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이 어디였는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아마도 여름의 끝무렵
약속 시간에 너무 일찍 와버린 덕에 할일 없이 시간보내기용 윈도쇼핑을 하다가
뙇..자수로 만든 핀 쿠션을 만났어요.
올록볼록한 몸매에 색색의 실로 예쁜 꽃이 수놓아진 모습을 보는 순간 반했었지요
집에 돌아와서는 아까 본 그 핀쿠션을 만들어 보고 싶어졌어요
재료도 없고, 방법도 잘 모르고
중학교 가사 시간에 배운 무슨무슨 스티치.. 이름도 가물가물..
원단은 다림질에 할 때 쓰는 무명이었던거 같아요
여기저기 얼룩이 있는 부분을 잘라내고 겨우겨우 확보한 동그라미 두개
실은 자수용 실도 아니고 무슨 판촉물로 받은 봉재용 색실이고
솜은 궁리끝에 베개를 튿어 조금 쓰고
단추는 딸아이 블라우스 맨 밑단추입니다
그리하여 부끄럽고 어설픈 엉터리 핀쿠션이 탄생했어요
뭘해도 그리 열정적이지 않았던 저에게
자수는 좀 강력했던거 같아요
다음날로 인터넷을 이리저리 뒤져 자수를 배울수 있는 곳을 찾아보고 전화를 해서 위치를 묻고..
그러길 어언 한 달
드디어 가을 햇살이 반짝하던 그날 처음으로 프랑스자수를 배우러 갔어요
학교 졸업후 다시 무언가를 배우는 학생이 되는 재미도 좋았고
나만을 위해 무언가를 배우는 시간도 좋았고
솜씨있고 감각있는 선생님의 작업실에서 차한잔 마시면서 바느질하는 것도 좋아서
마을버스- 광역버스 - 전철 - 시내버스 를 바꿔타며 왕복 3시간을 멀다 않고 자수수업을 다니게 되었어요
제대로된 가르침받고 만들게 된 저의 첫 프랑스자수 작품입니다
시간이 지나고 다른 여러 작품들을 만들었지만
이 핀쿠션을 완성하고 난 뒤에 느낀 뿌듯함엔 비할 바가 아니었어요
그 이후 오래 걸리는 작업을 하다 지루해 지거나
다른 일이 바빠 길게 시간 걸리는 작업은 엄두를 못낼 때마다 하나씩 만든 나의 핀쿠션들
단순한 기법으로 도안도 그리지 않고 만드는 간단한 작업이지만
그래도 핀쿠션을 만들다보면 맨 처음 자수를 시작하던 그날의 벅참이 떠오릅니다.
일상이 무미건조하고 지루해지거나 아니면 나태해 질 때 일부러 핀쿠션을 만들곤 합니다
학생들은 내일이면 새 학년의 첫걸음으로 등교를 하겠지요
중학교에 입학하는 딸아이의 마음엔 어떤 기대와 설레임이 있을까요..
내가 핀쿠션을 보면서 첫걸음의 마음을 다잡듯이
나의 딸도 내일의 첫마음을 간직하고
중학교 힘차게 다니길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