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밤낮이 정반대인 곳에 사는 잠꾸러기인 제게 개표방송을 보는 것은 누워서 떡먹기 보다 쉬웠어요 :-)
아침밥 준비하면서 평소와는 다르게 볼륨을 크게 높이고 환갑의 나이에도 팽팽한 손석희 사장님의 진행을 감상하면서 개표 방송을 보았어요.
이 시각 광화문 광장...
여섯 시간 동안 밥도 안먹고 화장실도 안가고 그 자리를 지키던 사람도 있었고, 비가 와도 우비를 입지 않았던 사람도 있었다는 그 곳...
저도 참 함께이고 싶었어요.
증세없는 복지를 취임 첫 날부터 시행하고 계신 이 분.
이 날부터 저도 온갖 인터넷 뉴스를 다 찾아다니며 이 흐뭇한 모습을 찾아보는 덕후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개표방송을 보면서 먹고싶은 음식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던데...
ㅎㅎㅎ
저희는 뜬금없이 게다리를 쪄먹었습니다.
명왕성에는 매 주 목요일마다 놀스캐롤라이나 바닷가에서 해산물을 냉동탑차에 싣고 와서 파는 생선장수 아주머니가 두 분 계시답니다.
싱싱하기는 엄청 싱싱한데, 그에 걸맞게 가격이 만만치 않은지라 자주 사먹지 못하다가, 부모님이 오셨다는 핑계로 남편이 좋아하는 게다리를 왕창 사다 쪘어요.
이럴 때에 엥겔계수 좀 높여보는거죠 :-)
이런 비주얼 최강의 음식을 준비할 때는 다른 반찬 따로 차릴 필요도 없고, 또 밥이나 국의 맛도 별로 중요하지 않더군요.
게 살 발라 먹기 바빠서 다른 음식의 맛은 즐길 여력이 없다는 게 비법이죠 ㅎㅎㅎ
시누이 두 분이 도깨비의 나라 (으읭? 드라마 도깨비의 배경이 되었던 캐나다 퀘벡을 짧게 쓰려다보니 이런 뜬금없는 워딩이...)로 여행을 가고 없으니 음식을 만들면서 사진을 찍을 형편이 도저히 안되네요.
그나마 아롱사태 넣고 육개장을 끓일 때는 재료를 다 넣고 끓기를 기다리는 동안 이런 사진을 찍을 짬이 있었어요.
슬로우 쿠커에서 네 시간 익힌 아롱사태를 썰어보니 그 이름이 왜 아롱사태인지 알겠어요.
아롱아롱~ 물결무늬가 보이시죠?
남편이 워싱턴디씨에 (아니, 참 지구별에 :-) 가는 길에 한인 마트에 들러서 꽈리고추 좀 사다달라고 부탁을 했더니만...
ㅜ.ㅠ
전화가 걸려왔어요.
"꽈리고추가 어떻게 생긴거야?"
"왜 있잖아, 쭈글쭈글하게 생긴 고추"
잠시 후에 또 전화가 왔어요.
"이거 얼마만큼 사가야 돼?"
이 때 부터 무언가 수상하다는 생각을 했어야 하는 건데...
"한 팩만 사와요"
"팩에 안담겨있는데?"
이 때 이상하다고 알아차렸어야 하는데...
"그럼 대충 넉넉하게 사오세요"
김치 냉장고 작은 통에 하나 가득 찰 정도로 담아온 이것은 엄청나게 길고 큰 쭈글쭈글하게 생긴 어떤 품종의 고추였어요.
절반을 덜어서 친하게 지내는 분께 나눠드리고도 이렇게 많이 남은 걸 원래 하려던 꽈리고추찜 반찬을 만들 수는 없고...
고민하다가
앗,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하고 머릿속에 전구가 반짝 켜졌어요 :-)
한입 크기로 썰어서 올리브 기름이나 식용유 (먹을 수 있는 기름 종류 아무거나)와 소금을 뿌리고 잘 섞어줍니다.
쿠키 판이나 기타 납작한 오븐 용기에 넓게 펼쳐놓고 화씨 375도 에서 10분간 구우면 끝!
같은 방법으로 케일 칩도 만들면 맛있어요.
단, 케일은 타지않고 바삭바삭하게 마르면서 구워져야 하니 오븐의 온도를 조금 더 낮게 하고 (저는 화씨 350도에서 구웠습니다) 시간은 조금 더 길게 (15분) 잡아서 익혔어요.
그러면 맛있는 반찬으로 탄생!
이런게 해먹으니 그 많던 고추를 순식간에 다 먹어치울 수 있더군요.
만들기도 무척 쉬우니 오븐을 가지고 계신 분들은 한 번 만들어 보세요 :-)
한국에서도 그렇지만 명왕성에서도 4월 16일은 많은 사람들이 슬퍼하고 안타까워하며 추모를 하는 날입니다.
조승희 총격 사건이 2007년 4월 16일이었다는 거 기억하시나요?
그 사건이 바로 제가 사는 명왕성에서 벌어진 일이었죠.
세월호 사건도 공교롭게도 같은 날 일어났죠.
암튼, 여러 가지로 4월은 잔인한 달이 맞나봐요.
손주들은 다 학교가고 집에서 무료해 하시는 시부모님을 모시고 동네 산책을 다녀왔어요.
이 곳이 바로 조승희 사건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던 채플이고 건너편에는 추모공원이 조성되어 있어요.
졸업식을 앞두고 학사모와 가운을 입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몰려드는 명소가 되었지만, 영원히 졸업하지 못한 10년 전의 그 대학생들은 어쩌나요...
단원고 학생들도 살아있었다면 이번에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거라고 하던데...
이제 새 대통령을 뽑았으니 그 아이들과 가족들의 한을 조금이나마 풀어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