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이 무더위를 잘 이겨낸 우리 자신을 위해 짝짝짝.
여러분들의 관심에 힘입어 바로 이어 고추꽃를 쏘겠습니다.
올해 고추 농사에는 에피소드가 많습니다. 나는 토종고추를 이십년째 농사짓고 있어요. 이십년전 이웃천사가 전해준 고추 하나. 그걸 씨로 삼아 해마다 모종을 길러 고추농사를 짓는 거지요. 많이 짓는 것도 아니라 100여포기. 그걸 위해 이른 봄부터 고추모종을 기른다고 야단법석이랍니다.
올해 3월 어느날, 고추싹이 이제 본잎이 나올랑말랑 할 즈음. 동네 동생들을 저녁에 불러 영화를 보기로 했지요. 한번 놀아보자는 거지요. 밭에 갔다가 돌아오니 손님 올 시간. 부랴부랴 손님맞아 즐겁게 놀았답니다.
다음날 아침. 늘 언제나처럼 하루 시작은 고추 모종 하우스에 문안인사로 시작합니다. 비닐하우스는 일교차가 커서 저녁에는 문을 꼭 닫고 이불까지 덮어주어야 고추가 얼지 않고, 해가 뜨면 이불도 벗기고, 문도 열어줘야 고추가 열병에 걸리지 않아요. 그래서 날마다 아침저녁 문안인사는 꼭 필요한 거지요. 고추하우스에 가는데 문이 열려 있는 거에요.
이게 뭔일이랑가!
어제까지 삐죽삐죽 올라왔던 고추싹들이 싹 사라졌네요. 간밤에 내가 논다고 정신이 나가 고추 모종 하우스 문을 안 닫은 거지요. 하필 그날 밤이 추워 고추모종이 싹 얼어죽......
이제 새로 씨를 넣기엔 늦었고,
그래서 올해는 고추씨를 밭에 바로 뿌리는 직파를 했답니다. (그 직파 고추는 지금 하나둘 굵어지고 붉어지기 시작하고 있어요. 아마도 날이 맑으면 9월초에나 딸 수 있겠지요. )
그럼 엊그제 맷돼지가 나타났던 고추밭은? 그건 이런 사고 덕에 5월에 남들 고추 심을 때, 이웃에서 고추모종을 얻어다 심은 거랍니다. 그러니까 개량고추지요. 종묘상에서 파는 고추. 이걸로 올해는 어찌 땜빵을 해야 고춧가루를 먹을 수 있어요. 토종고추는 늦게 익으니 씨앗을 받는다 생각합니다.
어휴. 사설이 기네요.
고추꽃은 아래를 보고 피는 흰꽃입니다.
이 고추꽃을 보면 무명머릿수건을 한 조선여인네가 떠오르지 않으세요?
그런데 하나 더. 고추꽃은 지고나서도 예뻐요.
이렇게요.
꽃받침 끝에 뾰족히 달린 아기 고추가 보이시나요?
꽃잎이 떨어지고나면 고추가 자라서 다 자라면 약이 올라 시퍼래지며 매워지고 서서히 붉게 익어갑니다.
보시는 것처럼 고추는 줄줄이 달려요. 연구에 따르면 한 포기에 일천개까지 달린다나! 자식이 이리 많으니 병이 잘 옵니다. 나처럼 자연재배를 하는 사람은 병이 오면 속수무책이에요. 할 수 있는 건 병이 온 고추를 뽑아 옆에 전염을 막는 정도. 자식새끼는 줄줄이 달려있는데 이렇게 날마다 비가 오시면 고추가 얼마나 힘들까?
자식새끼 수라도 줄여 주려 어제 풋고추를 잔뜩 따왔어요. 초여름부터 먹기 시작한 풋고추. 여름이면 밥 먹을 때마다 몇개씩 안 먹으면 안 되는 필수품이기도 하구요.
이번에 따온 자잘한 고추로는 멸치고추조림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서리 오기 전에는 약이 오른 매운 풋고추를 따서 모아 고추지도 담지요. 그리고 매운 건 골라서 풋고추발효액을 만들어요. 그러면 일년내내 매콤달콤한 양념으로 그만이랍니다. 잔멸치볶음 할 때 스텐레이스강후라이펜에 멸치만 약불에 볶다가 비린내가 사라지면 이 고추효소를 한바퀴 둘어주면 멸치볶음 끝. 고소하고 개운한 멸치볶음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