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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토크

즐겁고 맛있는 우리집 밥상이야기

[이벤트] 주말날의 돼지 등뼈찌개

| 조회수 : 10,736 | 추천수 : 5
작성일 : 2014-11-10 22:22:17

안녕하세요

키톡 첫 글인데...........

엉겁결에 이벤트까지 도전 해봅니다.  ^^;;

지난 토요일 퇴근길에 마트에 다녀왔습니다.

그동안 벼르고 별렀던 사고를 하나 칠려구요.

돼지등뼈, 콩나물, 두부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버섯까지 냅다 담아서 왔더랬죠.

집에오자말자 돼지 등뼈를 꺼내서 물에 담궈두었습니다. 하룻밤정도 담궈두면 좋겠지만

전 성질급한 한국사람이라 한시간 반정도 담궈두었다가 한번씻어냈습니다.

냄비에 담았어요.   폰카로 막 대충찍었습니다.

씻어서 냄비에 담으면서 해부학의 폐해를 다시 한번 느꼈더랬죠.....

고깃간아저씨 뼈 담을때 좀 섞어서 담아주지..... 허리 아래쪽 뼈들이 대부분이더군요.

골반뼈는 거의 없는듯 해서 다행이라고 해야할까요........ 골반뼈는 진짜 위치가 적나라하게 확인 가능하다는;;;;

대학때 해부학을 열정적으로 가르켜주신 ㄱㅅㄴ 교수님을 원망하면서 열심히 씻어 담았습니다.

물을 붓고 한번 끓여서 물은 버리고 뼈는 씻어서 불순물 제거작업을 했습니다.


다시 물을 붓고 향신채를 넣어야 겠는데 집에 마땅히 넣을게 없네요. 있는데로 넣습니다.

전에 누가준 통후추 좀 넣고 동생냔이 말려놓은 생강도 몰래 넣고 사진에는 없지만

양파 반개도 넣었습니다.  그리고 끓입니다.

센불에 올려서 끓으면 중약불로 줄여서 푹~~~ 끓입니다.

온집안이 뼈다구 냄시로 가득차도록 푹 끓입니다.

저처럼 한눈팔면 끓어 넘치니까 수시로 확인하면서 끓입니다.

한참 끓이다보면 끈끈한 우정을 자랑하던 뼈다구와 살덩어리들이 사이가 멀어지려고 합니다.

뼈다구들 건져내서 살코기와 분리시켜줍니다.  살코기는 모으고 뼈다구는 다시 냄비에 투척해줍니다.

그리고 다시 끓입니다.

동생냔 나타나기 전에 살코기 몇점 시식해주고 나머지는 잘 간직해줍니다. 

오로지 나중에 먹기 편하겠다고 살을 발라버렸는데 나중에 울오마니 말씀이 생각나더군요.

뼈다구 오래 끓이면 고기에 맛도 다 빠져버린다고...... 발라내길 잘했습니다.

중간에 다른 냄비에 뼛국물을 좀 덜어냈습니다. 아까 발라놓은 고기도 좀 넣구요.

이제 진짜 요리를 합니다.

묵은지 썰어넣고 양파도 썰어넣고 콩나물 한줌 두부한모 다진마늘 한술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버섯도 넣습니다.

그리고 다시 끓입니다. 추억도 함께 끓입니다.

어릴적 시골 동네에서는 경조사가 있으면 돼지를 잡았더랬죠. 딱히 경조사가 없더라도 명절을 앞두고 혹은 동네잔치할 요량으로 돼지를 사다가 잡았습니다.  돼지 잡는건 서너번에 한번꼴로 저희집 마당에서 이루어졌죠. 동네에서 가장 젊은축에 속했던 저희 아버지가 주축이 돼서 하다보니까 자연스레 매번 저희집에서 하게되더군요. 그에 따라서 필요한 도구들도 보관되있구요. 돼지잡는거 참 많이 봤었죠. 단 숨통을 끓을때 그때만은 절대 못보게 하더군요.  그 외에 모든 과정은 다 보았더랬죠.

돼지를 잡고 남은 잡뼈는 필요한 사람이 가져가는데 아무도 안가져갈때도 있죠. 그러면 모아서 들통에 넣고 푹 끓입니다.  그 끓인 국에 신김치를 썰어넣고 집에 있는 야채들을 넣어서 국을 끓여주면 제가 밥을 두그릇 세그릇씩 먹었더랬죠.

구멍가게하나 없는 시골동네에서 고기 먹기가 쉬운게 아니다 보니까 돼지 잡는날에나 맛볼수 있는 별미로 기억되는 요리였죠.


국이 끓습니다. 국냄새가 진동을 하네요.

그리고 제 맘은 점점 무거워 집니다.

동네 젊은 일꾼이었던 저희 아버지가 어느새 환갑이 되었는데도 젊은 사람입니다.

이제 예전처럼 동네사람들이 모여서 돼지를 잡지는 않습니다.

남자들이 달려들어서 돼지잡는것도 힘들만큼

다들 세월이 흘러버렸습니다. 이젠 그냥 고깃간에서 사다가 먹습니다.

상여짊어지던 사람들도 허리가 구부져서  꽃상여가 트럭위에 올라갑니다.

동네에서 상치를때마다 앞장서서 대소사 모두 해결하고 소소한 물건하나하나 모두 챙기더니만

정작 본인 상여 나갈때는 필요한 물건들이 제때 도착하지 못해서 발만 동동구르게 하더군요.


끓인국을 그릇에 담았습니다. 저 혼자 먹을거라 이쁘게 담고  이런건 없습니다.

그저 사람 입에 들어가면 되는거죠.

돼지 잡는날에 잡뼈를 끓여서 만들어먹던 국을 이제는 등뼈를 사다가

비슷하게 끓여 먹습니다.

등뼈로 끓여서일까요. 생김새도 냄새도 비슷한데 맛은 50%부족하네요.

끓인사람이 틀려서 그런걸까 하고 잠시 고민도 해봅니다.

아무렴 어떠합니까. 이젠 돼지 잡는 사람도 없는데요. 그저 추억하는 사람만 남아있는데요

추억을 반찬삼아 한그릇 달게 먹었습니다.

어릴때 먹던 그맛엔 많이 부족하겠지만 돼지잡던날의 그 추억은 앞으로도 남아있겠죠.

그리고 볼수 없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도 같이.......

 

카르마의인 (karma1004)

갸호갱 요리하는걸 좋아하나 자취생의 한계에 허덕이는 직딩

6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십년후
    '14.11.11 9:52 AM

    최대한 가볍게 따뜻하게 풀어놓으신 글에 웃으며 읽고는 왜 울컥하는 맘이 드는지.
    끓이신 국 한사발 같이 먹고싶네요.
    따뜻한 글 고마워요

  • 2. 고독은 나의 힘
    '14.11.11 10:59 AM

    동네 청년이시던 아버님이 지금도 제일 젊은 사람축에 속하는것.. 진짜 우리 농촌의 현실입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올려주세요

  • 3. 지혜를모아
    '14.11.11 5:27 PM

    진짜 울컥하게 만드시네요. 저도 기억저편에 그런 고향이 있는 사람이라...

  • 4. 오쿠다
    '14.11.11 9:40 PM

    아련한 그림이 그려지네요
    재밌게 읽었습디다..
    그음식은 좀 한두번 더 끓여야 제맛이 나더라구요..

  • 5. 궁금이
    '14.11.12 1:11 PM

    아버지, 아빠,,,가끔 불러봅니다.
    주자십회훈중 일번이 부모님 살아 생전 효도하지 않으면 돌아가시고 나서 후회한다는 내용이죠.
    절절히 느끼며 요즘 그리워합니다.
    님 글에서도 살짝 눈물바람입니다.^^

  • 6. 201303
    '14.11.12 3:25 PM

    님 글 읽으니 저도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납니다..어릴적 동네분들 모여 돼지잡던날이면 어김없이 밥상에 올라오던 갈비 김치국? 찌개? 지금생각해보니 등갈비였던거같아요..참 맛있었던 추억이 생각납니다..좋은글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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