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토요일에 김장을 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김장을 거들었지요.
저희는 시댁은 김장을 안하구요, 친정에서만 합니다.
엄마가 아침 8시까지 오라고 하셔서 자고있는 다영이 - 네살배기 딸입니다 - 를 토욜에 쉬는 신랑에게 맡겨놓고 서둘렀습니다. 신랑 왈 "나 출근할 때는 게으름 피면서 안일어나더니 김장하러 가는 날이라고 알아서 서두네요..." 좀 섭섭했나보죠? 어쨌거나 시간맞춰 친정에 갔습니다. 우리 집이랑 친정이랑 자동차로 15분거리거든요.
가자 마자 배추 40포기 씻기부터 했습니다. 엄마가 몸이 많이 안좋으시다고 올해부터는 절인배추를 동네 시장에서 주문해 놨답니다. 전에도 배추 씻기를 몇 번 했었지만 이번에는 저 혼자 했어요. 결혼 6년차이지만 아직 배추김치는 한 번도 손수 담아보지 않았습니다. 어쩐지 엄두가 안나서요. 보조의자에 앉아서 배추를 씻고 있는데 엄마가 걱정이 되는지 계속 드나드시면서 "혼자 할 수 있니?"라고 계속 물어보시네요.
제가 배추씻는 동안 엄마랑 첫째여동생은 갓이랑 무, 쪽파를 손질했습니다. 배추씻는데 거의 한 시간 반은 걸린 것 같습니다. 어설프죠?
배추를 다 씻고 나니 이모 두 분과 엄마의 이종사촌동생(그냥 이모라고 부릅니다)과 그녀의 딸(그냥 사촌동생이라고 하지요)이 오셨습니다. 무 20여개를 채치고 (팔빠지는 줄 알았습니다. 결국 혼자 못하고 사촌과 같이 했습니다. 김장용 무 채칼로 했는데도 워낙 갯수가 많아서리) 갓이랑 쪽파를 자르는 동안 엄마는 고춧가루에 멸치액젓과 새우육젓을 섞어서 버무려 놓으셨습니다. 그리고나서 무채친것, 갓, 쪽파, 찹쌀풀을 고춧가루 버무려놓은 것에 합쳐서 다시 버무렸습니다. 참, 청각도 넣습니다. '청각'이라고 아시나요? 몇 년 전부터 넣으시던데요, 진청록빛을 띠고 있는데 생긴 것이 꼭 지렁이같습니다. 이걸 넣으면 김치가 시원한 맛이 난다고 하네요. 그리고 여동생이 무국용으로 무를 잘라서 엄마가 국을 끓이셨습니다. 밥도 해 놓구요.
간을 맞추어서 겉절이부터 만들었습니다. 생굴이랑 통깨를 잔뜩 넣어서 버무린 다음 무국이랑 점심을 먹었습니다. 그때가 12시 30분이 좀 넘었었나봐요.
배추김치부터 담그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동안 절여놓은 알타리무(총각무)를 씻었습니다. 알타리무는 2만원치라는데 몇 단인지는 모르겠네요. 암튼 이것도 김장용 큰 소쿠리에 한 가득입니다.
배추김치 담는 건 정말 순식간이죠? 버무리는 대로 엄마 것은 딤채에다 척척 넣고, 제가 가져갈 것(7-8포기)은 가지고 온 김치냉장고용 김치통에 넣고, 다른 친척들 분량(역시 7-8포기)은 각각의 김치통에 넣어서 담기를 끝냈습니다. 이어서 알타리무로 알타리 김치를 담아서 역시 각자의 김치통에 나눴습니다.
엄마가 전날 무 동치미와 배추 동치미를 만들어 놓으셔서 당일날 동치미는 안담았구요, 돌산갓도 몇 단 담았습니다. 그래서 김장을 다 하고 나니 세시 반 정도가 되었네요... 이때까지의 김장중 가장 빨리 끝났다고 다들 좋아하십니다.
지금은 친정이 아파트에 살지만 8년 전만 해도 단독주택에 살았답니다. 그때는 부엌이 지금의 두 배는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는 김장할 때가 되면 동네 아주머니들 5-6명에 이모들까지 오셔서 김장 100포기씩을 했던 것 같습니다. 저희 식구가 여섯이었거든요. 엄마, 아빠, 저, 그리고 여동생 둘과 남동생 하나. 우리 식구들은 모두 김치를 좋아해서 엄청 많이 먹었었습니다. 배추만 100포기고 알타리에 동치미, 갓김치까지 담으면 준비까지 해서 꼬박 이틀이 걸렸지요. 김장당일도 저녁먹을때까지 버무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엄마는 무척 힘드셨겠지만 우리 꼬맹이들은 배추의 하얀 속을 뜯어서 굴이랑 깨 묻혀 주시는 겉절이를 먹고싶어서 조르곤 했었지요. 동네 아주머니들이 돌아가며 김장을 하시니까 거의 2주정도는 하루 걸러 하루씩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겉절이를 먹곤 했었던 것 같습니다.
매해 김장철이 돌아오면 느끼는 거지만 우리들이 나이 들면 이렇게 품앗이 해가며 김장하는 모습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만 해도 엄마에게 늘 김치를 얻어먹지 않으면 사서 먹거든요. 나이 든다고 김장을 하게 될까요.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거의 100%일 것 같습니다. 김장은 안하게 되더라도 엄마에게서 김치담는 노하우라도 미리미리 배워놔야 할텐데... 나이가 먹으면서 김장하기 힘들어 하시는 엄마를 봐서는 몇 년 안에 친정에서의 김장도 더이상 하기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김장하면서 이 얘기를 했더니 이모들이 "그러면 너희들이 대신 해야지" 하시네요. 말이 떨어지자 마자 여동생이 "난 사서 먹을건데?" 하네요.
정말 세월이 흘러가면 손맛이 그리울 것 같습니다...
키친토크
즐겁고 맛있는 우리집 밥상이야기
김장 이야기...
blueeye |
조회수 : 2,365 |
추천수 : 18
작성일 : 2003-11-25 18:39:22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아짱
'03.11.25 7:14 PMㅎㅎ 저희 친정도 일욜에 김장했는데,,이런 불효자식
일이 있어 못가봤답니다
여동생이 김치 못가져갈줄 알아 하며 호통을 쳤지만
어제 냉큼 가져다 냉장고에 쟁여놓았답니다
염치가 없지만....
김장 하느라 고생 많으셨어요..병난건 아니시죠2. nowings
'03.11.26 10:08 AM제가 올해는 어꺠가 아파 힘을 못썼더니, 시어머니도 친정엄마도
저 몰래 김장들을 치루셨더라구요.
그리곤 어젠 친정엄마가 끌고다니는 가방에 김치 한가득 담아서
가져오셨어요.
젊은 것이 어른 것을 앉아서 받아 먹으니 염치가 없어서 말을 못했어요.
내년에는 저도 같이 김장을 담갔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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