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김장철이라 키친 토크에 글이 많이 올라와서 기뻐요.
이 분위기 이대로 쭈~욱 내년까지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제 김장 이야기는 사실은 다 끝났지만, 마무리를 한다는 핑계로 제가 12월을 좋아하는 이유를 쓰고 싶었어요 :-)
김장의 마무리는 추수감사절 명절이자 코난군의 생일 축하를 하는 것으로 마쳤습니다.
한국으로 치자면 추석날 태어난 코난군은 생일 파티를 하고 싶어도 친구들이 명절 쇠러 할아버지 할머니 댁으로 가고 없거나, 아니면 자기 집으로 친척 손님들이 오시니, 코난군의 생일 파티에 참석하기가 참 어려워요.
그래서 올해에도 파티 대신에 위대한 늑대 여관 물놀이 공원으로 가족 여행을 갔었죠.
여관 근처 쇼핑몰에는 찐득한 손가락들 이라는 이름의 바베큐 레스토랑이 있어요.
아마도 전국 체인점일텐데, 제가 사는 명왕성에는 없고, 이런 큰 도시에만 있나봐요.
미국에서 바베큐 라고 하면, 군고구마 통 같은 구조물 안에 통돼지나 통닭을 넣고 불조절을 잘 해서 너무 세지 않은 불에 오래오래 구운 고기를 말합니다.
불을 피울 때 특정한 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해서 그 향이 고기에 스며들게 하는 기법이 있구요, 무엇보다도 불 조절이 관건이라 경험 많은 할아버지들 중에 바베큐 고수가 많아요.
바베큐 식당 30년 전통 원조집 - 이런 이름이 붙은 곳은 대게 머리가 허옇고 허리가 굽은 할아버지가 주인장이세요.
큰 덩어리 고기를 오랜 시간 약한 불에 구우면 겉은 불길에 그을려 있지만 속살은 아주 부드럽고 연하게 익어 있어서, 칼도 필요없이 손으로 뜯어낼 수 있어요.
핸드 풀드 바베큐라는 것은 고기를 손으로 뜯어냈다는 뜻이죠.
잘게 손으로 뜯어낸 고기를 빵 사이에 넣고, 바베큐 소스를 뿌려서 샌드위치로 만들어 먹습니다.
찐득한 손가락들 식당에는 여러 가지 맛의 바베큐 소스를 직접 개발해서 상품으로 팔기도 하고, 테이블에 두고 손님이 원하는 것을 마음껏 뿌려 먹을 수 있게 해두었어요.
바베큐를 굽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리니, 고기가 익기를 기다리는 동안에 곁들이는 음식도 자연스럽게 만들게 되죠.
미국식 바베큐에 단골 반찬은 콜슬로와 오래 익힌 콩조림 입니다.
저 콩은 통조림으로도 많이 팔고 있죠?
탄수화물 대신 더 많은 단백질이 먹고 싶어서 저는 바베큐 삼종 셋트 메뉴를 주문했어요.
고춧가루가 뒤덮인 것은 백립, 즉 돼지 등뼈 입니다.
원래는 바베큐 소스를 발라서 내는데, 저는 여러 가지 소스를 맛보려고 소스를 바르지 말고 달라고 부탁했어요.
미국 레스토랑 일반 상식 하나 더!
무슨 음식을 파는 곳이든 상관없이 90퍼센트의 미국 레스토랑에서는 키즈 메뉴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몇 살 이하의 어린이만 주문할 수 있다는 규칙을 정해두고, 키즈 메뉴는 치킨 너겟이나 맥앤치즈가 대부분입니다.
아마도 한국에서는 어린이밥 메뉴로 계란간장밥, 조미김과 밥, 그런 정도로 나오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린이는 어린이 메뉴를 주문하고...
또 생일이니까 특별히 선심써서 평소에는 주문하지 않는 디저트도 하나 시켜서 남매가 나눠먹게 해주었어요.
생일 주인공이 가장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케익에 촛불 켜고 노래도 불러주고...
그렇게 김장 이야기의 뒷이야기까지 모두 마쳤습니다 :-)
해마다 이맘때 - 11월 말 12월 초 - 가 되면 라디오에서는 하루 종일 크리스마스 음악을 틀어주고, 상점과 거리 곳곳에도 본격적인 크리스마스 장식이 보입니다.
저는 일 년 중에 지금 이 시기를 가장 좋아해요.
1999년의 겨울 이야기를 하려면 우선 1995년 이야기를 먼저 시작해야겠군요.
(요즘 국가부도의 날? 이라는 영화가 인기라면서요? 아직 보진 못했지만, 제 겨울 이야기도 비슷한 시대적 배경일 겁니다 :-)
대학을 졸업하고 사립 유치원 교사로 취직해서, 일은 서툴고, 몸은 힘든, 초보 직장인의 괴로움을 겪는 것에 더해서, 유치원 교사이기 때문에 해야 하는 버라이어티한 업무와, 박봉조차도 삭감 당하지 않기 위해 해야했던 버라이어티한 노동일... 간식 조리하기, 화장실 청소하기, 보일러 관리하기...
그래서 그 때의 제 모습...
(이쁜 건 빼고... ㅠ.ㅠ)
요즘 사립 유치원 어쩌구 소란스럽던데, 그게 수십 년 된 묵은 나쁜 관행이랍니다...
그 얘기는 너무 길어지니 이만 생략...
그 날도 먼지가 가득한 교재교구 창고를 정리하고 있었어요.
해지난 달력 하나가 그림동화 사이에 쳐박혀 있더군요.
아마도 달력 그림은 화질도 좋고 내용도 교육적인 것이니 오려서 교재를 만들 때 사용하려고 선배 선생님이 그리 두었던 것인가 봅니다.
1995년에는 인터넷도 활발하지 않고 컬러 프린팅도 아주 비쌀 때이니, 이런 재활용품을 교재 교구 만드는 데에 자주 사용했어요.
그 달력을 무심코 펼쳐보니 이런 그림이 들어있었어요.
아마도 원장님의 선배가 당시에 유학하던 학교의 달력을 보내주셨던가봐요.
한 해 동안 달력으로 잘 쓰고, 교구로 재활용하려고 창고에 보관하고 - 라기 보다는 쳐박아 두고 - 있었던가봐요.
대학교 건물 같은 곳 앞에서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가 배낭을 매고 푸른 잔디밭을 걷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그 그림을 보는 순간 신데렐라 같은 제 처지가 너무 비참하게 느껴지면서, 이 그림 속으로 뛰어 들어갈 수만 있다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 때 제 형편은 외국 유학은 커녕, 여권도 한 번 가져보지 못했고, 미국갈 비행기 표 값을 모으려면 월급을 두 달을 모아도 모자랄 정도였으니, 학비는 어떻게 마련하고 체류비는 어떻게 감당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남동생 두 명이 아직 대학생 고등학생이니 부모님은 그 뒷바라지만 해도 어깨가 무거울 때였구요.
그러다 어찌저찌...
살다보니 인생이 예상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흘러흘러...
1999년 12월 27일, 김포공항 (! 그 시절엔 인천공항이 아직 없었어요 :-) 을 떠나 아틀란타 공항에 도착했어요.
밤 아홉시가 넘어 이민 가방 하나 들고 달랑 혼자 몸으로 공항에 내렸는데, 어찌나 막막하고 두렵던지...
내가 딛고 있는 이 땅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못살고 쫓겨나면 그 때는 어디로 가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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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2000년 12월을 맞이했습니다.
종강을 코앞에 두고 과제며 시험이며 준비할 것은 많았지만, 낯선 곳에 와서 혼자 힘으로 일 년을 무사히 살아냈다는 것에 크게 안도했어요.
영어를 못해서 학교에서 쫓겨나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외국인 학생을 많이 보아온 교수님들과 친절한 동료 대학원생 친구들은 언제나 저를 격려해주었고, 신데렐라 처럼 구박받으면서 고생하던 날에 비하면 오히려 대학원 공부는 너무나 행복한 일이었죠.
그리고 이런 남자도 만났구요!
ㅋㅋㅋ
2000년 겨울 방학이 시작하자마자 저희 둘은 동네 사람 아무도 모르게 야반도주 하듯, 짐을 싸서 남쪽으로 튀었어요.
아직 결혼 전일 뿐만 아니라 저희 둘이 사귀는 줄을 아무도 모를 때였기 때문에 그 스릴 넘치던 야반도주가 생생히 기억에 남아 있어요.
그 해의 크리스마스는 디즈니월드와 플로리다 바닷가에서 보내면서 정말 행복했어요.
디지털 카메라가 보편화 되기 전이라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인화해서 액자에 넣어두었어요.
시간이 지나니 색도 바래고 액자 유리에 달라붙어서 손상이 되기도 했군요.
저 시절엔 전광렬 닮은 저 남자도, 그 옆에서 좋다고 웃고 있는 저 여자도, 참 청춘 시절이었군요.
99년과 00년의 12월은 극과 극으로 불안하고 무서웠다가 세상을 다 얻은 듯 행복했던, 그런 12월 이었습니다.
남편과는 그 야반도주를 다녀온 이후로 한국에 계신 부모님들과 같은 학교 한인 학생 친구들에게 커밍아웃 하여
마침내 이런 사진도 찍었습니다...
이건 2001년 12월이었죠.
신데렐라랑 왕자는 애들을 몇이나 낳았는지 모르지만, 그 여자와 그 남자는 그 이후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낳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그리고 해마다 12월이면 그 여자는 더욱 행복했더랍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