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초등학교때는 아침9시경에 지금 EBS에서 하는 최고의 요리비결 같은
오늘의 요리라고 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방학때는 한번도 빼놓지 않고 볼 정도였죠.
(->지금도 그때 요리가 생각 나는것들이 몇개 있을 정도입니다.)
그 호기심은 외식이라곤 십년에 한번 할까 말까 할 정도로
먹는것에 관심이 없었던 집분위기도 한몫 했었고
고기도 생선도 거의 안먹고 삼시 세끼 김치찌개 된장찌개로 일관된 식단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TV에서 나오는 음식들이 즐거울수 밖에요.
특히 서양요리에 대한 지대한 관심은 다름 아닌 세계명작 동화 덕분이었습니다.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를 읽는데 하이디가 클라라집에서
지낼때할머니께 갖다 드린다고 흰빵을 몰래 모으는 대목이 있습니다.
예전 알프스에서 검은 빵만 먹었다고 하면서요.
이 대목을 읽고 또 읽고 심지어 밤에 자려고 누워서도 생각날 정도로요.
도대체 흰빵의 맛은 어떤 맛일까 궁금해 했었죠.
그때 가난한 우리집에서 먹어본거라곤 보름달 카스테라가 전부였으니 흰빵의 맛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나요?
동화책에 많이 등장하는 음식들은 거의 다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수프. 스튜. 푸딩. 파이 같은 것들이요.

그러다가 중학생이 되고 이때부턴 TV 외화시리즈가 유행합니다. V를 시작으로(->V 기억하시는 분들 많으시죠?)
V말고도 재미난 시리즈가 정말 많았죠. 그 시리즈들을 섭렵하면서 피자를 알게 된거죠.
또 궁금증이 발동했죠. 그 즈음에 강남에는 한 두개씩 피자인 피자헛등 체인점이 생겨나고 있었지만
강북 골짜기에 사는 제가 피자먹기란 하늘의 별따기와 같은 동급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어찌 어찌하여 제게 피자를 먹을수 있는 기회가 왔습니다.
엄마랑 한양백화점(지금 갤러리아)에 갈일이 생겼는데 거기 윗층에 푸드코트 같은곳에서 피자를 팔고 있었던 거죠.
하도 맨날 피자 피자 노래를 부르니 엄마가 비싸지만 한번만 사주겠다 하면서 한쪽을 사주셨습니다.
그때가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중3때 였던거 같습니다.
암튼 첨 먹어본거라 특별히 맛있다 맛없다라고 기억되진 않습니다.
문제는 형제 많은 저희 집에서 큰딸인 저만 먹어 봤다는겁니다.
셋이나 있는 동생들이 도대체 피자는 어떤 맛인지 어찌나 궁금해 하는지요. 먹기전 제모습처럼요.
그때 동생들이 어리고 제가 요리하는걸 좋아해서 튀김이나 고로케(주로 가정실습시간에 배운것)
샌드위치 같은 것을 간식으로 제가 잘 만들어 주었거든요.
언젠가는 동생들에게 피자를 꼭 만들어 주리라 다짐 했습니다. 위대한 사명을 갖구요.
신문에서 어느날 피자레서피를 오려서 피자를 만들 궁리를 했습니다.
백화점에가서 비싼 피자치즈도 사구요.(덩어리로 팔았습니다.)
근데 도데체 전자렌지도 산지 얼마 안된 저희집에 오븐이 있었을리 없죠.
혼자 이리저리 궁리하다가 굽는거니까
그냥 후라이팬에 뚜껑을 덮고 오래 익히면 안될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해보자하고 준비를 했습니다. 지금부터 얼토 당토 않은 황당한 레서피 나갑니다.
피자도우요? 요즘이야 그거 따로 팔기도 하지만
그냥 밀가루 반죽에 이스트만 넣었습니다(요건 호떡 장사하는 이모할머니께서 하시는걸 어깨너머로 보고)
그리고 피자소스르 발라야 하는데 토마토 페이스트에 월계수 잎도 넣고 어쩌구 저쩌구 되어 있는데
토마토 페이스트가 뭐지도 몰랐구 월계수잎 더더구나 알리 없죠.
과감하게 케첩에 양파를 잘게 다져 볶았습니다.암것도 않넣구요. 황당하지 않습니까?
글구 토핑이라곤 햄 피망 양파가 다 였습니다.
올리브 페퍼로니 그런것 듯도 보도 못했으니 올리고 싶어도 올릴 수가 없었죠.
그리고 후라이팬에 뚜껑 닫고 푹익히기~ 첨에 한판은 밑이 까맣게 탔습니다. 먹지 못할 정도로요.
세판정도를 했던거 같은데 두판은 그런데로 모양은 피자 모양이 나왔습니다.
엄마는 한입드시구는 못먹겠다 하시구 제 동생들은 맛있다고 먹더라구요.
저요? 물론 맛없었습니다. 백화점에서 먹었던 그 맛과는 천지 차이였죠.이건 아닌데 말도 못하고
동생들한테 정말 미안했습니다. 하지만 피자를 한번도 못먹어본 동생들은 원래 그런맛이라고
생각했는지 너무 너무 잘먹어주었습니다. 그 이후로 간식을 자주 해주었지만 피자는 절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후 대학에 들어가고 강북이든 강남이든 가리지 않고 피자집이 생겨나고
게다가 이모가 레스토랑을 개업하시는 바람에
서양요리에 대한 저의 열망은 조금씩 사그라 들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실험정신이 강한 용감한 학생이었던거 같습니다.
요리에 대한 애정이 대단하지 않았나 싶어요.
그 열망이 계속 유지되었다면 지금쯤 유명한 쉐프가 되었을지도..
아님 집에서 베이킹도 하고 키톡에 화려한 사진과 레서피를 올려
82이서나마 유명한 주부가 되었어야 맞는건데
이넘의 귀차니즘이 지병이라.. 눈팅으로 즐거워 합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것은 동생들은 요즘에도 가끔 그 피자이야기를 한다는거죠.
누나가 해준 피자 정말 맛있었다구요.
어떻게 그 시대에 피자를 집에서 만들 생각을 했지 그러면서요.
동생들도 요즘 피자를 먹어보고 그때 맛이 없었다는것을 알면서도
맛있었던 음식으로 기억한다는걸 보면
특별한 음식이란것이 꼭 진짜 그 맛 뿐만이 아니라
먹을때의 그 느낌이나 상황으로 기억되는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생전 먹어보지 못한 ,TV에서나 봤던 음식을 먹어본다는
설레임 하나만으로 맛있었다라는 느낌으로 기억하는게 아닌가 싶어요.
왜 예전에 맛있게 먹어서 다시 찾아갔는데 다시 먹어보니 아닌 음식들이 많잖아요.

요즘엔 피자가 진화하여 토핑도 여러가지 도우도 다양하게 나와서 너무 맛있는 피자가 많지만
혹시 제 동생들은 우리 어머님 세대가 할머니가 해주시던 된장찌개를 그리워하듯
제 피자를 그리워하게 되면 어쩌죠? 실상은 정말 형편없던 음식인데요.
피자는 너무도 흔한 메뉴라 사진 올리기도 그렇고
알프스 소녀하이디 한장면 사진 올려봅니다. 조기 빵 보이시죠?
저것이 바로 하이디가 먹던 검은빵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거친 통밀빵 정도가 아니었나 싶어요.
그러나 저러나 키친토크에 이런 사진 올려도 되나 모르겠네요.
다들 이해해 주실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