 들고 온 서양 문명의 기반
철학적 탐구도 마저 읽고 싶고, 아인슈타인과 뉴턴의 대화라는 제목의 새로 빌린 책도 궁금하고, 이렇게 해서 묘한 릴레이가
시작된 날, 이야기가 섞이지 않도록 중간 중간에 피아노 연습과 밥하기, 점심 차려 먹기 사이 사이에 책을 바꾸어 읽는 묘기 대행진을
한 셈이로군요.
한 권의 책을 잡으면 그 책이 끝날 때까지는 다른 책은 거들떠 보지도 못하던 시절에 비하면 얼마나 색다른 변화인가 싶어서
웃음이 나오네요. 사람은 변하는 존재인가, 변하지 않는 존재인가 말들이 많지만 변하기도 하고 변하지 않는 부분도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한 날이었습니다.
혼자서 이것 저것 읽어야 할 것, 보아야 할 것들이 많아서 막상 일어나서 나가야 할 시간이 다가오니 차라리 음악회가 없는 날이라면
하는 상상을 하게 됩니다. 그래도 역시 백건우의 피아노 소리에 대한 유혹이 크네요.
나가기 전에 마무리로 보는 들로니의 그림입니다.
8시 공연에 4시부터 나갈 채비를 하는 이유는 제자백가의 귀환 1권에 이어서 2권의 내용이 궁금하기도 하고
서경식 선생이 썼다고 하는 유럽 음악 기행의 내용도 궁금하고, 그동안 바이올린 레슨 시간을 늘 연장하면서까지 열심히 성의를 보여주신
레슨 선생님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서 음반을 선물하고 싶기도 해서랍니다.
물론 선물을 고른다는 핑계로 보게 되는 음반이 저를 유혹하겠지요?
그래도 가끔은 저 자신을 위한 선물도 삶의 윤활유가 되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마음을 먹고 나니 마음 가볍게 집을 나서게 될 것 같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