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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토크

즐겁고 맛있는 우리집 밥상이야기

오늘은 인우둥네 장 담그는 날!

| 조회수 : 2,471 | 추천수 : 4
작성일 : 2004-02-09 20:24:08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야했어요.
인우둥네 장 담그는 날이었거든요.
어제 서울 부모님 집에 갔다가 아침에는 청소를 깨끗이 했습니다.
서울집부터 고사를 지내야하니까요.

*엄마의 시루떡
엄마는 떡을 참 잘 만들어요.
뭐 정식으로 떡을 배워 이것저것 잘 하는 것이 아니라 '편' 종류를 잘 쪄요.
그래서 친척들 잔칫날 음식부조(음식을 해감으로서 부조하는 풍습)로 편을 잘 쪄갑니다.
주로 하얀팥으로 편을 많이 하고 붉은팥으로 시루떡도 잘 하구요.
오늘은 어제 담가 불려서 단골 방앗간에서 빻아온 쌀가루와
할머니가 지난 해 거둬들이신 통통한 붉은 팥 삶은 것,
그리고 역시 할머니가 키우신 무를 채쳐 한 켜 얹을 요량으로 무 반 대접,
그렇게 해서 시루에 안쳤답니다.
시골집 고사 지낼 것 한 시루, 서울집 고사 지낼 것 한 시루,
그렇게 두 시루를 쪄서 방방마다 돌아다니며 손바닥을 싹싹 비벼 일년 가족의 무사안녕을 빕니다.
스륵스륵 손바닥 비비는 소리를 내면서 말이죠.
엄마의 손바닥에는 가족의 건강과 안녕이 고이 담겨 하늘로 하늘로 뻗쳐 올라갔습니다.

*장 담그기
오늘이 말(馬)날이래요.
원래 장은 말날에 담가야 좋다고 해요.
볕 좋고 운 좋은 날을 골라 장을 담그던 선조들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부모님과 저는 아침에 서울집 고사를 끝내고
남은 떡시루 하나를 들고 시골로 내려왔습니다.
오는 길에 막걸리와 고기도 샀지요.
할머니는 벌써 장 담글 준비를 하고 계셨어요.
서울 고사 지내느라 늦어서 막 서두르시네요.
메주는 벌써 지난 겨울, 그러니까 할머니 사고 당하시기 전에 잘 만들어 띄워놓은 게 있지요.
그걸 며칠 전, 검은 곰팡이를 박박 씻어서 말려두었어요.
시골집에는 항상 천일염(소금, 호렴) 가마니가 있는데
이걸로 간수를 내려 두부 쑬 때 쓰기도 하고
이렇게 장 담글 때 소금으로 쓰기도 해요.
어제 벌써 절룩거리시는 걸음으로 항아리랑 소쿠리들을 깨끗이 씻어놓으셨더군요.
장 담을 항아리에 걸대를 걸고 그 위에 소쿠리를 얹어 소금을 넣고
맑은 물을 그 소금에 부어 소금물을 만들었습니다.
냉장고에서 달걀 하나 꺼내 깨끗이 씻어오라 하시더니
소금을 띄워서 간(염도)을 맞추시네요.
달걀이 동동 떠서 오백원 짜리 동전만큼 소금물 위로 올라오면 된다고 하십니다.
인우둥은 그저 사진 찍느라 별로 도와드리진 못했어요.
그 소금물을 가라앉히는 동안(소금 탄 물이 꽤 지저분하던걸요)
할머니를 모시고 마석 병원(요새 물리치료랑 골다공증 치료를 받으시거든요)에 갔다왔어요.
엄마는 병원 갔다온 새에 시골집 고사를 지내고
장작불을 지펴 숯에 불을 당겨 놓았어요. 장 위에 띄울 거래요.
소금물에 메주를 넣고 붉은통고추 말린 것을 띄우고 불이 붙은 숯을 넣었습니다.
"치이이이~익!"
할머니는 깨끗한 물을 떠오라 하시더니
손을 싸악싹 빌며 기원하십니다.
"그저 올 한 해 가족들 모두 건강하고 맛있는 장맛 볼 수 있도록 해주십소사."

*술, 고기, 떡
부모님은 서울로 다시 올라가시고
인우둥과 할머니만 남아 장 담그는 것을 마저 정리하고 뒷처리를 한 뒤에
집에 들어왔습니다.
그깟 일 조금 했다고 배가 엄청 고픈 것 있죠?
낮에 고사지내느라 구운 고기와
구수한 붉은팥시루떡과
고사 지내고 남은 막걸리를 상에 얹어 저녁밥을 먹었습니다.
인우둥은 밥보다 먹걸리를 더 많이 마셨네요.
"할머니 옛날에는 술하고 고기하고 떡이 귀한 음식이었죠?"
"그럼, 어디 좀체 먹을 수나 있었나?"
"오늘 저녁 밥상에 술, 고기, 떡이 다 있으니 우리는 엄청 부자죠?"
"크크, 그렇구나."
"그나저나 할머니는 정말 일복이 많으시네요."
"왜?"
"아, 지난 가을에 가을걷이 다 끝내고 메주 만들어놓자마자 사고나시더니
깁스 풀고 좀 걸을만하니까 벌써 봄이 다가와 할 일이 많아지잖아요.
어쩜, 일 적을 때 골라서 그렇게 다치세요, 그래?"
"내가 원래 어려서부터 일복은 타고났단다."
"저도 복이 많아요."
"왜?"
"요새 누가 저처럼 젊은 사람이, 고사 지내고 장 담그는 걸 구경하겠어요?"
"어이구, 복도 많다. 그래 일 많이 하는 게 복이냐?"
"에이, 남들 못하는 거 해보는 거는 다 복이에요. 안 그래요?"

*휘청휘청
저녁상을 치우고 할머니 심부름으로 마을에 갔다왔어요.
떡 좀 갖다드리고 얼마 전에 신세 진 집에 버선도 몇 켤레 갖다드리고...
인우둥네 집은 마을하고는 좀 떨어져있거든요.
'후라시(랜턴)'를 켜들고 노랑이와 흰둥이를 앞세워 돌아오는 길에
왜그리 흥이 나던지...
술기운 때문일까요?
흥얼흥얼 노랫가락이 막 나오면서 막 엔돌핀이 솟는 거에요.
'아, 행복하다. 재미있다. 누가 만약 우리들 사는 걸 다큐멘터리로 찍는다면 꽤 재미있을텐데. 우리 옆집 할머니 사는 것도 재미있고, 엄마랑 할머니 관계도 재미있고, 우리집 노랑이랑 흰둥이 녀석들 살아가는 것도 재미있네. 앞마을 **엄마 도망가서 ** 고생하는 이야기도 있고, 지나가는 사람마다 태워주는 운전학원 셔틀버스 기사 아저씨 이야기도 있고, $$녀석 하교 길에 길가에 잡초들 친구 삼아 걸어오는 길도 한 폭의 그림이고, 농사만 짓다 마흔을 넘겨 술로 하루를 보내는 %%아저씨와 자식 셋을 앞세운 그 어머니 이야기는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이야기지. 그러고 보면 우리네 사는 모습 하나하나가 다 이야기고 소설이고 드라마구나. 영화도 이런 영화가 없지.'
머릿속은 마구 헝클어지면서도 왠지 기분이 좋아
휘청휘청 걸었습니다.
보름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달이 참 밝더군요.
달도 술에 취했는지 휘청휘청 하더라구요. ^^
9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싱아
    '04.2.9 8:36 PM

    언제 인우둥님과 막걸리 한잔 하는날 있겠죠.
    장담그는날은 할머니한테 특강을 받았어야 하는데........
    인간극장 한번 나가셔요.

  • 2. 깜찌기 펭
    '04.2.9 8:41 PM

    인우둥님.. 떡이야기에서 편이 뭔가요?

  • 3. peacemaker
    '04.2.9 8:48 PM

    인우둥님..
    글이 참 맛깔지네요..
    다 읽고나니 제 마음도 휘청휘청합니다..

  • 4. 인우둥
    '04.2.9 9:44 PM

    편은... 제사음식에만 쓰는 말인가요?
    (밥은 '메', 국은 '갱' 하는 식으로)
    그러니까 쌀가루와 고물을 켜켜이 안쳐 찌는 떡을
    저희집에서는 편이라고 하거든요.
    쉽게 말해 시루떡 종류...라 하면 될른지요.
    (정확한 명칭인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 5. 김혜경
    '04.2.9 11:20 PM

    인간극장에 제보할까봐요...

    맞아요, 인우둥님 시루떡이나 제사에 쓰는 녹두고물 떡 처럼 널다랗게 쪄내는 떡을 편이라고 하더라구요.

  • 6. 이론의 여왕
    '04.2.9 11:27 PM

    그래서 오늘 그렇게 날씨가 맑았군요. 하늘이 파랗던데, 맛있는 장 담그시라고 그랬나 봐요.

  • 7. 김새봄
    '04.2.10 1:23 AM

    아~ 부럽습니다.
    지금 시어머니와 그렇게 살라고 하면 갸우뚱 할 사람이..
    인우둥님 글만 읽으면 돌아가신 친정 외할머니 생각이 나는게
    너무너무 부럽습니다.

  • 8. 꽃게
    '04.2.10 8:57 AM

    저도 어제 장담그느라 바빴습니다.
    해마다 음력 삼월삼짓날 담궜는데 그 무렵에 황사가 불어오더라구요.
    그것도 갈수록 심하게~~~
    그래서 올핸 좀 일찌기 정월장을 담궜네요.
    어제가 말날에 손없는 날이기도 하다나요???

  • 9. june
    '04.2.11 5:07 AM

    시루떡 먹고 싶어요...
    울 할머니 장 담글때는 이제 메주냄새 안 맡아도 된다는 마음에 다른건 기억이 하나도 안나요.
    아랫채에다가 메주 띄울래 어찌나 그 냄새가 싫던지...
    그래도 장 담고 나서 아랫채에서 메주들 나가고 나면 산자도 말려서 해주시고 매일매일 간식거리가 참 많았던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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