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에 한우로 둔갑한 저의 어리버리 갈비찜은
올해도 식구들이 다 잘 먹어줬고, "맛있다"는 그 말 한마디에
스무 시간여에 걸친 설음식 고단함이 살짝 갔습니다.
짜다라 준비한 것도 없었는데 분주했고 신경이 많이 쓰였습니다.
그만큼 제가 명절하고 상관없이 살았다는 겁니다.
올케가 여태 준비하면서 얼마나 시집 욕을 했을꼬 ㅎㅎ
착한 올케입니다.
엄마집에서 밥 먹고 제집으로 온 올케와 차 한잔 했습니다.
오십이 넘은 동생과 올케, 그 사이 십년 넘은 시간이 비어져
어떻게 살았는지 서로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저는 사업한다고 미친년처럼 십년을 몽땅 털어넣었고,
올케는 불안한 중년을 늦은 공부와 일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이야기하다 올케가 눈물 한 바가지를 쏟아냅니다.
저는 누구보다 올케와 동생은 잘 살 줄 알았습니다.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한 바탕 쏟아낸 뒤 올케가 부끄러운 듯 웃습니다.
그래도 살만 합니더......
# 내일이 아버지 기제사일입니다.
정월대보름날이라 까먹지는 않습니다.
올케보고 이제 시집 일은 그만하라고 했습니다.
제가 제사를 모시겠다고.
아버지를 젤 좋아한 자식이고 닮기도 엄청 닮았습니다.
한량스러움입니다.^^
"믹스커피, 거봉포도(이게 제 철이 아니라 너무 비싸요^^),
경상도에서는 모두배기라고 부르는 모듬떡, 찹쌀떡
그리고 담배"
아버지가 생전 좋아셨던 음식(?)입니다.
밥과 국만 더하고 제사 지방대신 아버지께 편지를 쓸 생각입니다.
엄마 소식도 전하고 제가 얼마나 많이 아버지께 사랑을 받았고,
사랑했는지에 대해 말씀드릴 겁니다.
(저는 엄마한데는 도저히^^ 사랑이라는 말이 안 나옵니다.
아주 나중에?)
# 설 전에 엄마집 이불빨래 몽땅 모아 막 개업한 동네빨래방에 갔습니다.
누구는 빨래방에서 연애가 터지더만 저는 갖고 간 책은 폼이고,
마냥 세탁기 속 돌아가는 것만 쳐다보다가 왔습니다.
막노동 뒤에는 술 한잔 해야지요.
까여진 새우가 부담스러운 순간입니다.^^
다시 배달음식으로 한 끼 때우는 일상이 되돌아 왔습니다.
일주일에 한 두번은 시켜먹습니다.
제대로 성공한 적도 없으면서 나도 모르게 앱을 누르고 있습니다.^^
플라스틱에 대한 부담이 제일 크고 맛도 없습니다.
편리함의 미덕만 있지요.
집 꼬라지가 ㅎㅎㅎ
2004년 5~6월생 아새끼들입니다.
올해 17세, 많이 늙었지만 매일 아침 산책가고 입맛이 까탈스러운 녀석들이라
제 반찬은 안해도 얘들 간식은 늘 준비합니다.
똑같은 거 이틀은 안 먹는 새끼들이라 속이 터지지만
우짜든지 잘 먹여주면 감사합니다.
한 녀석이 작년부터 자꾸 작은 방에 혼자 있습니다.
울집 대학생입니다.
밥먹고 딱 지 방에 들어가는 모습이.
제가 침대를 포기하고 셋이 같이 자려고 매트도 샀습니다.
나중에 이 얘들의 체온도 그리울 거고, 꼬무리한 향도
무엇보다 같이 있고 싶은 시간들이 짧아지고 있으니 나름 그랬는데
도루묵입니다.
자꾸 지 방 앞에서 멍멍거려 다시 자리를 마련해주니
저러고 있습니다. 정 떼려고 그러는지 맘이 아립니다.
# 2월 이맘 때 산을 자주 봅니다. 초록빛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땅에도 작은 싹들이 올라오고 봄이 오고 있습니다.
삶이 미리보기가 가능할까요?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봄이 오면 여름이 온다는 것!
내 삶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제 사주를 보면 아주 기복이 심한 사주입니다.
실제로 다이내믹했습니다. 좀 재미난 인생이였습니다.
지났으니 하는 말이지만 ㅎ
제 하고싶은 건 다하고 살았으니 원도 한도 없습니다.
지금의 조용한 일상이 더 좋습니다.
20대는 천지분간도 못하고 세상의 중심이 나로 착각하고 살았고
30대는 회사생활을, 회사에 작은 도서관을 만들었고 노조도 만들었습니다.^^
40대부터 50대 중반까지 자영업을 했구요.
지금은 반백수에서 온 백수로 넘어가는 중입니다.
백수로 되는 길이 왜리이 멀어보이는지 ㅎㅎㅎ
슬슬~ 제사 장을 보러 나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