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난군 열 한번 째 생일이라 1박 2일 여행을 다녀왔어요.
그 사이에 다른 분들께서도 겨울 음식 이야기를 많이 올려주셨네요.
저도 언젠가는 뒷마당에 무를 한 번 키워보려구요 :-)
전에 어느 집에 갔더니 집 주위를 빙 둘러서 무를 심었는데 무 이파리가 어지간한 조경수 보다도 예뻐서 정원 꾸미는 데에는 그저그만이더라구요.
ㅎㅎㅎ
각설하고, 배추 절이던 눈물 겨운 이야기와 김장 재료 다시 사야했던 전 편 이야기에 이어서 다음 편 이어집니다.
직접 기른 무는 아니지만, 한국 마트 출신 무도 아니지만, 그래도 계절이 계절이니만큼 명왕성 국제 시장에서 구입한 무도 제법 싱싱하고 맛있어 보였어요.
이 많은 무를 손으로 썰다간 제 명에 못 살죠...
내 사랑 푸드 프로세서...
무 다섯 개를 5분 만에 다 썰어주었어요 :-)
김치를 담을 때 풀을 쑤어서 넣는 이유는, 녹말이 먹이가 되어서 미생물 발효가 잘 되기 때문이라고 해요.
찹쌀풀을 쑤기도 하고, 밥을 지어서 믹서에 갈아서 넣기도 한다는데...
저는 가장 기본에 충실하게 밀가루 풀을 쑤었어요.
감자녹말, 찹쌀가루... 여러 가지 재료를 써봤는데 제 입맛에는 큰 차이를 모르겠더라구요.
밀가루풀이 입자가 고와서 물김치 담을 때 김치 국물이 가장 뽀얗고 고르게 만들어지는 장점을 발견하기도 했구요.
이번에는 찬장에 밀가루가 많아서 밀가루로 당첨!
밀가루풀을 쑤어서 식힌 다음에 고춧가루에 넣어 고춧가루가 촉촉해지도록 기다렸어요.
한 솥을 끓여서 넣었는데 너무 뻑뻑해서 다시 한 솥 끓여서 식혀서 넣어야만 했습니다.
내 피부도 아니고 고춧가루를 촉촉하게 만들기 위해서 ㅎㅎㅎ
밀가루풀 만으로는 안되겠더군요.
멸치액젓과 새우젓도 넣고, 파, 마늘, 생강, 갓도 다져서 넣었습니다.
이 시점에서 부터는 김치 양념 냄새가 너무 강해져서 바깥으로 장소를 옮겼어요.
다행히 날씨가 따뜻하게 풀려서 바깥에 양념 다라이를 놓고 이것저것 냄새 강한 재료를 넣으며 섞어주는 일이 힘들지는 않았어요.
집안에서 이 일을 하면 온 집안에 액젓 냄새나 매운 고춧가루 냄새가 퍼져서 카펫이나 커튼에 까지 냄새가 배거든요.
그렇게 해서 양념과 절인 배추가 모두 준비된 시간이 밤 열 시...
이제는 집안에 냄새가 배어도 할 수 없이 집안으로 장소를 옮겨서 본격적인 버무리기 작업을 시작했어요.
바깥은 너무 캄캄하니까요.
이 사진을 찍어주고 아이들은 자러 올라가고 저는 고즈넉한 야간 작업을 했습니다.
양념과 배추를 잘 덮어두었다가 다음날 버무려도 되겠지만, 이왕 시작한 김에 끝을 내고픈 욕심이 생겼어요.
저희집 김치 냉장고는 배추 두 박스를 김치로 담으면 꼭 맞게 들어가고, 그만큼이면 일 년 동안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양이 되어요.
하지만, 친한 사람들에게 한 쪽씩 맛보라고 나눠줄 때 마다 김치 냉장고가 비어가니 저도 모르게 손이 오그라들더라구요.
그래서 작년 부터는 아예 세 박스를 담아서 넉넉하게 나눠먹고 있어요.
이 만큼은 김치 냉장고에 안들어가고, 친구들에게 나눠주거나, 친구들을 초대해서 함께 먹을 분량입니다.
한 쪽씩 잘 포장해서 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는데요...
올해에는 일곱 분 정도 되는 분들과 단체 카카오톡 방을 만들어서 함께 도모한 일이 있었어요.
아는 분이 어려운 일이 좀 있어서 함께 돕느라고 단톡방을 만들어 서로 연락하며 도움을 주곤 했는데, 그 분들께 제가 만든 김치 한 쪽씩을 꼭 드리고 싶었어요.
저 말고 대부분은 종교를 가진 분들이라, 남을 돕는 일에 거리낌없이 나서고 그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는 분들이셨는데, 신이 그 분들께 복은 주시겠지만, 그건 그거고, 저는 인간으로서 그 분들께 약간의 칭찬과 약간의 격려를 담은 약간의 선물을 하고 싶었던 겁니다.
ㅋㅋㅋ
그런데 그렇게 모든 분들께 보내다보니, 수십년 동안 식당을 해오신 분께도 제 김치가 배달이 되었어요.
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아도 아주 꼼꼼하게 플리츠 플리츠 스타일로 잡았던 거죠 :-)
나란 여자...
이런 여자...
ㅋㅋㅋ
대략 김치 버무리기가 끝나니 새벽 한 시...
김치 냉장고를 가득 채워놓으니 또 한 해 먹을 김치가 준비되었구나 싶어서 흐뭇했습니다.
고생하는 저를 보더니 남편이 - 자기가 실수해서 면목이 없기도 하고 - 다음에는 김장 같은 거 하지 말고 조금씩 때마다 담아 먹는 게 어떠냐고 말했어요.
글쎄요...?
김치는 다른 음식과 달리, 만들어야지 하고 작정하면 최소한 하루 이상 걸려야 완성되는 음식인데, 문득 김치가 먹고 싶다! 해서 오늘 배추를 사오면 내일 절이고 모레 버무리고, 그러는 동안에 라면은 김치 없이 먹어야 하고, 김치 볶음밥이나 김치 찌개를 무시로 만들 수도 없게 되고...
그러지 않으려면 명왕성 국제시장에서 파는 김치를 사다 먹게 될텐데...
그건 너무 비싸고 너무 맛이 없고...
이렇게 세 박스 배추 김치를 담는데 들어간 재료비는 넉넉하게 잡아도 100달러 정도 일텐데 (한국에서 공수한 최상품 고춧가루 값을 생각하면 150달러 쯤이라고 쳐도요 :-)...
명왕성 국제시장 김치는 한 병에 배추 한 포기 정도 들어가는 양인데 15달러씩 하더라구요, 글쎄!
내가 허리 다리 손목 아파가며 절이고 씻기도 이렇게 힘든데, 그렇게 팔기 위해 만든 김치는 얼마나 깨끗하게 얼마나 정성껏 만들었을지 의심스럽기도 해서...
아무리 생각해도 해마다 김장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김장을 하면 이런 즐거움도 있죠.
친구들 불러다가 보쌈 고기랑 생굴로 쌈싸먹으며 즐거운 파티~~
상추에도 싸먹고...
김치에도 싸먹고...
뜨거운 김 때문에 촛점이 흐려진 된장국도 후루룩~
추수감사절 방학이니 일 걱정 잠시 내려놓고 친구들과 즐거운 식사를 하는 것은 맞벌이 아줌마가 누릴 수 있는 호사였어요.
그런데,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썪는 중 모른다는 말처럼...
아줌마 친구들고 즐겁게 먹고 놀고,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나니, 코난군이 묻습니다.
내 컵케익은요???
홧???
해마다 아이들 생일에는 학교에 컵케익을 구워서 보냈는데, 이번에는 코난군 생일이 학교가 명절 연휴로 쉬는 동안에 들어있어서 학교에 생일 케익 보낼 생각을 못하고 있었던 거죠.
그러니까,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날짜별 요약을 해드리자면...
일요일 밤, 아니 월요일 새벽 한 시에 김장을 마쳤고, 월요일 하루 아줌마들과 쌈싸먹으며 잘 놀았고, 월요일 저녁에 부랴부랴 컵케익을 구워서, 단축수업 하는 화요일에 코난군 학교로 보낸 겁니다.
수요일부터 주말 까지는 추수감사절 명절 휴일이고요 :-)
화요일은 아이들이 단축 수업을 하고 집에 일찍 오는 날인데 (그래서 사실 이 날부터 제 여유로운 방학은 끝난다고 봐야죠. 애들이 집에 있으면 엄마는 못 쉬잖아요 :-) 둘리양이 단짝 친구를 집에 데려와서 놀고 싶다길래 그러라하고, 마들렌을 구워서 간식으로 먹였어요.
네, 그 단짝 친구는 제게 늘 채소를 나눠주던 주주 입니다.
이번 토요일에는 주주네 엄마도 불러서 한국 음식을 함께 먹을 거에요.
그리고 다음날인 수요일은 세 시간 운전해서 이웃 주에 있는 물놀이 호텔에 놀러 갔어요.
11년 전 추수감사절에 저는 선배 교수님의 집에 점심 초대를 받아서 집을 나섰는데, 그 때 양수가 터져서 병원으로 달려가 오후 2시 30분 쯤에 코난군을 낳았거든요.
그런데 올해에도 추수감사절이 22일이 되었어요.
코난군의 친구들은 모두 가족 친지를 방문하느라 생일을 축하해주지 못하니, 가족끼리 만이라도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고 짧은 여행을 계획한 거였어요.
위대한 늑대 여관 (Great Wolf Lodge) 은 어린들이 좋아하는 곳인데, 호텔에 딸린 수영장이 물놀이 공원 만큼 큰 규모로 마련되어 있어서 물놀이를 실컷 즐길 수 있어요.
아이들 방학이나 공휴일 같은 날에는 매우 붐비지만, 추수감사절에는 대부분 할아버지 할머니 집을 가느라 여기는 한산해서 좋아요.
다음 편에서는 여행 가서 사먹었던 음식과 또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오겠습니다 :-)
해피 땡스기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